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력 부진에서 촉발된 한국 축구 위기 상황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력 부진에서 촉발된 한국 축구 위기 상황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수장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정몽규 회장은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축구협회를 둘러싼 각종 불미스러운 논란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정 회장은 "축구 전반에 대한 책임은 회장인 저에게 있다. 최근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과 함께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비난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은 거듭된 A매치 부진으로 흔들리고 있는 신태용 감독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신뢰를 드러내며 팬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신태용 감독이 국내 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물론 월드컵 대표팀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협회는 신태용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며 "못할 때는 질책도 필요하지만 격려를 통해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표팀의 향후 일정과 쇄신방안도 제시했다. 정 회장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팬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외국인 코치를 포함한 코칭스태프 보강 계획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1월 A매치 상대는 콜롬비아(10일)와 세르비아(14일)로 확정됐으며. 내년 월드컵 본선까지 지속적으로 강팀과 친선경기를 잡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어 "기술위과 별도로 대표팀 감독 선임위를 만들겠다. 이번 월드컵만이 아니라 차차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장기적인 대표팀 운영 플랜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히딩크 감독 논란에 대해서는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인정한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히딩크 측으로부터) 문자 온 걸 기억하지 못한 것이나 신태용 감독이 본선확정이 되기 전에 미리 인터뷰를 한 것 등 협회 측에서 미숙한 대응이 있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이 경기력이 좋지 못했던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밖에 협회 내부 비리 문제나 인적 쇄신, 소통 문제 등에 대해서도 사과하면서 "앞으로는 중요한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고 쇄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은 그동안 축구협회와 대표팀을 둘러싼 각종 악재가 연달아 터지는 상황에서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 회장의 기자회견은 예정에 없었다. 하지만 협회는 이날 오전 갑작스레 기자회견 일정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축구협회를 향한 비난 여론이 절정에 달하며 정몽규 회장의 책임론까지 불거지는 상황에서 더는 관망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사과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음 행보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력 부진에서 촉발된 한국 축구 위기 상황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력 부진에서 촉발된 한국 축구 위기 상황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팬들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그 정도만으로 이미 축구협회를 향해 누적된 팬들의 불신을 돌리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현재 협회의 문제점에 대한 정 회장의 현실 인식이나 앞으로의 쇄신안 역시 다소 미흡하고 모호해 보인다는 지적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정 회장은 팬들의 비판을 수용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치적을 강조했다. "올해 시작하면서 네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대표팀 경기에서 승리해서 아시안컵 본선에 나가는 것, FIFA 평의회 선거, U-20 월드컵 8강 진출, 월드컵 본선 9회 진출이었다. 그리고 이 중 3개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우회적으로 자신을 향한 일방적인 비난에 서운한 마음도 드러냈다. 신태용 감독이 최종예선 졸전 논란으로 뭇매를 맞을 당시 "그래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것을 평가해달라"고 주장하던 것과 비슷한 태도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정작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입장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보여주기식' 제도와 기구 신설로 책임을 대신하겠다는 것처럼 읽혔다. 가장 중요한 협회의 내부 인적 쇄신안에 대해서도 '젊은 인재를 원한다'거나 '관리시스템을 마련하겠다', '프로축구연맹이나 관계자들과 협의하겠다'는 등 당연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다. 가장 논란이 되는 비리 문제나 회전문 인사 등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 중인 사안이라며 입장을 한발씩 유보했다. 개혁하겠다면서도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계획이 실종돼 있으니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축구협회가 지금의 곤경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투명하지 못한 행정력과 '불통'에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여전히 김호곤 기술위원장이나 신태용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의 '경기력'만 개선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대표팀 성적이 가장 중요한 변수임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적이나 경기력만 좀 달라진다고 협회를 둘러싼 구조적인 현안들이 모두 묻혀서도 곤란하다.

정몽규 회장과 축구협회는 일단 급한 불을 수습하겠다고 이번 기자회견을 편성했는지 모르지만 더이상 두루뭉술한 대처만으로는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인사 개편과 조직 개선 등 좀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후속 대처가 나오지 않는다면 정 회장의 이날 사과는 그저 면피를 위한 공염불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개혁의 물결 앞에 서 있는 축구협회의 다음 대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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