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도원의 아이들>을 연출한 강우기 감독.

영화 <수도원의 아이들>을 연출한 강우기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92분의 상영시간 동안 극적인 대사 한 마디 없다. 카메라는 지긋이 아이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이 주고받는 사소한 장난을 따라갈 뿐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수도원의 아이들>의 강우기 감독은 이 아이들을 만나 마음에 깊은 위로를 얻었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18일 부산 영화의 전당 인근 모처에서 강 감독과 영화 제작자 클레아 함 피디를 만났다.

먹을 것 가지고 싸우고, 사소한 말장난에 자지러지게 웃는 등 행동은 여느 또래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아이들이다. 부처가 태어난 나무가 있는 거로 알려진 네팔 룸비니 지역의 한 수도에 사는 동자승들이기 때문이다.

버려졌지만

영화는 동자승 호파쿨리와 그 주변 아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호파쿨리는 수도원의 막내다. 함께 수도원 생활을 하는 친형은 매번 괴롭히거나 무시하기 일쑤고, 또래 역시 덩치가 작은 그에게 짓궂게 대한다. 서러워 울기도 하지만 호파쿨리는 금방 웃음을 되찾는다. 그리고 장난감과 주변 동물들과 대화하며 행복해한다. 호파쿨리를 포함해 수도원에서 사는 이들은 대부분 고아이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유년기,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내다가 이후 성인이 되기 직전 스스로 승려가 될지 수도원을 떠날지 결정하게 된다.

중국 내몽골 출신의 강우기 감독은 미국 뉴욕에서 사회파 다큐를 공부한 뒤 견문을 넓히고자 2년 넘게 세계를 떠돌다가 네팔에 잠시 머물게 된다. "마치 고향을 만난 느낌이었다"며 그는 "수도원 동자승을 만나며 이들 이야기가 영화화된 게 없기에 급제안했다"고 연출 계기를 밝혔다.

물론 순조롭진 않았다. 촬영을 거절하던 수도원은 1년 간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촬영을 허락한다. 학부생 때 미술을 전공한 강우기 감독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조건이었다. 

 영화 <수도원 아이들>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촬영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얻으려 한 건 아니고 평소엔 아이들과 놀다가 흥미로운 행동을 하면 카메라를 잡았다. 그래서 촬영시간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다. 수도원에서 나 역시 새벽 예불을 드리고 명상도 하며 지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작은 지혜(A Little Wisdom)인데 큰 지혜가 부처의 가르침이라면 작은 지혜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행복을 얻는 동자승들을 의미한다. 

호파쿨리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다.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다 슈퍼맨이 되기도 하고, 부모님을 떠올리며 상황극을 짜기도 한다. 어렸을 때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소소한 행복을 잊고 산다는 걸 깨달았다. 내게 부모님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2살 때 수도원에 온 아이가 부모 얼굴을 기억할 리 없잖나. 이 아이가 상상력으로 견뎌내고 있다는 걸 느껴 마음이 슬플 때도 있었다. 상상력이 이 아이의 힘이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호파쿨리라는 단어는 그 나라 말로 '지혜'라는 뜻이다. 제목에 나름 두 가지 의미가 담긴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곧 인생 여정을 상징한다. 아이들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거나 사라지고 조금 나이가 많은 청소년 스님들의 고민을 등장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순환이고 여정 같다. 꼬마들 역시 언젠가 진로와 이성에 대해 고민을 할 것이다. 사실 이건 우리가 위대하게 여기는 고승들도 걸었던 길 아닌가. 부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깨닫길 원했다. 큰 나무는 물을 많이 흡수하고 작은 풀은 적게 흡수한다. 관객들 역시 스스로 뭔가 하나씩 얻어 가시면 좋겠다."

 영화 <수도원 아이들>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의 아픔

영화는 캐나다, 중국, 네팔 등 3국 합작으로 제작됐다. 강우기 감독은 캐나다 시민권자로 현지에 자신의 제작사가 있다. 또 영화를 위해 중국에 사는 부모님의 재정 지원을 약간 받았다. 여기에 미국에서 활동하던 클레어 함 피디가 한국 일정에 도움을 줬다. "모든 게 축복의 과정이었다"며 강 감독이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향후 영화의 국내 배급을 담당할 예정인 클레어 함 피디는 "강 감독이 한국에 오기 전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를 봤고 매우 아파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부산영화제 개막 레드카펫 때 강우기 감독과 스태프들이 함께 노란리본을 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참고로 클레어 함 피디는 독일에서 상영한 세월호 다큐멘터리 <정지된 시간>들의 제작자기도 하다. 강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전부터 알고 있었고, 아이들 죽음에 대해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작업에 대해 강우기 감독은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차기작은 내몽골에 사는 아버지와 그곳을 떠난 아들의 이야기가 될 예정. 감독의 자전적 내용일 것으로 보인다.

"10대에 사춘기가 왔는데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무렵 영화가 많이 위안이 됐다. 그땐 감독을 꿈꾸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영화를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운명이었던 것 같다. 지금 작품에서 보이는 아쉬움을 보완해 다음 작품을 잘 마치겠다."


수도원의 아이들 네팔 부산국제영화제 강우기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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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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