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민일홍 KBS 라디오 PD, 김범수 KBS 전 <추적 60분> PD,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 이우환 MBC 전 <PD수첩> PD가 참석하고 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민일홍 KBS 라디오 PD, 김범수 KBS 전 <추적 60분> PD,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 이우환 MBC 전 PD가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언론장악은 조직적으로 일어났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방심위, 방통위... 각자 역할을 맡아 합법과 불법을 교묘히 섞어가며 언론 통제를 시도했고, 여기에 KBS-MBC 내부의 공모자들도 합류했다. 제가 지난 10년 동안 KBS에서 보낸 시간의 50%를 방송을 만드는 썼다면, 남은 50%는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싸우는 데 써야 했다. 문제는 방송국 내부에 밥 먹고 그 일만 하는 사람들, 그게 주 업무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다. 취재와 방송 제작이 주 업무인 저널리스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KBS 김범수 전 <추적 60분> PD)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성북 갑) 주관으로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가 열렸다. 이날 보고대회에는 KBS 민일홍 라디오 PD와 김범수 전 <추적 60분> PD, MBC 이근행 시사교양 PD, 이우환 전 <PD수첩> PD 등이 참석했다. 발표자로 참석한 PD들은 최근 공개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 문건의 내용이 지난 시간 KBS와 MBC 내부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이행됐는지, 그 실태와 피해 사례를 진술했다. 

공영방송 정권 홍보 채널로 전락시킨 대통령 주례 연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민일홍 KBS 라디오 PD가 참석하고 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민일홍 KBS 라디오 PD가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첫 발표자로 나선 민일홍 PD는 "KBS 라디오 붕괴의 시작은 '대통령 주례 연설'"이라면서 "MB 정권의 일방적 기획으로 시작됐지만, KBS 편성권을 지난 책임자들은 청와대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민 PD는 "대통령은 주례 연설에서 용산 참사를 언급하며 '책임자 사퇴 여부는 그리 시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용산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사퇴 여론을 일축했고, 유성기업 파업과 관련해서는 '연봉 7000만 원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벌였다'는 허위 주장으로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을 매도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공정성 시비가 일었지만, 이후 담당 PD부터 팀장, 진행자는 모두 승승장구했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홍보 채널로 전락시키고 먹칠을 한 대가였다"고 꼬집었다. 

당시 대통령 주례 연설이 처음 방송된 KBS 1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민경욱 현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그는 <생방송 심야토론>, 1라디오 <열린토론> 진행자, < 9시 뉴스> 앵커 등 KBS 내 요직과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1라디오 팀장이었던 성대경 PD는 KBS 미디어 본부장, 서기철 편성팀장은 1라디오 국장으로 영전했고, 주례연설 담당 이경우 PD는 8년 만에 사원에서 임원인 라디오 센터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진행자 윤도현·정관용·박인규·정한용 등은 정권 초기 개편에서 일괄 교체됐다. 게스트였던 진중권·김용민·유창선 등도 마찬가지였고,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 등 진보 매체 기자들과, 정세현 전 장관, 이재정 전 장관 등은 제작진이 섭외해 큐시트에 올려도 데스킹 과정에서 다 걸러져야 했다고. 이에 반해 '화이트리스트' 의심사례도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 실세인 김무성 의원의 처남인 최양호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을 경제 프로그램 MC로 기용하려다가 일선 PD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는데, 최 고문의 기용을 강행하려던 인사는 현재 KBS 이사로 재직 중이다.

민일홍 PD는 제작 자율성 침해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영화 <변호인> 배우들의 섭외를 막거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 4대강, 세월호 등에 대한 아이템 간섭이 이어졌다고. 모든 사안에 '기계적 균형'을 강조해 사실상 주요 시사 이슈를 다룰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민 PD는 "다뤄져야 할 아이템은 사장됐고, 저절로 공익을 위한 어젠더 세팅 기능은 상실됐다. 방송법에 규정된 규제기구인 편성위원회가 있었지만, 변석찬 센터장 재임 기간에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추적 60분>에 가해진 간섭... 단독 쥐고도 방송 못 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김범수 KBS 전 <추적 60분> PD가 참석하고 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김범수 KBS 전 <추적 60분> PD가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김범수 PD 역시 "청와대-국정원-김인규 사장이 공모해 <추적 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했고, 이후 게이트 키핑을 명분으로 일상적인 제작 자율성 침해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 8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막말 동영상을 단독으로 확보했지만 불방시킨 것과, 같은 해 11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방부 조사 결과가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를 입수했지만 불방 압력을 가한 것 등이다. 이 외에도 4대강, MBC 파업,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 대한 아이템을 다루려 할 때마다 불방을 시도했다.

김 PD는 국정원 문건에 적힌 "윤태호 추적 PD, 사원 행동과 불법 행위 주도. PD들 편파 방송 방치. 노무현 추모 특집, 천안함 좌초 의혹"을 언급하며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시사 프로그램이 이를 특집으로 다루지 않을 수가 있나? 천안함에 대한 논란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를 방송하지 않을 수 있나? 시사 프로그램이 당연히 해야 할 아이템인데, 이걸 다뤘다고 탄압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개탄했다.

김 PD는 특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편' 불방 시도에 주목했다. 당시 사측은 이 프로그램을 불방시키기 위해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무엇보다 담당 PD부터 본부장까지 딱 다섯 명이 원고를 봤는데 반나절도 안 돼 국정원이 원고에 대한 반박문건을 보내기도 했다고. 그는 "KBS 내부에 국정원과 발맞추던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라면서, "KBS 내 공모자들과 정부 여당의 사전 조율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지금 드러난 것들은 공모의 큰 구조뿐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머지 문건과 증언들을 다 모아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MBC 이근행 PD "엄기영 사장, 당시 상황 증언해주길"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가 참석하고 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가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MBC 이근행 PD는 "8기 방문진 이사들과 이동관, 이재오 등 당시 실세, 그리고 이들에 의해 사장직에서 물러난 엄기영 전 사장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8월, 극우 성향의 '뉴라이트' 인사들이 방문진 여권 인사로 포진하면서 MB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이 본격화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8기 방문진은 지속적으로 언론 노동자가 공정 방송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단체협약'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매주 열리는 방문진 이사회에 엄기영 사장을 불러 인간적 수모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2010년 2월 7일, 엄기영 사장은 MBC 노조위원장이었던 이근행 PD와의 면담에서 "이동관을 통해 청와대의 뜻이 강하다는 걸 확인했고, 친이 실세인 이재오와도 통화했다"면서 더 이상 사장직을 이어갈 수 없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튿날인 2월 8일, 방문진은 황희만, 윤혁 등을 일방적으로 보도, 제작 이사로 선임해 사장의 인사권을 유린하며 엄기영 사장을 허수아비로 전락시켰고, 엄기영 사장은 그렇게 MBC를 떠났다고. 이근행 PD는 엄기영 전 사장을 향해 "당시 상황에 대해 가장 많이 알 것이라 생각한다.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역사적 차원에서 증언을 해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PD는 "2010년 39일 파업은 MB 정권에 맞선 첫 번째 대규모 파업 투쟁이었다. 전 조직 역량의 90% 이상이 가동됐지만, 무자비한 MB 정권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했다. 견디고 살아남은 것만으로 기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마치 통진당 공격하듯 언론노조를 공격했다. 좌파 딱지를 붙여 베테랑 PD들을 탄압했는데, 분명 이런 프레임을 짠 전문 기술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PD는 이어 "파업한다고 언론인들을 대량 해고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이를 "정권의 범죄"로 규정했다. 그는 "여전히 해고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징계자들은 원상회복되지 못했다. 200여 조합원이 본업에서 쫓겨나 있다"고 전하며, "이는 정권의 범죄이고, 국정원의 범죄이고, 부역 언론집단의 범죄다. 국기문란 범죄 집단이었다. 반드시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스케이트장 관리인에서 언론 탄압 피해 증언자로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이우환 MBC 전 <PD수첩> PD가 참석하고 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이우환 MBC 전 PD가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최근 국정원 문건과 관련해 피해자 조사를 받은 전 < PD수첩> CP인 이우환 PD는 "서울 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섰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참 이상했다"고 털어놨다.

"국민이 어떤 정권을 택했느냐, 단지 달라진 건 그뿐이었다. 저는 그 결과에 따라 용인 드라마세트장으로 쫓겨났다가 스케이트장에서 눈 쓸고 동전 교환하며 절망적인 6~7년을 보냈다. 그렇게 정년까지 이리저리 떠돌다 퇴직할 줄로만 알았는데, 다시 촛불 국민 덕분에 제 개인적인 경험은 유효한 증거가 되었고, 검찰에 가게 됐다. 역동적인 경험이었다." (MBC 이우환 전 < PD수첩> PD)

그는 "우리 국민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촛불로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임기까지 단축시켰다. 그런데 KBS 고대영 사장은 적법하게 뽑혔으니 임기를 보장해 달라고 한다. 대통령 임기도 단축시킨 국민들이 이를 두고 보겠나. KBS는 국민의 시청료를 받는 국가기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PD는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시나리오는 총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1단계가 간부진 인적 쇄신을 통한 편파 보도 퇴출이었고, 2단계는 노조 무력화 및 조직개편으로 근본적 체질 변화 유도였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손석희, 김미화, 성경섭, 김성수 등의 진행자가 교체됐고, '무능' 낙인이 찍힌 기자·PD들은 외곽 부서로 격리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노조 파괴나, < PD수첩>을 보도본부 산하로 옮기려던 시도는 실패했지만, 국정원 문건의 내용은 대부분 MBC 내부에서 실행됐다.

이우환 PD는 "3단계는 소유구조 개편을 논의해 MBC를 민영화하려는 거였다. 마스터 플랜은 MBC를 민영화해 미국의 폭스TV처럼 만들려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PD는 "이 전략은 1년 안에 달성하는 걸 목표로 기획됐다. 애초에 무리하게 세워진 측면도 했지만, MBC 노조가 파업 등으로 강하게 맞서면서 일정 부분 지연시킨 효과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며, "이 문건에 근거해 철저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추혜선 정의당 의원(비례)은 "지난 방통위 국감에서 김성수 의원이 지난 시간 겪었던 MBC 내부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상임위원장은 물론, 여야 의원들 모두 숙연하게 지켜봤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인간 마음 깊숙한 본성에서 이게 얼마나 처절한 시간이었는지, 공감대가 잠시나마 형성이 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결해야 할 국회가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죄송한 마음뿐"이라면서 "국가의 조직적 범죄 행위이니만큼 타협이나 용서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곧 KBS와 MBC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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