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01.

오우삼 감독을 상징하는 심볼은 흰 비둘기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늘 비둘기들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노골적이다. 그의 신작 <맨헌트>의 메인 포스터에는 주인공들의 얼굴이 아닌 흰 비둘기의 날갯짓이 새겨져 있다. 어쩌면 칠순이 넘은 감독의 자신감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았다는 뜻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역시 한 자리에서 무엇인가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런 파급력을 가진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새 한 마리로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감독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신작 <맨헌트>는 다카쿠라 겐 감독의 1976년 작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누명을 쓴 변호사 두 추(장한위 역)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쫓는 형사 야무라(후쿠야마 마사하루 역)와 함께 배후 세력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02.

이 영화는 제작이 된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 높은 기대를 받았던 프로젝트였다. 아시아의 거장 감독 중 하나인 오우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과 함께 한중일을 대표하는 배우들인 하지원, 쿠니무라 준, 후쿠야마 마사하루, 장한위 등이 함께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모두 연기 경력이 짧지 않은 배우들이기에 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영화는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며 공개되었다. 현재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익숙하지 않다는 쪽에 압도적으로 몰려있다. 감독은 원작이 공개되었던 시기인 1970년대의 분위기를 이번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것을 이번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 장면 전환의 대부분은 관객들이 여운을 느낄 시간도 없이 상당히 빠르게, 혹은 황급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장면에서는 인물의 대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전환이 진행될 정도의 속도. 최근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장면인 게 틀림없다.

 연구소에서의 장면들 역시 숱한 고전적 장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구소에서의 장면들 역시 숱한 고전적 장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03.

하지만 모든 장면이 그렇게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총 네 번 조우하게 되는 변호사 두 추와 형사 야무라는 그때마다 인상적인 액션을 보여주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제트 보트를 타고 추격전을 벌이는 체이싱 장면은 오우삼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액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운힐 카 체이싱 장면이라든가, 두 사람이 함께 차를 타고 격투를 벌이며 비둘기장을 들이박는 장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빠른 속도감을 베이스로 하는 거친 화면 전환 가운데 순간적으로 느린 호흡을 보여주며 섬세한 눈빛을 주고받는 인물들의 모습, 그리고 이를 극적으로 포착해내는 순간의 긴장감이다. 많은 대사량을 굳이 삽입하지 않더라도 이 짧은 순간의 표현만으로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얻고, 이를 관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04.

관객들이 이 작품을 익숙하지 않게 느끼는 이유에는 과장된 몸짓과 액션, 그리고 속도감이 과한 호흡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표현은 오우삼 감독이 이 작품을 연출하는 목표로 1970년대 일본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온전히 의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일본 영화의 대부분은 임협 시대극 혹은 장르 액션물인데,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영상들은 지금보다 훨씬 조악했기에 실감 나는 액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과장된 연출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사한 예로 1930~1940년대에 제작된 유니버셜 픽쳐스의 '유니버셜 몬스터' 시리즈인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작품들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2017년도에 굳이 관객들이 느낄 것으로 예상하는 어색함과 거리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한 시도를 해야 했는가와 같은 물음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초반부, 후반부 대사들을 유심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초반부, 후반부 대사들을 유심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05.

스토리 상에서도 복고적이고 상투적인 지점의 연출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튀어나온다. 연구소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신약을 스스로 투여하는 사카이 회장의 아들은 그 이후의 모든 액션 장면을 어설픈 홍콩식 누아르와 일본 전대물이 뒤섞인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신약 투여로 인해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레인(하지원 역)이 함께 입양된 던의 죽음으로 감정을 되찾게 된다는 설정 역시 고전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두 남자가 호흡을 맞추며 액션을 선보이는 버디 무비의 장르 또한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르. 한때 국내에서도 <투캅스> 시리즈가 큰 사랑을 받았고,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러시아워> 시리즈 등의 홍콩 영화들이 인기를 얻었던 장르지만 모두 1990년대에 멈춘 작품들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들이 복고적이다. 이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레인의 대사, "요즘엔 옛날 영화에 아무도 관심 없어요"와 "옛날 영화는 늘 이렇게 끝나죠" 역시 감독의 그런 의중이 분명히 담겨있는 부분이다.

 버디 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

버디 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 ⓒ 부산국제영화제


06.

어쩌다 보니 감독의 작품을 변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견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맨헌트>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용이한 방식의 표현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내러티브의 뼈대만 남겨놓았다. 골격만 보여주려고 하니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깊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새로운 장르 영화의 선구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면, 적어도 편집 단계에서는 관객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지점을 배려해줄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오히려 내게는 유일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 마사키가 자살하던 순간에 흩날리던 벚꽃과 그의 피로 물들어가는 마유미의 순백 드레스, 낙화마냥 힘을 잃고 꼬꾸라지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던 장면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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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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