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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개봉한 영화 <분장>의 주인공 오송준(남연우 분)은 연극 <다크라이프>의 트렌스젠더 주디 역을 꿈꾸는 무명 연극배우다. 배역 오디션을 준비하기 위해 트렌스젠더 강이나(홍정호 분)를 찾아가 조언을 듣고 그를 따라 성소수자 모임에도 참석한다. 함께 오디션을 본 동료가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속마음을 드러낼 때 그는 배역과 연기를 떠나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다며 동료 배우를 멸시하기까지 한다. 친동생 오송혁(안성민 분)에게 배역을 위해 춤을 배우고 성소수자와 어울리면서 그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을 때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 무대에 올려진 연극은 흥행한다. 그러던 중 그는 친동생 오송혁과 절친한 친구 성우재(한명수 분)의 만남을 목격한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삶이 실제로 제 일이 되자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 혼란을 겪는다.

<분장>의 주역들은 작품을 '낯섦', '공포', '이해', '가면'으로 함축해 표현했다. 주연인 남연우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맡았다. 지난 9월 30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함께한 오도이 음악감독도 참석했다. 아래는 감독, 배우, 스태프들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정말 관객 한 분 한 분, 감사합니다." (남연우)

 감독, 배우, 각본을 맡은 남연우

감독, 배우, 각본을 맡은 남연우 ⓒ 김광섭


-영화 <분장>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남연우 "어렸을 때 이모 댁에서 자랐거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장난감으로 이야기를 혼자 만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5년 늦게 대학교를 들어갔는데 그때 만난 분이 최용진 선생님입니다. 영화에서 연극 <다크라이프> 연출자 김태백 역할을 하신 분인데 그분을 만나서 연기관과 사람들을 바로 보는 시점이 굉장히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감정·상황 연기가 아니라 인간의 논리에 대해서만 훈련을 시켜주셔서 연기가 즐거워졌고 이유 있게 대사를 치고 논리를 찾아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분장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 논리 하나만 좇았던 것 같아요. 인물과 인물이 만났을 때 어떤 대사를 하고 그 대사를 받았을 때 어떤 평가를 하고 다음 대사를 할까 생각하며 쓰다 보니까 나름 논리 중심의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나 해요. 두 번 보면 그런 것들이 찾아지거든요. 세 번 보면 더 많이 찾아지고요."

 영화 <분장>의 주역들. 왼쪽부터 남연우, 안성민, 한명수, 홍정호, 오도이.

영화 <분장>의 주역들. 왼쪽부터 남연우, 안성민, 한명수, 홍정호, 오도이. ⓒ 김광섭


-배우들은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했나?
안성민 "대본을 보고 감독님에게 여쭤본 뒤 연기하는 편입니다. 많이 도와주셨어요. 정말 재미있었던 추억이었어요."

한명수 "사람이 비밀을 말하려고 했는데 말하지 못하면 점점 더 꺼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우재 마음속의 짐이 컸을 것 같아요. 송준이가 <다크라이프> 주디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재는 '주디가 된 송준에게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홍정호 "이나 캐릭터는 많은 경험이 있었을 거로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송준을 만났을 때는 호감이 있어서 장난스럽게 접근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느끼고 진짜라고 생각하고 호의를 베풀게 되는 식으로 접근했어요. 노래는 음악감독님에게 많이 혼났어요.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우워~'인데, 여성적인 목소리를 내야 해서 보이스 톤을 많이 잡아주셔서 도움이 됐어요."

 왼쪽부터 배우 한명수, 홍정호, 음악감독 오도이.

왼쪽부터 배우 한명수, 홍정호, 음악감독 오도이. ⓒ 김광섭


-영화음악 작업 시, 염두에 둔 점은?
오도이 "감독에게 계속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어요. 어떻게 곡을 만들어갈까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요. 이나처럼 한국에서 밤에 일해야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나에게 밤은 빛을 주는 느낌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낮에는 어떤 생활을 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분들 혹은 이나 입장에서는 날이 밝아오는 것이 어둠이 아닐까 해서 '거울 속의 나' 노래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영화 작업 후 스스로 바뀐 점이 있다면?
안성민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한명수 "영화 찍고 나서 이해라는 말이 조심스러워졌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정말 이해를 하고 한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을 위한 배려인가, 무관심인가? 잘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생각, 행동을 하고서는 '내가 왜 그러지?' 나 자신을 이해를 못 하는 경우도 있어서 타인을 이해한다고 했을 때는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건넬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홍정호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계속 나를 공부하고 제게 질문을 던지는 중이에요. 자신을 먼저 알아야 상대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오도이 "영화 안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소재들이 나오지만 그 외에도 곳곳에 그런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소한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도 '나, 너 이해해' 저도 그런 말을 많이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 찍고 난 후 그 말을 하더라도 조금 더 생각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그 질문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연우 "<분장> 작업하기 전과 후가 굉장히 많이 달라진 사람인데요. 남연우의 성장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에는 문제의식도 없고 관심을 안 두던 부분들이었어요. 성소수자 문제뿐만 아니라요. 포인트 단어는 '낯섦'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 것이라는 생각, 낯선 게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죠. 낯선 것에 대해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어요."

 오송혁 역을 맡은 배우 안성민

오송혁 역을 맡은 배우 안성민 ⓒ 김광섭


-각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는?

남연우 "안성민 배우는 무용을 전공했어요. 연기하고 싶어서 동네 연기학원에 왔는데 제가 강사를 하고 있어 인연이 됐어요.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무용을 잘 해야 해서 생각이 났고 쌍꺼풀 없는 뾰족한 인상이 적합할 것 같아서 캐스팅했어요.

한명수 배우의 경우, 배우가 카메라 밖에서 분 마이크(한명수는 영화 <가시꽃>에서 음향을 담당했다)를 들고 있는 심정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어요. '카메라 뒤에 있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한명수 배우가 '형들이 잘 되는 일에 함께 해서 기분이 좋다'고 답했는데 그 말에 감동 받았어요. 언젠가 연출을 하면 한명수 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홍정호 배우는 저와 17년 정도 인연이 있는 친구예요. 원래는 18년인데 작년부터는 발음상 17년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영화 <가시꽃>도 같이 했고 배울 점이 많아요. 인지도 있는 선배님들에게 시나리오를 드렸었는데 촬영 한 달 앞두고 이나 캐릭터로 출연할 가능성이 없어 보여 고민 끝에 홍정호 배우에게 '이나 가능하겠냐'고 물었죠. 하고 싶다고 해서 '10㎏을 빼야 할 것 같은데?' 했는데 '빼야지'라며 한 달 동안 훌륭하게 해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스태프들과는 어떤 인연?

남연우 "오도이 음악감독도 17년 된 사이로 친동생 같아요.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음악에 대한 생각이 너무 같아요. 소울 스테이지 그룹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끝까지 함께 했어요. 대사 쓸 때도 같이 만들어갔어요.

이왕형 PD님은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시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게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 작품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오도이 "어떤 분이 평을 쓰셨는데 '이해라는 단어가 나에게도 주는 어떤 공포?'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땐 나에게도 오는 공포 같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공포라는 생각 같습니다."

홍정호 "사랑이라는 단어를 되게 좋아해요. 이해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어려운 것 같은데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 사랑합니다."

한명수 "민낯, 가면 단어가 생각납니다. 누구나 살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면 하나 쓰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안성민 "소주. 소주를 좋아하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소주로 비유하고 싶습니다."

남연우 "낯섦. 영화 전체적 이야기로 봐도 그렇고요. 개봉하니까 저예산 영화가 노출되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관객이 찾아주는 것도 낯선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장>을 생각하면 낯섦이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면 의미가 깊을지?

오도이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 번, 두 번 본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더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감사하게도 여러 번 보신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볼수록 다른 캐릭터들도 보인다고 해요."

홍정호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모든 분이 영화를 보시고 같이 느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한명수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보셨으면 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해 개인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요. 영화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안성민 "지구상의 모든 분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봤는데 진짜 형들이 영화 만들 때 정말 너무 열심히 만들었어요. 진심을 다하는구나가 느껴져서 정말 많은 분이 보시고 형들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연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분, 인간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이렇게 찍어야 해, 인간은 이래 답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남연우 "<내 나이 열네 살> 작품이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열네 살 소년을 위로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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