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름없는 새> 스틸 컷.

영화 <이름없는 새> 스틸 컷.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가 시작되면 백화점 시계점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둡고 난장판이 된 집 소파 위에서 볼멘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토와코(아오이 유우 분)의 모습이 보인다. 곧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토와코는 소리를 지르면서 성질을 낸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엄습하는 불안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진다. 일본 영화 <이름 없는 새>를 휘감는 전체적인 분위기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이 작품은 누마타 마호카루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원제는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로 국내에서는 <이름 없는 새>라고 이름 붙였다. 이 작품은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성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차갑게 그려냈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육체적·심리적으로 파멸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나 여기에 주인공이 알지 못했던 사랑이 숨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미스터리하게 촘촘히 묶여 영화에는 긴장감이 돈다.

토와코는 15세 연상의 동거인 진지(아베 사다오 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지는 뭐든지 서투르다. 겉모습은 지저분하다. 이 어울리지 않는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토와코는 밥을 차려줘야 먹고 진지가 놓아둔 돈을 쓴다. 일방적인 관계는 침대에서 극에 달한다. 성적 쾌락마저 토와코만 느낄 수 있는 장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의 행방은 의문을 넘어 공포심까지 들게 한다.

토와코의 기억은 8년 전 연인이었던 쿠로사키에 머물러 있다. 오로지 그를 그리워할 뿐이다. 그런 토와코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백화점 시계점 직원이면서 유부남인 미츠시마(마츠자카 토리 분)와 불륜을 저지르면서다. 사랑의 말은 달콤하고 선물은 마음을 빼앗는다. 아내와 헤어지겠다는 마코토의 말에 토와코는 행복한 나날을 꿈꾼다. 아이러니하게도 토와코의 언니의 남편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영화 <이름없는 새> 스틸 컷.

영화 <이름없는 새> 스틸 컷. ⓒ 부산국제영화제

 
애초부터 불안함을 안고 태어난 사랑은 완성될 수 없다. 어쩌면 옛 연인에게 당했던 폭력과 아픔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토와코에게 새로운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또 하나의 굴레를 반복했을 뿐이다. 과거 쿠로사키에게, 또 미츠시마에게 자신은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토와코는 이미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토와코를 구하는 건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아래에 있던 진지다. 영화 제목처럼 토와코가 알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을 이제야 이해해보려고 할 때 그마저도 어쩌면 늦은 것일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똑같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까. 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그 해답을 찾는 건 관객 각자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지탱해 나가는 것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덕분이다. 순수한 얼굴으로 차가운 내면을 잘 그려내는 아오이 유우의 연기는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그는 드라마 <속죄>(2012)에서 15년 전 겪은 공포로 인형처럼 차갑게 살아가는 아내 역을 맡은 바 있다. 순수와 공포의 두 얼굴을 지닌 진지를 표현한 아베 사다오의 연기에선 깊은 내공이 보인다. 둘의 실제 나이는 15살 차이로 원작과 같다.
이름없는 새 아오이 유우 아베 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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