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강기훈 23만에 무죄 판결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날 강 씨는 "오늘 사법부의 판결은 1992년 대법원 판결 등 자신들의 판단과 징역 등 일련 과정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란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저는 당사자로 재판받았지만 주변에서 똑같이 아파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 분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고 바람"이라고 말했다.

▲ '유서대필' 강기훈 23년 만에 무죄 판결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씨가 지난 2014년 2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날 강씨는 "오늘 사법부의 판결은 1992년 대법원 판결 등 자신들의 판단과 징역 등 일련 과정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란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저는 당사자로 재판받았지만 주변에서 똑같이 아파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 분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고 바람"이라고 말했다. ⓒ 유성호


1991년 4월,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가 경찰에게 쇠파이프로 집단으로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 죽음에 항의하고 정권을 규탄하기 위해 5월이 끝날 때까지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이런 정국 한복판에 있었다.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분신 사망 후 발견된 유서가 동료인 총무부장 강기훈이 쓴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24년 후인 2015년에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로 확정된다.

<국가에 대한 예의>는 이 사건의 주인공인 강기훈에 관한 다큐멘터리이자, 91년 4월의 강경대 사망 사건 이후 정권의 폭압에 죽음으로 항거한 젊은 청춘들에 관한 영화이다. 91년 4월과 5월의 상황을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맥락을 개관하고, 희생자 유족 등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의 현실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긴다. 불행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 솔직하고 담백한 증언이 많아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강기훈의 클래식 기타 연주 레퍼토리에 전체 구성을 맞추는 시도는 독특하다. 다만, 이런 구성 자체가 생소하기도 하고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강기훈이란 인물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건의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15일 오후 5시 메가박스 장산 5관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는 권경원 감독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감독의 제작 의도와 관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목의 의미

 유서를 대필했다고 국가가 고발했던 손은 이제 기타의 선율을 만들어낸다.

유서를 대필했다고 국가가 고발했던 손은 이제 기타의 선율을 만들어낸다. ⓒ 부산국제영화제


- <국가에 대한 예의>란 제목은 어떻게 의미로 붙인 것인가?
"제목이 이렇게 나온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강기훈씨 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피해를 본 사건이었다. 그게 몇몇 악인들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또한 음악과 태도, 그리고 당시의 수많은 죽음을 다룬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었다. 이전 제목에 들어 있던 강기훈씨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싶었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 대구에서 왔다. 영화에도 나오는 (강기훈씨 사건) 담당 검사 곽상도 의원 지역구에 산다. 제목만 봤을 때는 영화 분위기가 어두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음악과 사진이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레 눈물이 났다. 이런 조합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스틸 사진을 많이 사용한 것을 영화적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늘 불편해했던 강기훈 선배를 보여 줄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요즘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들이 일종의 자기표현이듯, 클래식 기타 연주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강기훈이란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는 음악(비틀스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이 의외였지만 영화와 너무 잘 어울렸다. 사람들은 진실을 회피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진실을 접했을 때 느낄지도 모를 아픔이나 고통을 감당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맞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회피한다. 91년에 대학교 신입생이었는데, 당시에는 왜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들의 죽음을 모른 체하는지 정말 궁금하고 답답했다. 나에게는 이때 일어난 일들이 91년의 세월호이다. 개인적으로 아직도 4, 5월이 되면 꽃향기와 화염병과 최루탄 냄새가 같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생각했어야 했나, 왜 사람들은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 기획은 극영화였다. 하지만 강기훈씨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병고를 겪으면서, 또 재심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로 바뀌었다. 강기훈씨 주변 사람들이 '이 사건 재심 청구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 영화로 좀 만들어 봐'라며 나에게 권유했다. 처음엔 다른 감독님들 이름까지 적어 주며 그들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분들이 모두 당대의 치열한 다른 쟁점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 작품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1/10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냥 소개만 한 것이다. 정보를 거칠지 않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꽤 힘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에 관해서는 여러 곳에 쓴 글이 있다. (다음 카카오) 스토리 펀딩 같은 데도 많이 썼고. 이렇게 덧붙일 수 있겠다. 마음속에 완전히 가라앉아 버린 것들을 꺼내느라 시간이 많이 갔다고. 만드는 데만 4년이 걸렸다. 강기훈씨와 만난 후로는 7년이 흘렀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영화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의 한 장면. 오는 19일 오후, 한 번 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의 한 장면. 오는 19일 오후, 한 번 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 전주에서 영화 공부하는 학생이다. 제목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 영화를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 영화인으로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예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너무 큰 주제여서….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이 슬슬 후회되기 시작한다. (장내 웃음) 사실 나는 '경력 단절 영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절한 금자씨> 스태프로 일한 후 현장을 떠나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생활이 안 됐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꿈을 잠시 접을 줄 아는 것, 그러면서도 자책하지 않고 나름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애정을 잃지 않고 있으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좀 다른 얘기지만, 프랑스 신문 <르 몽드>가 당시의 한국 상황을 보도하면서 '왜 그렇게까지 분신을 할까? 극동 애들은 이상해'라는 시각으로 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들에게 '그래, 우리는 국가를 참 좋아해서 예의도 차려.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몸에 불을 붙이기도 했어'라는 논평을 되돌려 주고도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거나 관심 갖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 싶다. 강기훈씨는 너무 멋있는 사람이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런 마음을 관객들에게 표현하고 싶었다. 너무 직설적이지는 않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국가에 대한 예의>는 부산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되어 관객과 처음으로 만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 작품이다. 19일 오후 7시 상영이 한 번 더 남아 있다.

국가에 대한 예의 강기훈 권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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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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