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발레단의 레나타 샤키로바와 필립 스쵸핀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의 갈채에 화답하고 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레나타 샤키로바와 필립 스쵸핀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의 갈채에 화답하고 있다. ⓒ 강인규

 
"스파시바, 스파시바…."

무릎이 불편해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가 무대 앞에 서서 박수를 치며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비쳤다. 잠시 후 어린 무용수가 커튼 앞으로 걸어나온다. 객석에서 또다시 요란한 박수의 파도가 일었다. 출구로 나가던 관객들까지 되돌아와 박수를 친다.

이 체구 작은 무용수는 막이 내린 뒤 이미 두 차례나 인사를 한 터였다. 하지만 열정적인 러시아 관객들은 공연에 감동하면 몇 번이고 공연자를 불러낸다. 그러면 무용수들은 오랜 공연으로 피곤할 텐데도 거듭 무대 위로 나와 관객들의 환호에 정성스레 화답한다.

할머니는 끝까지 남아 손뼉을 쳤다. 예술가가 자신을 찾아 준 관객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팔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증손녀 뻘의 발레리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엇때문에 고마워하는지 이유를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주름잡힌 두 손에서 터져나오던 박수보다 얼굴 표정이 더 크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내게 이토록 큰 행복을 안겨줘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의 모습. 올해 가을로 235년째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극장 맞은편에 공사중인 림스키-코르사코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의 모습이 보인다. 차이콥스키와 프로코피에프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의 모습. 올해 가을로 235년째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극장 맞은편에 공사중인 림스키-코르사코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의 모습이 보인다. 차이콥스키와 프로코피에프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 강인규

 
무용수 이름은 레나타 샤키로바. 2015년에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마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 입단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봄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을 맡았다. 바가노바를 졸업하려면 8년을 공부해야 하지만, 대개 10살 남짓 어린 나이에 입학하기 때문에 졸업을 해도 여전히 십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소설에서 줄리엣은 14번째 생일도 지나지 않은 소녀로 등장한다. 샤키로바는 내가 무대에서 본 줄리엣 가운데 본래 주인공의 나이에 가장 가까운 무용수였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줄리엣 중 하나였다. 

의사, 변호사, 무용수?

불려나오는 횟수가 늘 수록 샤키로바의 얼굴은 도리어 생기로 빛났다. 온 몸이 땀에 젖고, 풀린 머리칼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도, 그의 환한 웃음은 무대 위로 쏟아지는 조명만큼이나 밝았다.

어느 나라에서든 공연자와 팬 사이의 뜨거운 애정과 연대를 체험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하지만 무용에 관한 한 러시아만큼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커튼이 수차례 오르내린 뒤 객석 다수가 빈 상태에서도, '한 번 더' 무용수를 보고 가려는 팬들이 남아 박수를 친다. 그리고 러시아 무용수는 이들의 열망을 무시하는 법이 없다.

나는 일곱 번까지 나와 인사를 하는 무용수를 보았다. 조명이 꺼진 후에도 네댓 명이 남아 손뼉을 치자, 그는 커튼 옆으로 걸어나와 다시 한 번 우아하게 무릎을 굽히고는 양 손을 포개어 가슴에 댔다. 대단한 무용수에, 대단한 관객들이다.
 

 한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허리를 굽혀 절하고 있다. <돈키호테>에서 키트리 역을 맡은 아나스타시아 마트비엔코.

한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허리를 굽혀 절하고 있다. <돈키호테>에서 키트리 역을 맡은 아나스타시아 마트비엔코. ⓒ 강인규

 
지난해 여름, 페테르부르크에서 카잔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23시간이 걸리는 긴 기차 여행에서 나는 젊은 러시아 부부와 같은 객실을 쓰게 되었다. 아내와 남편 모두 변호사였으며, 부인의 친정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이들이 앉은 좌석 옆에 하늘 색 천과 흰 색 레이스로 예쁘게 꾸며진 바구니가 보였다. 그 안에는 태어난 지 5일 된 딸이 잠들어 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릴 시간이 되면, 나는 객실 밖 통로로 나와 천천히 뒤로 물러가는 언덕과 들판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엄마가 문을 살짝 열고 이제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다. 객실로 돌아오자, 부부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덩달아 머쓱해진 내게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 튀어 나온다.

"나중에 딸이 뭐가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해보셨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동시에 입을 연다.

"무용수요."

별 생각없이 던진 질문에 흥미로운 대답이 나오자,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조금 더 대담한 질문을 던져본다.

"두 분 모두 성공한 변호사인데…변호사나 의사가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안 하시고요?"

두 사람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용수를 향한 값비싼 투자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많은 러시아 아이들과 부모들의 꿈이다. 사진은 학교 정문 앞의 팻말.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많은 러시아 아이들과 부모들의 꿈이다. 사진은 학교 정문 앞의 팻말. ⓒ 강인규

 
바구니 속에서 잠자던 아이는 생일이 서너 번 지나면 발레 동작을 배우기 시작할 터이고, 머잖아 바가노바나 모스크바 국립무용학교에 원서를 낼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소망대로라면, 딸은 졸업 후 마린스키나 볼쇼이에 입단하는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바가노바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매년 3천 명 넘는 지원자 가운데 60명만 뽑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입학은 시작일 뿐이다. 학생들은 무용만 배우는 게 아니라, 일반 교과와 더불어 피아노, 외국어, 고전 수업 등도 함께 들어야 한다. 졸업까지 가는 사람이 입학생의 절반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 이 과정의 어려움을 말해 준다.

러시아 무용수의 인터뷰를 보면, 이 시절의 한탄이 빠지는 법이 없다. 발레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유아기를 갓 벗어난 코흘리개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생이별이기 때문이다. 볼쇼이의 스타 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라고 다를 건 없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그는 키예프 발레학교로 가기 위해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야 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는 쉽지 않지요. 제게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서 많이 울었고, 춤도 그만두고 싶었어요. 얼마 전 네 살이 된 딸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너를 떠나 보내지 않을 거야' 다짐하기도 했지요."

세계적인 무용수가 된 뒤에도, 자하로바는 자신을 멀리 보냈던 부모에 대한 서운함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 준 어머니에게 고마워하는 다소 모순적 감정도 느끼고 있었다.
 

 볼쇼이 발레단의 대표적 스타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지젤> 공연을 마친 뒤 파트너 무용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볼쇼이 발레단의 대표적 스타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지젤> 공연을 마친 뒤 파트너 무용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강인규

 
"저를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어떻게 딸을 그 먼 곳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셨어요.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신의 뜻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감사하게 됐습니다. 제 운명을 정해준 어머니에 대해서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발레리나 자하로바'로서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모든 러시아 아이들이 부모에게 등 떠밀려 억지로 발레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적잖은 학생들이 어린 나이에 부모와 작별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스스로 택한다. 예컨대 마린스키의 솔리스트 아나스타시야 콜레고바는 5살때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본 뒤 무용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러시아비얀드>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백조의 호수>를 본 뒤, 정교하고, 우아하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그 꿈같은 세계에 반해버렸어요. 공연을 본 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코흘리개의 철없는 몽상이 아니었어요."    

그의 고향은 첼랴빈스크라는 도시로, 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로 40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다. 그리고 수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무용수의 꿈을 위해 그보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다.

러시아 뉴스채널 <아르티 RT>의 다큐멘터리 "발레 알 라 루스"는 페테르부르크행 기차에서 꼬박 이틀을 보낸 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바가노바에 입학하게 된 딸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도대체 발레가 무엇이기에, 러시아의 아이와 부모들이 그처럼 고통스럽고 값비싼 투자를 하는 것일까?

러시아 발레와 러시아 혁명
 

 러시아 발레는 러시아 혁명 이후 급속히 대중문화로 발전했다. 사진은 <라 바야데르> 공연을 마친 마린스키 발레단원들의 모습.

러시아 발레는 러시아 혁명 이후 급속히 대중문화로 발전했다. 사진은 <라 바야데르> 공연을 마친 마린스키 발레단원들의 모습. ⓒ 강인규

 
무용이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무가로 잘 알려진 조지 발란신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시립발레단과 아메리칸발레학교를 세웠다. 그는 무용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무용수를 경찰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둘 모두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한 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거기 동의하지 않는데, 경찰은 잔뜩 긴장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보여야 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요."

모든 예술은 도구를 사용한다. 화가는 색과 형태, 작곡가는 소리, 작가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무용수는 자신의 몸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무용이 미술, 음악, 문학보다 뛰어난 예술이 되지는 않지만, 표현의 수단과 내용이 매우 근접해 있거나 겹치는 드문 형태의 예술임은 분명하다.

자하로바가 "현실에서보다 무대 위에서 감정을 표현하기가 더 쉽다"거나 "발레는 (직업이 아닌) 내 삶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무용수의 수명은 그 어떤 예술가보다 짧다. 이들의 역량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최고조에 달한 뒤 급속히 퇴조기를 맞는다.

"발레는 내 삶 그 자체"라고 말한 자하로바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걱정스레 덧붙였다. 그의 나이는 이미 올해로 38살이다. 길고 혹독한 훈련, 짧은 수명, 보장되지 않은 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많은 아이들은 무용수가 되기를 소망하고, 가족들은 이 꿈을 위해 이별과 경제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이런 '비합리적 투자'를 기꺼이 하게 만들고, 그 결과 발레를 '국민 예술'로 만들어 낸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여러가지 역사적 사건과 우연이 있었지만, 가장 큰 동기를 제공한 것은 러시아 혁명이었다. 혁명이 러시아 발레에 끼친 영향은 이 정치적 사건의 사회문화적 영향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다.

도대체 발레와 혁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일까?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관련기사] 혁명 100주년 맞은 세계 최대의 국가, 러시아를 다시 보다 ①

러시아 발레 바가노바 마린스키 러시아 혁명 샤키로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