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강필석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서편제>는 올해라 사연을 맞은 작품으로, 동명 원작의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뮤지컬 음악의 문법이 함께 어우러진 극으로, 지난 8월 30일 개막하여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상연된다.

▲ 커튼콜의 뿌듯함 "커튼콜 때 좀 남다르게 무언가 오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되게 거칠지만, 그러면서도 참 신기한 작품이거든요. 뭔가 묵직한 게 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커튼콜 때 눈물이 나는 건 막 슬퍼서라기보다 뿌듯해서 나는 눈물이거든요. ‘우리의 무대 에너지를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꼈구나’라는 게 느껴질 때 뿌듯하거든요.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관객들한테 공기를 잘 전달해줬구나’하는 뿌듯함. (웃음)" ⓒ 로네뜨


동호는 유봉이 싫었다. 저 뜨거운 '햇덩이'는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불살라 죽였다. 동호가 보기에 유봉은 '소리에 미친 사람'이었다. 소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어머니가 죽은 후 자신을 거두어주긴 했지만, 동호는 정처 없이 떠돌며 소리판을 찾아다니는 이 생활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일하게 자신을 붙들어주는 건 누이인 송화였다. 동호는 송화가 좋았고, 송화도 동호가 좋았다. 동호가 북을 치고, 송화는 소리를 하고, 그저 그렇게 소박하게 살 수 있다면 좋았을까. 송화의 소리는 여기에 있었지만, 동호의 소리는 여기에 없었다. 그래서 동호는 떠난다. 서양 리듬이, 유랑하는 밴드의 소리가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울렸으니까. 언젠가 각자의 소리를 찾아 다시 마주칠 그날을 그리면서.

그러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어느 소리판에서 마주한 송화. 송화의 눈은 멀어 있었다. 소리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저 사람이, 기어이 저 햇덩이가 누이의 눈마저 불태웠다. 동호는 울면서 자책했다. 송화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송화는 그 자리에 머물겠다고 한다. 그렇게 둘의 길은 다시 갈라진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동호는 보고픈 누이를 다시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이청준 작가의 동명 소설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동명 영화로 널리 알려진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는 원작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네 소리와 현대적 소리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삼연 이후, 제작사의 문제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작진과 배우의 마음이 소리가 모이듯 한 데 모여 기적처럼 네 번째 무대를 올릴 수 있었다.

유봉을 미워했고, 송화를 사랑했던 동호. 극의 관찰자이자 전달자로서, 동호는 그 분량에 비해 큰 비중을 지닌 캐릭터이다. 지난 9월 28일 늦은 오후,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로비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 배우 강필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애증의 아버지, 유봉과의 관계

 뮤지컬 <서편제>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강필석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서편제>는 올해라 사연을 맞은 작품으로, 동명 원작의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뮤지컬 음악의 문법이 함께 어우러진 극으로, 지난 8월 30일 개막하여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상연된다.

▲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항상 큰 소리를 치셨던 것 같아요. 되게 어린 데도, 막 살갑게 해주지 않으셨죠. 사탕 사달라고 조르면, 아무 반응도 없으시고, 사온단 말씀도 안 하시더니 저녁 때 그걸 사오세요. 할머니가 주시면서 '할아버지가 사오셨다. 가서 감사하다고 해라'라고 그러면 알잖아요, 애기도. '할아버지가 날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 로네뜨


<서편제>의 주요 인물은 송화, 유봉, 동호 세 명이다. 유봉은 재능 있는 소리꾼이지만, 큰 소리꾼이 되는 데는 실패한 인물이다. 동호의 어머니는 밭을 매며 노래를 하던 사람이었고, 유봉과 사랑하는 관계였지만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 유봉과는 피가 안 섞인 동호는, 유봉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미워한다. 소리에 재능은 있지만, 큰 소리꾼이 되기 위해서는 '한'이 필요하다. 동호가 다른 소리를 찾아 떠난 사이, 유봉은 송화에게 그 한을 심어주기 위해 그녀의 눈을 멀게 한다. 어머니에 이어 누이까지, 동호는 유봉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뭔가, 그렇다고만 하기엔 더 복잡한 무언가가 응어리져 있다.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랄까.

"동호가 소리에 재능이 전혀 없진 않았을 것 같아요. 스프링보이즈 오디션에서 '서프라이즈' 합격하잖아요? 유봉의 말을 빌리자면 '네 안엔 너무 화가 많다'는 게 문제였겠죠. 지르기만 한다고. 그런데 사춘기에는 사실 얼마나 싫겠어요, 유봉이.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는 건데, 자신에게는 한 번도 '잘한다' 소리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 소리가 얼마나 지긋지긋 했겠어요.

캐릭터를 공부하면서 '저 사람(유봉)에게 난(동호) 되게 인정받고 싶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증오도 있지만, 정말 애증이죠. 유봉이 동호에게 '잘한다'라고 했으면 남아있었을 거예요. 다른 것이 좋고 끌려서 떠났지만, 결국 거기 가서도 뭔가 막 이루는 게 아니라 방황하잖아요. 계속 환청이 들리는 걸 보면 역시나 동호에게는 그 소리에 대한 것, 아버지에 대한 게 쭉 남아있던 거겠죠.

남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같은 게 있잖아요,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은. 동호도 그랬던 것 같아요. 유봉이 비록 진짜 아버지는 아니지만, 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던 것도 있는 게 아닐까. '내 엄마를 뺏어간 저 남자'라는 것도 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소리가 따로 있는 것도 있지만, 만약 유봉이 동호를 인정했다면 잘 따라갔을 것 같단 생각도 들어요."

동호에게 애틋한 감정을 내비쳤던 송화야 그렇다 치지만, 그토록 모질기만 했던 유봉도 동호가 마냥 못 미더운 것만은 아니었던 걸까. 동호가 떠난 뒤 유봉은 '밥을 잘 쳐 먹고 다니는지'하면서 에둘러 걱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전파를 탄 동호의 새 앨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악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객의 시점에서 보이고 들리는 장면일 뿐이다. 동호의 시선에서는 유봉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나중에 동호가 계속 송화를 찾아다니다가, 어디 마을 사람 얘기를 듣는 장면 있잖아요. '어디로 또 떠났어요. 아빠 죽고 나서'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대사 속에 '아빠가 죽고 나서'에 마치 무언가를 깨닫는 것 같았거든요. 나(동호)는 정말 지겨운 그 소리에서 겨우 도망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죽고 나니까 깨달은 거죠. '그냥…. 난 그냥 저 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었던 거구나'라고요. 그 소리를 이겨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정작 그토록 미웠던 아버지가 죽고 나니까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 대신 슬픔이 차오르는 이유를.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을 찾아가는 세 명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유봉의 방식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잘못됐죠.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해요. 유봉의 행위는 이해가 안 돼죠. 그런데 소통의 문제로만 놓고 보면, 우리도 흔히 느끼는 문제잖아요. 많은 가족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서 상처 주는 그런 게 있으니까.

저희 이전 세대 아빠들이 마음은 그런 게 아니면서도 되게 모질게 하는 게 있잖아요. 옛날 당시 그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누군가가 멀어지고 나면, 그 사람이 했던 아주 자잘한 행동까지도 기억이 나잖아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날 막연히 미워하는 건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기도 하고…. 눈만 멀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밉진 않았을 텐데. (웃음)

저도 배우가 되기 위해 연습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엄청 반대를 하셨거든요. 그걸 제가 설득하고, 설득이 되어서 아버지의 승낙을 얻었을 때, 이미 그때부터 '우와, 다 됐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웃음) 마치 배우가 벌써 된 것 같았어요. 아직 학교도 합격하지 못했고, 이제부터 시작인 단계였는데도 말이에요."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뮤지컬 <서편제>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강필석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서편제>는 올해라 사연을 맞은 작품으로, 동명 원작의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뮤지컬 음악의 문법이 함께 어우러진 극으로, 지난 8월 30일 개막하여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상연된다.

▲ 송화와 동호 "송화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지만, 동호는 달려가고 있지 않더라고요. 송화는 사실 변치 않고 계속 가는 캐릭터라면, 동호는 계속 변하죠.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방황하죠. 그래서 대마도 하고…. 그러다 결국 둘이 마지막에 딱 만나는 지점이 관객의 눈에도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도 있을 거고, 그리움도 있을거고…. 인생에 대한 만남이잖아요." ⓒ 로네뜨


한쪽에 동호가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가 있다면, 다른 쪽에는 동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누이 송화가 있다. 길을 따라 걷던 그 어린 시절에도 송화는 동호를 챙겼고, 동호는 송화가 좋았다. 유봉에게 혼이 난 뒤에도 동호를 안아주던 건 송화였고, 서양 소리를 찾아 떠나가려고 할 때도 동호의 발목을 잡았던 게 송화였다. 어쩌다 다시 마주친 그 판에서 송화의 눈이 멀어 있을 때, 동호는 누이를 붙들고 흐느끼며 무너진다.

"사랑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송화를 떠나고 나서는 미안함이 너무 클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의지할 사람은 어찌됐던 이 사람 밖에 없던 거잖아요.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냥, 더 깊은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떠난 뒤에 누이가 눈 먼 것을 보고는 그 죄책감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아버지라도 두들겨 팼을 텐데, 내가 없어서 내 누이가 이렇게 되었구나'라는 거니까. 그리고 소리가 더 싫어졌겠죠. '지긋지긋한 이놈의 소리, 저 인간, 저게 도대체 뭐길래 우리 누나를?'하면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송화보고 같이 떠나자고 할 때 송화가 안 떠나잖아요.

동호는 그 상황을 이해 못하죠. '난 괜찮아, 가'라고 송화가 얘기했을 때. '누나, 너도 미쳤구나. 그 놈의 소리가 뭔데! 괜찮아. 너 지금?'이라고 할 정도로. 나중에야 이해를 하는 거죠. 우리 누이의 마음을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를 하지 않았을까. 저도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 때부터 송화는 완전한 '예인(藝人)'으로 서있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있어서는 안 되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 과정을 끝내고 평온해진 거니까. 많은 예술가 중에도 그런 예술가들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실, 궁극의 그걸 얻었다고 해서 정말 인생이 행복한가. 이건 물음표죠. 여러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송화가 잘 살았던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서로 더 헤맸던 게 아니었을까…."

 뮤지컬 <서편제>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강필석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서편제>는 올해라 사연을 맞은 작품으로, 동명 원작의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뮤지컬 음악의 문법이 함께 어우러진 극으로, 지난 8월 30일 개막하여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상연된다.

▲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면서 "사실 연습 중·후반부에 엄청 헤맸어요. 오히려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동호의 화자적인 부분을 너무 많이 신경썼던 것 같아요. 동호의 행동에 논리를 세우고 싶었던 거였는데, 사실 이 작품에는 그것보다 더 큰 게 있더라고요. 그냥 존재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힘들이. 그래서 처음 드레스 리허설을 갈 때 '생각을 하지 말아보자'하고 갔어요. 제가 뭘 하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러자 (이지나) 선생님이 그러셨죠. '오케이. 이거야'라고." ⓒ 로네뜨


나이가 먹고, 다른 종류의 소리에 대해 나름의 일가를 이룬 뒤, 동호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송화를 다시 찾아 헤맨다. 하지만 굳이 동호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던 송화는 자꾸만 피하고, 간신히 다시 마주하게 되는 데 5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감정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만약 죽기 전이라면 뭘 떠올릴까' '나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을까' 같은 거요. 동호가 죽기 전인 건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계속 찾아가는 설정이잖아요. 50년의 세월 그 중간에는 동호가 송화를 찾지 않았어요. 처음에 좀 찾다가 찾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있는 거죠.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화랑 동호가 마지막에 마주보고 있는 순간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랑 태희가 마주보고 있는 순간 같다'라고요. 둘의 대화가, 실제 대사와는 달리 서브 텍스트로만 보자면 '잘 지냈어?' '잘 지냈니?' '어이구, 많이 늙었네' 이런 어떤 이야기 같은 거거든요. 소리나 엄마 같은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대신에 '우리, 드디어 만났네. 몇 십년 만에...'라고 말하는 그런 느낌…. 둘이 마주 섰을 때, 네 소리를 들어봐야겠다는 것도, 그래서 결국 얻은 그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그런 게 다 아니라 '너 소리나 오랜만에 한번 들어보자'는 거죠.

그걸 들으면서 북을 치면…. 그 맨 마지막에 등을 두드려주잖아요. '너 진짜 힘들었지'라는 말 대신 푹푹 두드려 주는데, 엄청 울 수도 있지만 그걸 애써 표현하지 않아요. 눈물이 나지만…. 그냥 멈춰버리는, 무대의 공기가 멈춰버리는 것 같아요. 탁 듣고 났을 때 덩그러니 남는 게 있죠. '심청가'를 하는 내내 무언가 인생이 느껴지잖아요. 관객 분들도 그걸 느끼고 우시는 게 아닐까요."

간신히 돌아온 작품, 그 길에 함께하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강필석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서편제>는 올해라 사연을 맞은 작품으로, 동명 원작의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뮤지컬 음악의 문법이 함께 어우러진 극으로, 지난 8월 30일 개막하여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상연된다.

▲ 다시 만난 뒤 "아옹다옹 잘 살았을까요? 둘이 같이 살진 않았을 것 같지만…. 누이를 잘 케어해줬겠죠, 동호가? 그렇게 살았을 것 같아요.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누이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니까. 저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누이 혼자 그동안 너무 외롭게 있었으니까. 50년 만에 북 치고 노래하며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 로네뜨


<서편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필석 배우의 눈시울은 여러번 옅은 붉은색이 되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촉촉하게 머금은 감정이 눈가에 맺혔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강필석은 수차례 동호가 되었고, 그 때마다 특유의 느릿한 말투를 멈추며 잠시 숨을 고르고는 했다. 이 배우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그의 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참 다행이다. 그가 이 작품을 안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저는 처음에 공연을 본 게 아니고, 음원을 들었어요. 음원을 들었는데…. 처음 접했을 때, 차 안에 있었는데, '심청가'를 듣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어요.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몰라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하면서요. 그냥 음원을 들은 건데…. 그리고 지난 삼연(2014년) 때 공연을 봤는데 정말 좋았거든요. 

그러고 나서 어느 순간 보니까 '서편제가 못 돌아온대~'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좋았었는데 다시는 볼 기회가 없겠구나'싶었죠. 그러다가 작년에 이지나 연출께서 '필석아, <서편제>를 다시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몰라. 하게 되면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본도 보지 않고 하기로 결정했어요. 참 반가웠거든요. 뭔가 의무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창작 뮤지컬 중에 좋은 작품들, 좋은 콘텐츠들이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계속 발전해야 하고, 시대에 따라서 변화도 해야 하죠.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좋은 콘텐츠를, '장사가 안 된다'라고 버려버리면 가망이 없는 거잖아요. 계속 새 것이 들어온다고만 해서 발전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많은 창작물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100개 중 10개도 안 돼요. 그 10개도 안 되는 정말 좋은 것들은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어요. 그래서 '오케이,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그런 자리에 저를 골라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뮤지컬 <서편제>에서 '동호'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강필석 배우가 열연하는 모습. <서편제>는 올해라 사연을 맞은 작품으로, 동명 원작의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뮤지컬 음악의 문법이 함께 어우러진 극으로, 지난 8월 30일 개막하여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상연된다.

▲ <서편제>에 합류하는 조건 이지나 연출의 제안에 바로 합류를 결정한 강필석 배우. 그가 물어본 건 딱 한가지였다고 한다. "이자람 배우 해요?" "그럼." "OK." 삼연 때 이자람 배우의 공연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그는, 이번 시즌에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했다. ⓒ 로네뜨


이번 <서편제>는 의미 있는 작품의 의미 있는 시즌이라고 할 만하다. 조광화, 윤일상, 이지나, 김문정 등 국내 뮤지컬 창작진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다시 뭉쳤고, 우여곡절 끝에 <서편제>가 돌아왔다. <서편제>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앓는 팬은 여럿 되었지만, 상업적으로 얼마나 성공할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확실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자리를 제안 받은 배우 강필석은 '의무감'을 가지고 함께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했던 강필석은, 이제 배우의 입장에서 <서편제> 귀환에 동참했다.

"저도 처음 런 스루(Run Through) 때 엄청 울었는데. 그냥 북소리가 나면, 별거 아닌 춤동작을 보면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처음 '심청가'할 때는 우느라고 북도 못 쳤어요. 끝나고 나서. '어, 나 한국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저도 모르는 어디 깊숙한 곳에서 한국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낀 게 아닐까요. 특히 드러내지 않는 것이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소리도 그렇죠. 대부분의 뮤지컬 노래들은 쭉쭉 자기가 느끼는 것을 뱉어내잖아요. <서편제>는 그걸 뱉지 않고, 머금고 있어요. 와, 그게 미치겠더라고요. 화나면 소리를 내야하는데, 그걸 다 뱉지 않고 머금고 있으니까. '와, 저게 뭐지?' 그 느낌을 말로 할 수가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사실 소리의 아름다움을 잘 몰랐어요. '왜 저렇게 목 아프게 노래를 하고 있지?' '왜 저렇게 심심하게 춤을 추지?' 했는데…. 그 호흡이 정말,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도 서양의 노래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서양의 것들을 훨씬 많이 보고 있고…. 물론 뮤지컬 <서편제>가 한국적이기만 한 작품은 아니죠. 두 개를 적절히 조화시켜서, 그 밸런스를 되게 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참 잘 만들었죠.

관객 분들도 조금 편하게 생각하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판소리 공연이라 생각하시고, 좀 난해하고, 보기 힘든 게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오셔서 보시면 '오. 소리라는 게 저런 거야?' 하시며 굉장한 것을 얻어 가시게 될 거예요. 소리도 있고, 그 외에도 재미난 부분들이 많잖아요."

 뮤지컬 <서편제> 강필석 배우 버전 포스터

▲ <서편제>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께 "관객 분들이 나가실 때, 슬픔을 안고 가는 게 아니라 해소되는 듯한 느낌으로 가셨으면 좋겠어요. 답답한 걸 머금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고~'하며 한숨 내쉬는 거 같이요. 많이 울고 웃는 게 홧병도 안 나고 건강에 좋대요. (웃음) 뭔가 시원하게 한바탕 웃고 울으시고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응어리진 거 다 풀고." ⓒ 로네뜨



서편제 동호 강필석 요정동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