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01.

영화 시작과 함께 한 부부의 달콤한 정사를 멈추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예고도 없이 강행된 공장 자재 철수 사건이 그 발단. 남자가 다니는 엘리베이터 제작 회사에서 벌이진 일이다. 경기가 어렵기에 불가피한 조처라는 회사 측과 그 변화를 부당한 해고로 해석하는 노사 간 대립이 시작된다. 사측은 생산관리자 루이스와 인사관리 담당 마르타를 고용하여 사실상 사업을 현지에서 철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권유하고, 이를 받아들이려는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난다. 장기화되는 노사 대립과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이 영화의 전반부와 중반부를 지탱하는 소재다. 다만, 이 영화 <공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후반부에 이르러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지점에 대한 대안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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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연출한 페드로 피뇨 감독은 다큐멘터리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공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최근 유럽의 큰 문제 중 하나로 떠오른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인간만이 창출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한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기반으로 둔 이 작품은 관객들이 평소 봐왔던 영화완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삭막한 공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든가, 등장 인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다든가 식이다. 또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교수들이 토론하는 장면도 나온다. 다큐멘터리를 경험한 감독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가동을 멈춘 공장의 모습을 무음으로 표현하는 감독의 연출은 – 무료한 직원 하나가 동전을 던지는 소리나 구석에서 홀로 켜진 라디오의 소리, 일부 직원들이 공터에서 공을 차는 소리만이 화면을 채운다– 이 작품 속 장면들이 실제로 세상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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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재 상황을 끝없는 집단 몰락의 일시적 유예라고 표현하고 있다. 노동력 과잉으로 인해 유럽의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파는 것만으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측과 대립하는 노동자의 모습 때문에 영화 부지영 감독의 <카트>(2014)나 다르덴 형제의 작품 <내일을 위한 시간>을 떠올릴 법하지만, 이 지점에서 가장 뚜렷한 차이가 있다. 개인에 대한 단순한 처우 문제가 아니라 공급의 과잉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비정규직 혹은 이익의 배분 문제가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설명되었던 것과는 달리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조금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의 문제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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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작품에서 주된 갈등은 크게 두 가지다. 직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장을 철수시키려는 사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과, 현실 앞에서 태도를 달리하며 자연스럽게 대립하게 되는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 이 가운데 더 눈에 띄는 것은 후자인데, 그들의 의심이 확증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작품에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희망퇴직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는 첨예한 대립을 보인다. 결정적으로 이 갈등은 사측이 노동자 개개인에게 퇴직금으로 다른 액수를 제시했다는 점이 확인되고, 이를 서로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지며 더욱 커진다. 모두 공장을 지키기 위해 뭉쳤다는 믿음 속에서 막연한 불안이 확장되어 가고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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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는 공장을 버리고 떠난 사측을 대신하여 자신들의 직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주관리경영. 이는 협동조합의 성격을 가진 방식으로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동일한 임금을 지급받는 형식이다. 이로 인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르헨티나의 한 회사로부터 3000개의 부품을 수주 받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자주관리경영의 첫 성과에 직원들은 잠시나마 한없이 행복해하지만, 그 이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 이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그들 중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공장에 노동력을 제공하며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기로 한 첫 회의에서도 각자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며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서로 합의한 규칙을 따르다 보면 그 어떤 일도 진행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사업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경영 경험이 없는 노동자들이 부딪힌 냉정한 현실을 이 영화는 간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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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이 더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들이 이토록 이 문제에 처절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결국 삶의 안정 때문이라는 것을 감독은 강조한다. 공장 문제와 노동자들의 갈등을 주된 이야기로 삼으면서 제이라는 한 노동자의 가족에 시선을 놓지 않는 이유다. 영화의 흐름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가족의 모습은 지금 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문제들이 단순히 노사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냥한 두 마리의 토끼를 두고, 먼저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제거되고 있는 토끼를 아직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나머지 한 마리에게 보이며 '너도 곧 저렇게 된다'고 말하던 제이의 아들 제이미의 말은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것이 단순히 곧 같은 운명을 맞이할 토끼에 대한 말이 아니라, 스크린 밖에 있는 현실 속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진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히 타인의 문제로만 남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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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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