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해숙.

그가 맡은 엄마는 팔색조다. 최근 개봉한 <희생부활자> 속 엄마 명숙 역시 특별하다. ⓒ 쇼박스


'또 다시 엄마?' 라는 표현이 김해숙에겐 사실 맞지 않다. '김해숙표 엄마'는 좀 더 특별한 면이 있다. 때론 드라마에서 보조적 캐릭터에 그칠 순 있겠지만 그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결과물이 최근 김해숙이 출연한 영화에 잘 드러났다.

12일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신작 <희생부활자>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작품에서 김해숙이 맡은 역할 역시 검사 아들을 둔 엄마 명숙이다. 근데 이 엄마가 작품 초반에 사망했다가 다시 부활한다. 그것도 아들을 해치기 위해서.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자.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해숙은 "엄마도 장르라는 생각을 한다"며 운을 뗐다.

엄마라는 장르

김래원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에 그는 "그 어떤 상을 받는 것보다도 더 기쁘다"며 "이런 인터뷰 자리 역시 감사하다"고 애써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여성 배우가 전면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많이 없는데 의미 있고 감사하지. 이번 영화가 특별한 건 그간 흔하지 않았던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장르도 특별했고, 제가 맡은 엄마 캐릭터 역시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엄마였다."

아들을 죽이러 온 엄마라니 그럴 법도 하다. 강도에게 노상 살인을 당한 명숙이 다시 부활한다는 소재 자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었는데 김해숙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읽다가 그 설정에 충격을 받아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시나리오 읽다가 닫았지(웃음).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봤는데 한 번에 읽혔다. 너무 재밌어서, 빨리 촬영에 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출연 결정엔 그래서 크게 고민 안 했다. 결정한 후엔 여러 자료를 봤다. RV(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 주변에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현상이 있잖나. 주위에 귀신을 봤다는 사람도 꽤 있고. 영화가 반전을 거듭한다. 보시면 어렵지 않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극장을 나올 때 아마 울면서 나오실 걸? (웃음)

그리고 또 엄마라고들 하시는데 배우라면 같은 역할이라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역할을 만난 건 운이 좋은 거지. 그간 수많은 엄마를 연기했는데 어느 순간 엄마도 장르구나 느꼈다.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역할이 엄마다. 수많은 감정을 다 가지고 있잖나. 여러 갈래의 모정이 있을 거고 그걸 작품마다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 제 자랑일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선 나름 피나게 노력한다. 어떤 배우가 노력을 안 하겠냐만 끊임없이 같은 역할 안에서도 다른 걸 찾으려 한다."

 영화 <희생부활자> 관련 사진.

영화 <희생부활자>에서 김래원은 신참내기 검사로, 김해숙은 그의 엄마로 나온다. 벌써 세 작품 째 호흡이다. ⓒ 쇼박스


신인 김해숙

그런 의미에서 김해숙을 요즘 춤추게 하는 칭찬은 "예전과 조금씩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는 말이다. 그랬기에 같은 엄마 역을 애써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드라마와 영화 통틀어 아들과 딸로 만난 배우들이 참 많겠다는 농담 어린 질문에 "아마 대강당 하나 빌려야 할 걸?"이라 맞받으며 웃어보였다.

"작품에 함께 나오는 아들, 딸을 사랑하려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임한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잖나! 그냥 어떤 거창한 선배보단 인간적인 선배이고 싶다. 똑같이 배우라는 꿈을 꾸고 살아왔으니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돕고, 따뜻하고 많은 걸 주는 선배이고 싶다.

드라마도 그간 많이 했지만 영화를 통해 같은 엄마라도 다른 걸 할 수 있다고 느꼈다. <해바라기> <무방비도시> 등에서 소매치기 엄마거나 살인자를 품는 엄마였고, <박쥐>에선 전신마비 엄마였다. 그래서 매번 도전이었다. 그걸로 내 존재감을 보이는 게 좋았다. 남들은 섬뜩하다고 피할 수 있지만 <박쥐>는 제 연기 인생에 획을 그을 작품이라 생각했을 정도다. <도둑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역을 언제 해보겠나. 그래서 후배들이 많아도 영화에선 늘 난 신인이라 생각하며 임했다."

40년이 넘는 경력의 배우가 '신인'이라는 단어를 꺼내니 생경해보였다. 단순히 수식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희생부활자>에서도 설정 상 김해숙은 비가 오는 날에 주로 등장해야 했고, 길바닥에 내쳐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직접 임했다. "무서웠지만 중요한 장면들이고, 나중엔 비도 습관처럼 맞았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몸도 고생이지만 정신적으로 힘들긴 했다. 시나리오를 이해했으니 출연한 건데 역시 감정적으론 힘들더라. 명숙이 좀비나 귀신이 아니었기에 그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다. 중요한 촬영 때면 전날 잠을 못 잘 정도였다."

 배우 김해숙.

ⓒ 쇼박스


선택과 몰입

그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김해숙은 지금의 활동에 스스로 만족한다. 그라고 예뻐 보이고 주목받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그는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것 같다"며 "나이 먹은 사람이 예쁜 역할하면 그게 더 흉해!"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멋진 엄마 역을 할 수 있는데 뭘 그런 걸 욕심낼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그 엄마들에 담겨 있다.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게 난 좋다. 역할은 어떻게 준비하냐고? 단순하다. 일단 전 되도록 그 캐릭터에 빨리 빠져들려고 한다. 어떤 사람일까, 평소엔 어떨까 이런 걸 생각한다. 그 방법밖에 없다. 배우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전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사람이 되어서 하는 거라 어떤 걸 계산하고 나가지 않는다. 우는 장면에서도 저 스스로 감정이입이 안 되면 십중팔구 NG가 나더라."

그에게 중견 배우의 정체현상에 대해 물었다. 그러니까 일부 스타급을 제외하고 영화계나 방송 쪽이 젊은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던 터였다. 이 우문에 김해숙이 현답을 내놓았다.

"음, 이 말에 방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 그걸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1시간 뒤 일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그냥 흐름에 맡기는 게 제 인생관이다. 물론 지금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나름의 주관은 있지. 하지만 인간은 굉장히 작은 존재다. 세월의 흐름은 무시 못 하는 거고, 같이 변해가야지. 여배우들의 쓰임 문제, 한국 감독의 조로 현상도 그렇고 다들 좋은 작품으로 더 많이 기회를 가지면 좋지! 하지만 일단 전 제작자가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연기뿐이다. 세월에 맡기는 게 제 선택이고, 그게 제 모습이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힘들 것 같더라. 이 나이를 먹으며 그 방식이 제게 맞는 걸 느꼈다."

사생활의 존중

조금 냉정해 보이지만 후배들에겐 한없이 인자한 선배다. 많은 동료, 후배 배우들이 '롤모델'을 말할 때 김해숙을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지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롱런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원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

"전 헐크나 슈퍼맨이 아니다. 일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 같다. 사사로운 운동도 안 좋아하고, 집에 있을 땐 철처히 개인으로 산다. TV 보는 걸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땐 배우라는 걸 잊거든. 근데 일은 철저하게 한다. 배우로서 보이는 것엔 최선을 다한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이 그래서 힘들 거다(웃음). 허겁지겁 촬영하는 게 싫어서 현장에 미리 가서 대기한다. 집에선 아주 풀어지지. 태어나길 제가 그렇게 태어났다(웃음)."

실제로 김해숙은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두 딸에 대한 정보도 철저히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혼기가 찬 성인이라는 사실 등 단편적인 정보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 붓지 못했지만 절반이나마 최선을 다하려 했다. 잘 자라줘서 고맙지. 배우이기 전에 엄마로 고민 많았지. 그렇다고 작품 활동에 아이들이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선택에 있어선 아이들을 철저히 배제한다. 근데 집에 있으면 밖에 일을 잊는다. 

다행히 아이들도 그런 성향이다. 제가 출연한 영화 시사에 처음 온 게 <도둑들>이었다. 저도 강요하지 않거든. 엄마가 배우인 거지 아이들이 누구의 딸로 밝혀지는 걸 싫어한다. 엄마로서 그건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기 삶을 살아야지 어떤 엄마의 딸이라는 굴레를 왜 씌우나. 혹시나 연기할 생각이 있나 이미 물어봤었다. 없다더라! 언젠가 촬영장에 놀러온 적이 있었거든. 혹시나 엄마 때문에 하고 싶다는 말 못할까 싶었는데 전혀 관심 없다더라! (웃음)"

 배우 김해숙.

ⓒ 쇼박스


"누군가의 엄마라서 행복하고 배우라서 행복하다". 인터뷰 말미 김해숙이 말했다. 자연스러움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단순하지만 해내기 어려운 목표를 오늘도 그는 해내고 있다.


김해숙 김래원 희생부활자 RV 곽경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