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神)'이 아르헨티나를 지옥에서 구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 평가받는 아르헨티나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반면 '메없산왕(메시가 없으면 산체스가 왕)'이라 불리는 알렉시스 산체스는 칠레의 패배를 막지 못하며 다가오는 월드컵에 출전하기 못하게 됐다.

11일 오전 8시 30분(한국 시각) 남아메리카 대륙 전 지역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최종전이 치러졌다. 남미 예선은 다른 대륙과 다르게 남미의 모든 국가, 총 10개국이 홈-어웨이 풀 리그 방식으로 월드컵 본선행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남미에게 주어진 티켓은 4.5장이다. 상위 네 국가는 본선으로 가는 직행 열차에 탑승하고, 5위 팀은 오세아니아 지역 1위 팀과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른다. 오세아니아 1위 팀 뉴질랜드가 축구 강호들이 즐비한 남미에서 5위를 차지한 국가를 꺾을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사실상 5장의 티켓이 남미에게 배당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종전 이전 17번에 경기를 치렀기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팀이 여럿 발생했을 법도 하지만 남미 예선은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였다. 지난 17경기에서 승점 38점을 쓸어담은 브라질만이 본선행을 확정지었을 뿐이었다. 승점 28점의 2위 우루과이는 여유로운 골득실 차이로 인해 마지막 경기였던 볼리비아와 일전에서 패해도 본선 진출이 가능했다.

우루과이까지 월드컵 본선 진출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나머지 2장의 주인은 오리무중이었다. 3위 콜롬비아부터 7위 파라과이까지 모두 진출과 탈락의 가능성이 공존했다. 무려 5개의 국가가 2장의 직행 티켓을 가지고 싸우는 형국이었다. 소수의 티켓을 다수가 원하는 만큼 경기는 치열했다. 다섯 국가의 운명이 갈린 90분을 다시 돌아본다.

전반전 1분(에콰도르, 이바라가 선제골) - 아르헨티나 6위

   최종전 직전 남미 예선 승점 테이블. '경기수-승리-무승부-패배-득점-실점-골득실-승점' 순으로 작성된 표이다.

최종전 직전 남미 예선 승점 테이블. '경기수-승리-무승부-패배-득점-실점-골득실-승점' 순으로 작성된 표이다. ⓒ FIFA 공식 홈페이지


남미 각지에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동시에 울린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흐름이 요동쳤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에콰도르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38초만에 득점이 터진 것이다. 골을 신고한 국가는 월드컵 진출에 비상등이 켜진 6위 아르헨티나가 아닌 이미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된 에콰도르였다. 로마리오 이바라가가 동료의 헤더 패스를 받아 침착하게 아르헨티나 골문을 갈랐다.

아르헨티나가 나락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6위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 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무승부 이상이 필요했는데 득점은커녕 오히려 실점을 허용했다. 그렇지 않아도 5위 페루에게 다득점에서 밀려 6위로 내려 앉은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경기 시간이 많이 남아 역전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지만 아르헨티나가 여유를 가질 상황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는 홈에서 열린 1차전 에콰도르와 경기에서 이미 패한 경험이 있었고, 에콰도르 원정에서 승리를 맛 본 기억은 16년 전이었다.

에콰도르와 경기 직전 치렀던 5경기에서 단 2골 밖에 넣지 못한 빈약한 공격력도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진출 실패를 가르키고 있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메시가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돼가고 있었다.

전반전 12분(아르헨티나, 메시 동점골) - 아르헨티나 6위

아르헨티나는 당황했다. 다른 구장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패배는 곧 탈락이었다. 선수들의 얼굴에는 경기 시작 전보다 긴장감이 더 묻어났다. 그 순간 '에이스' 메시가 등장했다. 중원 지역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 경기를 풀어가며 찬스를 만들던 메시는 전반 12분 본인의 힘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골대와 먼 거리에서 메시는 상대 수비수의 방해를 이겨내고 공을 소유하는데 성공했다. 메시는 본인의 왼쪽에서 패널티 박스 안으로 쇄도하는 동료 앙헬 디마리아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곧장 패스를 건냈다. 패스 이후 메시는 전속력으로 패널티 박스로 침투했고, 메시의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한 디마리아는 쇄도하는 메시를 향해 간결하게 크로스를 올렸다. 메시는 방어를 위해 뛰쳐나온 골키퍼 옆으로 슈팅을 시도해 득점을 뽑아냈다.

절벽 끝에서 아르헨티나가 기사회생하는 순간이었다. 패배는 탈락이지만 무승부는 타 국가의 경기 결과에 따라 5위 등극도 가능했다. 의미가 큰 동점골이었다. 메시의 동점골로 순위표의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였지만,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진출 가능성의 불씨는 되살아났다.

전반전 20분(아르헨티나, 메시 역전골) - 아르헨티나 3위, 페루 6위

메시의 동점골로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아르헨티나는 거세게 에콰도르를 몰아쳤다. 또 한 번 메시의 왼발이 불을 뿜었다. 전반전 20분 패널티 박스 밖에서 디마리아의 메시를 향한 패스가 다소 길게 떨어졌다. 에콰도르 수비수가 이 공을 걷어내려는 찰나에 메시가 발을 뻗어 공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상대에게 공을 빼앗은 메시는 빠르게 패널티 박스 안으로 진입했다.

메시를 막기 위해 에콰도르 수비수들이 빠르게 복귀했고, 골키퍼는 전진하면서 메시의 슈팅 각도를 줄였다. 골이 들어갈 만한 골대의 공간은 협소했다. 그러나 메시는 그 공간을 포착했고, 수비수들의 태클이 들어오기 직전 날카롭고 정확한 슈팅으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메시의 역전골로 남미 예선 순위표에 변화가 생겼다. 아르헨티나는 2-1로 앞서나감에 따라 승점 28점을 확보하면서 콜롬비아 칠레 등을 밀어내고 3위에 위치하게 됐다. 에콰도르와 아르헨티나 간의 경기에서 세 골이 터지는 사이 다른 구장에서는 골 소식이 전무했기에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의 순위가 한 계단씩 내려갔다. 칠레는 5위, 페루는 6위에 자리잡게 됐다.

후반전 13분(콜롬비아, 하메스 선제골) - 칠레 5위, 페루 6위

아르헨티나의 선전으로 칠레와 페루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메시의 역전골로 6위로 내려앉은 페루가 가장 급했다. 후반전 13분 그렇지 않아도 비상불이 켜진 페루의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페루의 상대였던 콜롬비아의 간판 미드필더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오른발로 선제 득점을 터뜨린 것이다.

페루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타 구장에서 열리고 있던 브라질과 칠레의 경기에서 후반전 10분과 12분에 브라질이 연속으로 득점을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칠레의 실점으로 페루와 칠레의 승점은 동률이 됐고, 칠레가 두 골이나 허용하면서 골득실 '+1'의 페루가 골득실 '0'의 칠레를 제치고 5위에 올랐다. 하지만 브라질의 두 번째 득점 1분 후 실점을 허용한 페루는 승점 25점으로 승점 26점의 칠레와 승점 싸움에서 다시 밀리게 되어 6위로 추락했다.

페루는 무승부만 거둬도 월드컵 진출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하메스의 득점이 나왔고 페루의 가능성은 물거품이 됐다.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36년 만에 월드컵 진출의 꿈을 꿨던 페루의 도전이 실패로 귀결되는 흐름이었다.

후반전 31분(페루, 게레로 동점골) - 페루 5위, 칠레 6위

   2018 러시아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최종 순위표

2018 러시아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최종 순위표 ⓒ FIFA 공식 홈페이지


페루의 탈락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홈 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은 페루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페루의 강렬한 도전이 또 한 번 순위표의 자리를 바꿔났다. 후반전 31분 페루는 패널티 박스 밖 오른쪽 지역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프리킥 키커는 파올로 게레로. 한때 독일의 명문 클럽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페루의 주포 게레로가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페루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그의 오른발을 떠난 공은 빠르고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 왼쪽 상단으로 향했고, 콜롬비아의 수문장 다비드 오스피나가 몸을 던졌지만 역부족이었다.

페루의 월드컵 진출 가능성을 한껏 높이는 동점골이었다. 게레로의 득점으로 페루는 칠레를 다시 한 번 뛰어넘어 5위에 안착했다. 이제 칠레가 급해졌다. 그래도 한 골만 넣으면 브라질에게 패해도 페루와 골득실을 동률로 만들 수 있었다. 골득실이 같으면 페루와 상대전적에서 앞선 칠레가 다시 5위를 탈환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경기 흐름도 좋지 않았다. 이미 브라질에게 두 골이나 허용한 대다 경기 내용도 밀리고 있었다. 만회골이 절실했지만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잡는 쪽은 오히려 브라질이었다. 칠레는 후반 추가 시간 클라우디오 브라보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시키며 반전을 노렸지만, 브라질은 칠레의 공격을 막아냈고 브라보가 떠난 골문에 공을 넣으며 칠레를 완벽하게 침몰시켰다.

칠레의 탈락은 이번 남미 예선의 최대 이변이다. 칠레는 2015 코파아메리카와 2016 코파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모두 우승을 쟁취한 진정한 '남미 챔피언'이었다. 이로써 칠레는 카메룬(2017 네이션스컵 우승)에 이어 두 번째로 러시아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륙 챔피언'이 됐다.

2001년 코파아메리카 우승국 콜롬비아가 2002 한·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지 16년 만에 '남미 챔피언'이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하는 비극이 다시 쓰여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메시가 해트트릭으로 기록하며 러시아로 가는 길을 찾는 동안, 2016 코파아메리카 MVP 수상자인 칠레의 '에이스' 알렉시스 산체스는 조국에 몰락을 막아내지 못하며 쓸쓸히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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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남미 예선 메시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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