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쉽지 않았던 월드컵 본선 진출 목표를 이룬 뒤 긴장이 많이 풀린 상태였고, 선수들의 몸이나 코칭 스태프의 대응 전술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 또 한 번 변명할 수조차 없는 완패 결과를 받아들고야 말았다.

경기가 끝나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신태용 감독은 "이대로라면 우리 월드컵 왜 나가냐는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고, 선수들도 그런 점에서 다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K리거와 해외파 구분 없이 분명하게 검증된 선수들로 작전판을 다시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0일 오후 10시 30분 스위스 빌&비엔느에 있는 티쏘 아레나에서 벌어진 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수비면에서 다시 한 번 한계를 드러내며 1-3으로 완패했다.

수비수들끼리 자꾸 겹치네

우리 대표팀은 사흘 전 러시아와의 첫 번째 평가전(2-4 패)과 마찬가지로 쓰리 백의 중심 장현수에게 포어 리베로 역할을 맡기며 아프리카의 실력자 모로코를 상대했다. 장현수가 과감하게 전진하여 상대 공격의 맥을 끊거나 역습 출발점 역할을 해내는 전술상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구성원들의 이해력이 모자랐고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몸 상태 또한 민첩하게 올라오지 않았다. 몸이 기억한다고 말할 정도로 시스템에 녹아들 수 있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그라운드 안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경험자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경기 시작 후 7분만에 골을 내주며 한국 수비의 문제점이 또 한 번 드러났다. 가운데 미드필더 아민 하리트가 공간으로 밀어준 공을 우사마 탄난이 받아서 오른발로 가볍게 차 넣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비수 송주훈과 왼쪽 윙백 임창우가 겹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문제는 러시아와의 첫 번째 평가전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에게 익숙함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런데 수비수들의 겹치기 문제가 3분 후에 똑같이 발생했다. 10분, 모로코의 추가골이 터졌다. 모로코의 이스마일 엘 하다드에게 왼쪽 측면 크로스를 너무 쉽게 내줄 때 오른쪽 윙백이라는 불편한 옷을 입은 이청용이 어정쩡하게 거리를 준 것이 첫 번째 문제였고, 이 크로스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수비수 김기희와 뒷걸음질치는 포어 리베로 장현수가 또 겹치는 것이 두 번째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김기희의 크로스 걷어내기가 멀리 가지 못하고 우사마 탄난에게 어시스트를 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수비수들이 역할 분담을 민첩하게 하지 못하고 자꾸 자리가 겹치는 문제점이 사흘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중원까지 와르르 무너진 한국

이에 신태용 감독은 전반전도 끝나기 전인 28분에 무려 3명을 바꿔 들여보냈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김기희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을 들여보냈고, 미드필더 김보경 대신 구자철을, 쓰리 톱의 오른쪽 남태희 대신 권창훈을 내보낸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정우영에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기고 '장현수, 송주훈' 센터백 조합을 실험할 수 있는 포 백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결단 덕분에 전반전 이후 시간은 추가골을 내주지 않았지만 측면 수비 불안은 여전했다.

이처럼 측면이 불안했던 한국은 후반전 초반에 결국 또 한 번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런데 그 실점 과정이 이 경기 첫 골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미드필더들이 너무 쉽게 드리블 돌파를 허용하는 문제점이 심각할 정도로 드러난 것이다. 

7분에 이 경기 선취골을 어시스트한 모로코 미드필더 아민 하리트는 47분에도 오른쪽 옆줄 가까운 곳부터 한국 페널티 지역 반원 부근까지 드리블하며 한국 선수 4명을 차례로 물리쳤다. 손흥민이 먼저 압박했지만 쉽게 벗겨졌고 바로 옆 권창훈도 스쳐 지나가는 듯 보였다. 그 뒤를 기성용이 커버했지만 아민 하리트의 드리블 속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까지 커버가 늦었다. 

아민 하리트 한 선수가 20미터 이상의 거리를 드리블하며 상대 팀 핵심 선수들인 '손흥민-권창훈-기성용-정우영' 넷을 차례로 벗겨내는 장면은 씁쓸할 정도로 장관이었다. 이 연결을 받은 모로코의 왼쪽 측면 지배자 이스마일 엘 하다드는 왼쪽 발등으로 묵직한 슛을 시원하게 꽂아넣었다. 한국의 오른쪽 풀백 역할을 맡은 이청용이 슛 각도를 줄이기 위해서 접근하는 타이밍이 늦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65분, 모로코 골키퍼 아흐메드 타냐우티의 어이없는 실수로 구자철이 페널티킥을 얻어낸 덕분에 손흥민이 아주 오랜만에 A매치 득점 기록을 보태기는 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여전히 보였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의 감격을 잠시 접어두고 쓰디쓴 평가와 반성의 시간이 이제부터 본격화됐다. 이제는 대표 선수 구성부터 그 결과까지 솔직하게 공과를 인정하고 새 판을 짤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코칭 스태프가 준비한 경기 운영 시스템을 이해하고 실제 운용하는 것은 결국 선수들이기에 그라운드 안에서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리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이왕이면 그 리더가 센터백 중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고 미드필더 중에 한 명 쯤 더 있어도 좋겠다. 그라운드 안에서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있어야 월드컵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영원할 것이지만 어떤 선수나 팬에게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아낌없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선수들이 신태용호에 모이기를 바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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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결과(10일 오후 10시 30분, 티쏘 아레나-스위스)

★ 한국 1-3 모로코 [득점 : 손흥민(66분,PK) / 우사마 탄난(7분,도움-아민 하리트), 우사마 탄난(10분), 이스마일 엘 하다드(47분,도움-아민 하리트)]

◎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지동원(46분↔황일수), 남태희(28분↔권창훈/52분↔황의조)
MF : 임창우, 기성용(79분↔박종우), 김보경(28분↔구자철), 이청용
DF : 송주훈, 장현수, 김기희(28분↔정우영)
GK : 김진현
축구 신태용호 월드컵 모로코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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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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