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 넘었다. 지난 4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 축구 팬들은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한국 축구 대표팀 경기를 지켜보지 못했다. 2016년 9월의 첫 째날부터 시작된 대표팀을 향한 비판은 어느덧 분노와 조롱으로, 이제는 무관심으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지만 그들의 말은 무의미한 외침처럼 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과 홈 경기를 시작으로 한국은 총 10경기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를 가졌다. 10번의 대결 모두 국민들은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홈에서 챙긴 4번의 승리는 전부 1점 차의 불안한 승리였고, 3번의 무승부는 답답함의 극치였다. 중국과 카타르 등에게 패한 3번의 승부는 참혹했다. 최종예선 기간 중 치렀던 두 번의 평가전은 비판의 강도만 심화시켰다.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 월드컵 진출 직후 '히딩크 사태'가 터지면서 신태용 감독은 일부 팬들에게 '적폐'라는 손가락 질도 받게 됐다. 이 시점에서 며칠 전 열린 러시아와 평가전 졸전은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 붓는 꼴이 됐다.

이미 강을 건넜다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불행히도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님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이제 부임한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신태용 감독 개인 입장에서는 쏟아지는 비난이 불평스러울 법 하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내의 한계치를 돌파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오로지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먹고 사는 집단이다. 팬들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지적보다 당장 신태용호가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사실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부터 대표팀은 모든 부분에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천천히 되짚어보자. 최종예선 1차전 중국과 경기는 3-0으로 앞서 나갔음에도 후반전 종반에 2골을 허용하며 위기에 내몰렸다. 언제나 어려웠던 2차전 시리아와 중동 원정길에서는 23명의 선수가 아닌 20명의 선수만 대표팀에 선발했던 안일함이 무승부라는 화를 불렀다.

3차전 상대였던 카타르에게는 '슈틸리케가 인정한 최고의 공격수' 소리아에게 휘둘리며 진땀승을 거뒀고, 4차전 이란 원정에서는 상대에게 철저히 제압당하며 패배의 쓴 맛을 봤다. 슈틸리케 감독은 비정상적인 발언을 일삼으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단두대 매치'였던 우즈베키스탄과 5차전은 극적인 역전승을 챙겼지만, 5차전 중국 원정부터는 악몽 그 자체였다. '공한증(恐韓症)'이란 말이 무색하게 중국에게 완벽하게 패했고, 최종예선 B조의 압도적인 꼴찌 카타르에게도 승리를 선물했다. 월드컵 진출 실패라는 공포스러운 미래에 겁먹은 9·10차전 이란, 우즈베키스탄전은 최종예선의 비극적 하이라이트였다.

안 되는 팀에 종합선물세트였다. 선수 선발에서는 마치 '회전문 인사'처럼 같은 선수들이 변함없이 발탁됐다. 수비진은 매경기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고, 경직되어 있는 감독의 전술은 현대 축구 흐름에 맞지 않았다. 선수단 전체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인터뷰를 통해서는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느끼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이 슈틸리케의 과오를 오롯이 떠안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국민들은 신태용 감독에게 반전을 요구했고 신태용 감독은 이를 수용했다. 슬프게도 신태용 감독은 아직까지 반전을 일궈내지 못했다. 때문에 지난 1년 간 쌓이고 쌓였던 팬들의 불만은 결합되어 단단하고 거대하게 굳어졌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반전을 위해 과감하게 도전하라

역대 어떤 대표팀보다 강도 높은 비난과 무관심 속에 현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불만을 정확히 계랑화하고 수치화 할 수는 없기에 지금이 최악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체감은 최악이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대표팀을 향한 셀 수 없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그 사이에서 격려 혹은 긍정적인 기운의 발언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신태용호가 다가오는 모로코와 평가전부터 기가 막힌 반전 드라마를 써내려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기조는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평가전에서도 승리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평가전 승리에 집착하기에는 대표팀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한국은 몇 안 되는 소중한 평가전 기회를 근시안적인 여론 회복 경기로 삼을 입장이 아니다. 보통 메이저 대회 직전 분위기 업을 위해 약팀과 평가전을 가지는 것은 세계적인 강호들만의 특권이다. 한국은 본선 전까지 치열하게 경쟁하고 배워야 하는 축구 약소국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신태용호를 구원할 비책은 이제 '과감한 모험'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국민 여론이 밑바닥에 다다른 상황이라면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평가전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기에 무모한 도전은 삼가야겠지만,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다행히도 신태용 감독이 당장의 승부보다는 월드컵 본선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최근 국가대표팀 선수 중에 유일하게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민재도 신태용 감독의 과감한 결정의 산물이다. 김민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K리그 클래식의 1강 전북 현대의 주전 중앙 수비수 자리를 꿰찰 정도로 유능한 선수다. 허나 베테랑 선수들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던 9·10차전 이란, 우즈베키스탄전에 김민재를 선발로 내보낸 것은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김민재는 A매치 데뷔전이란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환상적인 활약으로 신태용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러시아-모로코로 이어지는 2연전에 K리거를 제외하고 해외파 선수만 선발한 것도 도전의 일부다. 신태용 감독은 'K리거 전부 제외' 이유를 최종예선 과정에서 수차례 희생한 K리그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이러한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은 어차피 점검해야 할 해외파 선수들을 이참에 모조리 소집해 나름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았다.

이번 소집을 통해 이승우와 석현준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대표급 해외파는 신태용 감독의 점검을 받게 됐다. 현실적으로 대회 전까지 이렇게 많은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력을 체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2연전은 신태용 감독 본인의 눈으로 직접 다수의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 스타일과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기회가 됐다.

러시아전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모험이 있었다. 바로 이청용의 '윙백 기용'이다. 선수 생활 내내 오른쪽 측면 공격수 혹은 2선 자원으로 활약했던 이청용에게 신태용 감독은 오른쪽 윙백이라는 생소한 자리를 맡겼다. 한정적인 선수 자원으로 인해 야기된 이청용의 윙백 기용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는 커다란 의문 부호가 던져졌지만, 이청용은 멋진 활약으로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 오른쪽 측면 수비 자원에 있어서 항상 골머리를 안았던 대표팀에게 또 하나의 옵션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권경원이 헤딩슛을 성공하고 있다.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권경원이 헤딩슛을 성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인 선수의 과감한 기용, 베테랑 선수의 포지션 변경 등의 도전으로 작은 성과를 거둔 신태용 감독은 이제 더 큰 실험에 임해야 한다. 여러 가지 모험의 방식이 있겠지만 일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변화의 방식은 '주전 선수'들의 경쟁 강화다.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선수들도 이제 다른 선수들과 자리를 놓고 다퉈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 '주전 선수'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선수는 손흥민과 구자철이다. 먼저 손흥민은 그 어떤 감독이 와도 선발로 기용할 만한 자타공인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만 21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수다.

그러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은 평범하다. 최종예선 8경기에 출장해 단 1골만을 뽑아냈다. '에이스'란 호칭이 무색한 수치다. 붉은 유니폼의 손흥민에게 폭발적인 스피드도, 호쾌한 슈팅도, 뛰어난 결정력도 실종된 지 오래다. 손흥민이란 이름만 가리고 보면 이제는 선발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긴 부진의 터널에 갇혀있는 손흥민이다.

구자철 또한 마찬가지다. 2011 AFC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구자철은 잦은 감독 교체 속에서도 항상 위치를 공고히 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는 구자철은 대부분의 경기에서 한 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런데 딱히 다른 선수들에 비해 특별하지 않다. 물론 워낙 '클래스'가 있는 선수이기에 간혹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 뿐이다. 구자철을 대표하는 탁월한 기술도, 유려한 발기술도, 도전적인 몸싸움도 다 옛날 얘기다.

당장 두 선수를 대표팀에 뽑지 않거나 벤치에 앉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선수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월드컵 본선에 함께 해야할 대표팀에 핵심 멤버다. 다만 대표팀에서 소속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들의 대표팀 내에서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러시아전에서 실험한 '손흥민 프리롤'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시종일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손흥민을 왼쪽 측면 공격수로만 활용하던 과거에 비하면 발전했다.

신태용 감독은 모험을 즐기는 감독이다. 신태용 감독이 2014년 9월 대표팀 임시 감독 자격으로 지휘했던 우루과이와 경기는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경기다. 이날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은 쓰리백 수비진의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기성용이 소속팀에서 중앙 수비수로 나선 경력이 있긴 하지만 미드필더로서 국가대표팀에서 넘볼 수 없는 높이에 위치한 선수의 포지션 변경을 우루과이란 강팀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수비수 기성용은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줬고, 에딘손 카바니를 위시한 우루과이 공격진은 무딘 공격력을 보여주며 고전했다.

이처럼 신태용 감독은 도전을 해야 능력이 발휘되는 감독이다. 애매한 여론보다 매일 최저 수준을 갱신하는 여론 상태가 오히려 모험을 하기 좋은 형세일지도 모른다. 물론 신태용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은 열악하다. 그러나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은 신태용 감독 본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대표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과감한 도전이 절실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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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최악의 여론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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