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러 편의 영화를 보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감출 수 없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극 중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여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영화 속 상황에 현실 생활을 자꾸 겹쳐 보게 하는 그런 영화들 말이죠.

올해는 <해피 버스데이>가 그랬습니다. 노리코(하시모토 아이)는 열 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아버지, 남동생과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요시에(미야자키 아오이)는 늘 다정하고 상냥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아는 것도 많지만 매사에 자신감 없는 노리코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병석에 누운 뒤에도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쓰던 요시에는 노리코의 열 살 생일에 예쁜 생일 카드를 선물하고, 앞으로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매년 노리코와 동생에게 생일 카드를 보내 주겠노라고 약속합니다. 노리코는 매년 어머니의 생일 카드를 받으며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평범한 설정, 깊은 감동

ⓒ (주)티캐스트


설정과 전체 스토리만 놓고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이 영화는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일단 보기 시작하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각본이 좋습니다. 담담히 풀어가는 노리코의 어릴 적 에피소드들이나, 어머니가 남긴 카드를 보며 매년 조금씩 성장하는 노리코의 모습,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잘 표현된 장면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치밀하게 잘 짜여 있습니다.

특별한 구석이 없는 한 가족의 십여 년에 이토록 집중하게 되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소소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이나 행동이 자연스러우며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습니다.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저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수긍하게 되지요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둔 자식이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당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하고, 제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되도록 많이 남겨 줘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특히,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 요시에의 심정에는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머니 요시에 역할을 맡은 미야자키 아오이의 연기가 매우 돋보입니다. 어린 딸에게 행복한 기억을 하나라도 더 남겨 주려 노력하는 밝은 모습부터, 생일 카드는 쓸 수 있어도 딸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에 이르기까지 절실함을 담아 연기하거든요. 설정상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극 전체의 감정선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삶과 죽음의 균형을 찾아서


ⓒ (주)티캐스트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이지만, 여러모로 상반되는 점이 많습니다. 죽음에 대한 태도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을 절대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죽음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휴먼 드라마로 분류되는 일본 영화들은 흔히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주로 죽음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식의 구성이 많습니다. 임박한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거나, 장례 의식 등 망자를 위한 예를 갖추는 장면을 자주 보여 줌으로써 삶과 함께하는 죽음의 존재를 부각합니다. 어떤 때는 그것이 지나쳐서 삶보다 죽음을 더 높이 여기는 것 같아 꺼림칙할 때가 있지요.

반대로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세상 모든 것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은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아니면 주인공이 죽어가는 소중한 사람을 끝까지 살려 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삶에 대한 끈질긴 노력을 보여 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 너머로 다른 사람의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최루성 영화가 될 때가 많습니다.

<해피 버스데이>는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합니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비중을 지나치게 늘리지도 않고, 비현실적인 슬픔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죽음은 요시에가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죽은 뒤에 일상 공간의 일부가 된 사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될 뿐입니다. 그리하여 관객은 남편과 아이들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삶을 긍정하는 태도는 '누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없지만, 각자 제 삶의 주인으로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영화의 메시지와 맞물려 빛을 발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성공이나 실패 같은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 갈 것인가에 관한 문제임을 일깨우면서요.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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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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