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에는 영화 <남한산성>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1636년 겨울, 압록강이 얼고 그 언 강으로 청(淸)나라 병사들은 말을 몰고 조선을 공격해왔다. 얼어붙은 한강과 그 지류 송파강을 건너 인조도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던, 왕이 백성과 궁궐을 버리고 도망가는 못된 버릇을 조선의 왕들은 참 잘도 전수받았다. 그 송파강의 늙은 사공이 얼음 위의 길을 잘 안다는 이유로, 청나라 군대에게도 길을 안내해주고 좁쌀 한 되라도 챙기려한 죄로 척화파 김상헌의 칼에 맞아 어린 손녀를 남기고 얼음 위 붉은 피를 흘리며 죽는다.

"소인은 소인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공은 결국 그가 살던 강나루로 돌아가지 못한다. 당시 백성들에게 국가나 민족은 없었다. 다만 가족이 먹을 하루끼니가 있을 뿐이다. 국가니 종묘사직은 위정자들이 스스로 부여한 명분일 뿐이다. 대장장이 날쇠의 말처럼 명(明)을 섬기든, 청을 섬기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밥 굶지 않고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런 전제를 깔고 막이 오른다. 필부인 뱃사공도, 대장장이도 아는 이 평범한 진리를 왕과 조정대신들이 깨닫는 데는 너무 긴 시간과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엄동설한,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주화파와 예조판서 김상헌의 척화파가 평행선을 달리듯 화친이냐 전쟁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인조는 그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처럼 우유부단하게 시간만 허비한다. 식량은 바닥나고, 병사들은 추위에 쓰러져간다. 홍이포를 막아낼 천자총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정은 이미 백성의 신뢰도 잃어간다. 보급로도 없이 먼 길을 달려온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넉넉한 군량미를 확보하고, 그곳을 지배하던 조선의 왕은 독 안의 쥐처럼 포위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38선 이남이라는 남한산성'에 섬처럼 고립된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위안은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의 군사력이 한반도를 포위하고도 남는다는 점 정도다.

보름달이 떠도 근왕병은 오지 않고, 인조는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받아들인다. 강한 자가 약자에 하지 못하는 일이 없듯이,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이미 많은 백성들이 죽은 후에야 인조는 신하의 옷을 입고 서문으로 나선다. 민초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칠복이 죽는 것은 인조의 우유부단함과 조정의 파벌 싸움으로 늦어진 결정이 불러온 참사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의 기로에서 인조는 역사의 치욕으로 남더라도 일단 살아남기를 택했다. 어떤 대의명분도 삶 위에 세워져야 하기에. 인조는 그렇게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세 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리는 절) 예를 올린다. 주화를 주장한 최명길은 피눈물을 흘리고,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은 사공을 벤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안정적으로 1위 자리에 올랐다.

ⓒ CJ엔터테인먼트


"낡은 것이 모두 사라져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남한산성에서의 깨달음이라는 김상헌의 이 말처럼 어쩌면 기존의 질서를 쾌도난마 하듯, 일거에 베어내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1592)의 수난을 당하고, 정유재란(1597-1598)을 겪었다. 이괄의 난(1624)으로 군사력을 소진하고 정묘호란(1627)을 또 당했다. 그리고 병자호란(1636)으로 60만 명이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굴욕을 또 당한 역사다. 임진왜란 때 명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그릇된 사대주의로 세계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후과다. 치욕의 역사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대책이 부족한 후과다.

"당면할 일을 당면할 뿐이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도, 또 한국전쟁(1950)으로 미국과 중국을 다시 끌어들였고, 그 냉전의 총부리를 여전히 서로에게 겨누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조선의 지식인들의 머릿속에 중화사상이 더 깊이 뿌리 내린 것처럼, 한국전쟁 때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집회에 성조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역사의 비극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남한은 사드로 다시 냉전 이후 세계 패권을 노리는 미국과 중국으로 하여금 '38선 이남의 남한산성'을 포위하도록 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적의 아가리에 들어간 형국이다.

 <남한산성>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사드호란(2016~ )이 시작되어 한국 기업은 중국에서 철수하고, 중국인의 발길은 끊기고, 경제 손실이 수 조원에 이른다. 무모한 북한의 핵 불장난 한방에 한중관계는 나락으로 치닫고, 미국은 자신들의 무기를 한반도에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또 잡았다. 남북관계를 포함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후과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안보 문제는 양보할 수 없기에, 경제적 불이익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진퇴양난의 수렁이다.

적의 아가리에서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감내하고 살아남았으면, 와신상담해서 권토중래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우리는 안보가 경제를 뿌리째 뒤흔드는 상황을 용인해야 할 것인가. 민들레가 필 때 송파강이 녹는다고 했는데, 한반도의 봄은 언제쯤 오려는가. 앉은뱅이 꽃 민들레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안전하게 꽃을 피우고,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다.

남한산성 병자호란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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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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