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중 한 장면.

영화 <변호인> 중 한 장면. ⓒ NEW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4일 밤 영화 <변호인>이 JTBC를 통해 (유료 채널을 제외하고) 최초로 TV 전파를 탔다. 이 '천만 영화' <변호인> 속 송강호의 대사를 TV 브라운관을 통해 보기까지, 우리는 4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송강호는 '블랙리스트'에 시달리면서도 <사도>와 <밀정>에 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택시운전사>를 통해 올해 또 다시 '천만' 관객을 만났다.

<변호인>이 '드디어' 전파를 탄 2017년은 실로 많은 일이 있었다. <변호인> 속 '국밥집 아지매' 순애를 연기했던 배우 김영애는 올해 4월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 순애의 아들이자 실제 '부림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였던 진우 역을 연기한 임시완은 군 복무 중이다.

사무장 박동호 역의 오달수는 여전히 '천만요정'으로 불리며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다작 배우로 꼽혔으며,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 차동영 역의 곽도원은 주연급 배우로 우뚝 섰다.

또 그 사이, '세월호 참사'가 전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겼고, 백남기 농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정상의 비정상화'는 가속도를 냈다. 그렇게 <변호인> 개봉으로부터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으며, 그 결과 <변호인>을 그리도 싫어했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 수감됐다.

그 결과, <변호인>의 실제 주인공인 '노무현 변호사'의 친구이자 영화 속 1980년대 부산에서 그 친구와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던 문재인은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맞은 첫 명절 추석연휴 당일 <변호인>이 전파를 탔다. 브라운관을 통해 다시 확인한 <변호인>은 2017년에도 여전히 영화 내외적으로 그 가치를 반짝이고 있었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란 대사 듣기까지 걸린 4년

 영화 <변호인> 중 한 장면.

영화 <변호인> 중 한 장면. ⓒ NEW


<변호인>을 극장에서 관람한 관객은 총 1137만4871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이 '천만 영화'가 방영중이던 4일 밤,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다시 '노무현'이었다.

이어 줄줄이 '변호인', '부림사건', '송강호', '변호인' 등이 검색어를 오르내렸다(개인적으론 '블랙리스트'가 없었단 사실이 조금은 의외다). <변호인>의 시청률은 6.646%(TNMS 기준)로 4일 종편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재관람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감상평이 줄줄이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순애가 '변호인' 송우석과 고문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아들 진우를 면회하는 장면. 길지 않은 이 장면은 영화적으로 속물 세법 변호사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로 변모하는 터닝 포인트이면서 군사정권의 폭압과 이로 인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민중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2017년에 그러한 고문을 당하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변호인>을 싫어했다던 박근혜 정권과 그 이전 이명박 정권은 그러한 고문 대신 그들만의 '법치주의'와 치졸하고 끈질기며 꼼꼼한 '밥줄 끊기'와 '이미지 훼손' 전략을 선택했다.

'블랙리스트' 말이다. 아마도 1981년 당시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이 당한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과 그 고통에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보수 정권 9년 동안 '블랙리스트'로 탄압받았던 문화예술인과 노동자들의 정신적인 고통 역시 상당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송우석 아니 실제 변호사 노무현이 고 박종철의 추도회를 주도하면서 집시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장면은 개봉 당시나 지금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변호하기 위해 부산지역 변호사 99명이 재판 공동변호인단으로 출석해 판사의 호명에 일일이 대답하는 진풍경을 담은 영화 속 마지막 장면 말이다(이 변호인단을 꾸린 이 중 한 명이 당시 인권변호사 문재인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개봉 당시 이 장면은 '깨어있는 시민' 개인을 호출하려는 노무현 정신과 이를 주제적으로 계승하려는 <변호인>의 어떤 결기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세계인으로부터 한국식 민주주의의 긍정성을 표출시킨 '촛불' 이후, 이 장면은 정당한 민주주의의 절차에 의해 부패한 최고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국가"이자 "국민"들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자부심의 승계와도 같아보였다.

2013년에 만나는 <변호인>과 2017년에 다시 보는 <변호인>은 다른 맥락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사회가 변화를 맞이했다. 그것을 누구는 '노무현 정신의 계승'이라 부를 것이고, 누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승리'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호인>과 촛불, 그리고 블랙리스트

 영화 <변호인> 중 한 장면.

영화 <변호인> 중 한 장면. ⓒ NEW


"조금 무거운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시국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얘기가 나온 것이, 특히 탄핵정국 속에서 블랙리스트 문제였습니다. 물론 거기에 블랙리스트에 포함이 되어 계십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 때문에 그랬으리라고 생각은 합니다마는."

지난 5월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앵커 손석희의 이 같은 단도직입적 질문에 노무현이란 인물을 연기하는 부담감, 자기검열과 예술가의 판단 등을 거론하며 당시의 어려움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본인이 "흔히 영화 한 편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수상 소감에 대해 이렇게 부연했다.

"그러니까 촛불 하나하나가 어떻게 보면 되게 작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것이 모였을 때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되고 상징되고 발원이 되는 것처럼 영화도 어떤 작품에서 감동을 받은 관객들이 비록 숫자가 적더라도 그분들 또 그 효과가 불과 몇 시간밖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저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강호도 알고, 국민들도 알았다. 지난 4년 간 '세상을 바꾸려는' 국민들의 열망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비극은 제 이익을 위해 그 열망을 한사코 부정했던 이들이 권력을 쥐었고, 온갖 부정으로 권력을 쥔 자들이 그 반대 방향으로 세상을 흔들기 위해 온갖 불법과 위법, 부도덕과 비윤리적인 통치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이리라.

<변호인>을 본 이후 혀를 쯧쯧 찼다던 김기춘 비서실장과 지금은 서울구치소 503호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에 앞서 '블랙리스트'를 작성, 실행하고, '댓글부대'를 운영했으며, 국정원을 이용해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본을 심각하게 훼손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도 대동소이하다. 이번 추석 연휴, <변호인>을 시청한 국민들 다수도 "국가란 국민"임을 부정했던 그들의 과오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변호인>의 개봉 당시와 지금과 달라진 풍경은 또 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변호인>처럼 내외적인 '탄압' 속에 응원했을 작품들이 다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개봉되는 중이다.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 캔 스피크>가 대표적이다.

송강호의 말을 조금 비틀어보면, 영화는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진 못한다. 하지만 영화를 관람하고 감동을 받은 그 관객들이 움직일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뀌고 변화하는 법이다. <변호인> 이후, 또 <아이 캔 스피크> 이후 또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세상과 현실을 반영코자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세상과 영화는 공명하는 법이다.

 지난 5월 <뉴스룸>에 출연한 송강호.

지난 5월 <뉴스룸>에 출연한 송강호. ⓒ JTBC



변호인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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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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