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스틸 이미지.

ⓒ KBS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들이 있다. 나 혼자만 겪었다고 생각하던 순간들을 정확하게 포착해내어 '사실 우리 모두 다 그래'라고 알려주는 문장들이다. '아 이랬던 거야 / 모두 침묵하고 있었던 거야 / 아 이랬던 거였어 / 이런 것 땜에 다들 마음 시렸던 거야'라는 악동뮤지션의 노래처럼, 이런 문장들은 그 시림을 모두의 눈앞에 꺼내어 놓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시렸던 것들이 견딜만해 진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안도와 더불어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을 소화할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연애의 발견>은 바로 그런 문장들이 넘쳐나는 드라마다. 그래서 그 감정을 느끼게 했던 '누군가'와 그와 함께했던 내 시절을 다시금 되짚게끔 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시선 덕에 그 회상에는 후회나 자책보다는 따뜻함이 깃든다. 그런 점에서 <연애의 발견>은 예술이 해낼 수 있는 위로의 최대치를 그려낸다. 남은 연휴,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꼭 한 번 이 작품을 봐줬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쁜 새끼들의 이야기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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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만 따지자면 <연애의 발견>은 막장 드라마다. 5년을 사귄 구남친, 착하고 잘생긴 데다 성형외과 선생인 현남친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 주인공. 심지어 현남친을 좋아하는 서브 여주도 등장한다. 알고 보니 그 여주가 현남친의 숨겨진 의남매였다는 사연까지, 이 정도면 완벽한 주말 연속극 아닌가.

그리고 그런 극이 으레 그렇듯이 드라마는 '나쁜 놈'과 '나쁜 년'으로 넘쳐난다. 현남친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구남친에게 흔들리는 한여름(정유미 분)과 남자 친구 있는 여자를 흔들어대는 구남친 강태하(문정혁 분)는 행렬의 선두일 뿐이다. 착하디착한 현남친 남하진(성준 분)조차 한여름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서브 여주 안아림(윤진이 분)은 임자 있는 남하진을 욕심낸다. 가끔 얼굴을 비추는 예비 시어머니 정도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라인업이다.

그런데도 <연애의 발견>은 '인생 드라마,' '현실 연애'란 평가를 받는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마냥 나쁜 놈, 나쁜 년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나쁜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한여름, 강태하, 남하진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가다가도 그 와중에 다치는 사람을 돌아보며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결국 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나쁜 놈'이란 대개 그렇다.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총체적 '나쁜 놈'이 일상에 몇이나 되는가. 사람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나쁜 놈이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놈이다. 내가 중요해서, 또는 내 친구가, 가족이, 애인이 중요해서 우리는 누군가를 상처 입힌다. 사람은 한정된 수량의 '소중함'만 부여할 수 있다. 그 소중함을 부여하지 못한 사람에게, 우리는 대체로 나쁜 놈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자책한다. 나는 왜 더 좋은 사람이지 못했을까, 더 현명한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조금 덜 이기적일 수는 없었을까. 그런 후회가 밀려오는 밤이면 내가 뼛속까지 악당인 것만 같아서 우울해진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그 상황에 부닥치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몇 시간이고 끙끙 앓다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잠이 들고 만다.

한여름의 선택 그리고 위로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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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참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친구가 한여름이 강태하에게 흔들리는 것을 추궁하자, 한여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래 흔들려. 어떻게 안 흔들리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강태하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5년을 사귀었고 가장 순수할 때 만나서 바닥까지 다 드러내며 사랑했고 지금도 날 바닥까지 다 아는 사람인데, 30년 친구인 도준호랑 너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인데 어떻게 안 흔들리니?

흔들려. 그래서 기다리지 말아야 하는데도 기다리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근데 뭐 내가 거기서 얼마나 더 하는데? 하진씨가 알 까봐 발 동동 구르는 거? 내가 태하씨랑 잠을 잤니 도망갈 궁리를 하니? 흔들리는 거 그것도 못 봐줘? 도망 안가잖아. 내 자리가 어딘지 알고 있잖아. 어떻게 하든 내가 선 자리에서 잘 버티고 있잖아. 내가 플라스틱도 아니고 무쇠도 아니고 어떻게 안 흔들리니?"

한여름은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 모든 노력이 '나쁜 년'으로 일축되자 한여름은 발끈한다. '내가 플라스틱도 아니고 무쇠도 아니고 어떻게 안 흔들리니?'라는 말은, 자신의 고충과 노력을 쉽게 일축하지 말라는 반발이다. 나는 '악당'이 아니라 '나쁜 인간'이라는 변명이기도 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그녀는 '나쁜 년'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나쁠지언정 비겁하지 않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결단을 내린 후에는 스스로가 나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남하진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1년여의 세월 동안 누구도 연애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을 테다.

<연애의 발견>은 이들을 단죄하기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극본가는 드라마 내 작가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데 정말 끝은 모르겠어요. 돌고 돈달까? 버렸던 쪽이 다시 버림받기도 하고, 버림받았던 쪽이 버리기도 하고. 다들 조금씩 서로에게 나쁘고, 다들 조금씩 상처 주고, 다들 조금씩 위로받기도 하고. 연애도 사람 사는 일인데 다들 그런 거죠, 뭐."

서툴고 못나서 상처만 주었던 그때 그 시절.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했지만 바로 그 노력 때문에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 되었던 내가 밉다면 이번 연휴 <연애의 발견>을 보는 것이 어떨까. 내가 나빴던 것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사랑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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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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