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 이희훈


교대역에서 god의 '촛불 하나'를 부른 영상과 신촌 버스킹 공연으로 일약 유튜브 스타가 된 '푸른 눈의 악사'가 있다. 본명은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20대의 한창 혈기왕성할 그의 노래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고 잘하는 청년인 줄 알았던 그가 JTBC <비정상회담> 등에 출연해 "노숙 생활을 하기 직전 모든 인간 관계를 정리했다"며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다. 영국 태생인 그는 일찌감치 가족을 떠나 세계 곳곳을 떠돌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청소년기에 잠깐 한국에서 중등 교육을 받은 것까지 포함하면) 햇수로 만 8년째다.

국적을 묻는 질문에 "난 지구인이야"라고 해맑게 답하고 "내가 원하는 것 그러니까 레게 머리와 음악,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다"던 그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추석 연휴 직전 서울 한남동의 모처에서 그를 만났다. 

삶의 이유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 이희훈


런던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일본인 가족에게 입양된 안코드는 12세 때 잠시 한국에 들어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이해하게 된다. 언론사 기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영국, 일본, 이스라엘 등을 다녔던 그는 16세 때 입양 사실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이국적인 모습이라 한국에선 또래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다. 자신을 입양 보낸 부모님을 만나러 영국을 다시 찾았지만 형제들의 냉대에 크게 상처받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노숙을 시작한다.

"노숙하면서 완전 다른 인생을 살았다. 일자리를 구해보기도 했고, 그러면서 마음의 분노와 원망, 후회와 창피함이 없어졌다. 삭발하고 날 거리로 던졌더니 진짜 안코드를 만난 거지. 정말 그때 크게 성장했다."

인터뷰 중 '슈퍼 퀵 그로잉(super quick growing, 매우 빨리 성장했다)'이란 말을 써가며 안코드는 그때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피렌체 3일 째 밤에 기차역에서 잘 곳을 찾는데 이탈리어도 모르고 두려움에 떨다가 60대 정도 돼 보이는 마른 사내에게 말을 걸게 됐다"며 운을 뗐다.

"파비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그가 내게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했는데 다 못 알아듣다가 '뮤지카?(음악)'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씨(그래)!'라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가 준 기타를 치고 그는 멜로디언을 불며 즉흥연주를 했다. 거리의 부랑아들이 와서 와인을 주면서 말을 걸고 춤을 추더라. 부자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한참을 노려보더니 연주가 끝나자 박수를 치며 맥도날드에서 감자랑 와인을 사와서 얘기를 하자더라. 바로 어제까진 잘 곳도 없어 진짜 힘들었는데 오늘의 난 파티를 하고 있더라. 인생 참 재밌다. 내 몸에서 냄새도 나고 비록 길바닥에서 자는 신세지만 너무 즐겁고 고마웠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해서 시에나의 한 가정집에 살면서 페인트칠을 하며 지냈다. 노숙 생활이후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였는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과거의 나와는 화해했는데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긴 거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자꾸 부정적 생각이 들어 피렌체를 찾아 갔다. 내 마음의 집이라고 생각해서 딱 하루만 거기에 있다가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근데 마음 속에서 '기차를 타지 말라'고 하는 강한 직감이 들어 시에나로 돌아갈 기차를 한 대 보냈는데 그 직후 기차 회사가 파업을 하더라. 

3일 동안 결국 피렌체에서 오랜만에 노숙했다. 친구들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러다가 광장으로 나갔는데 그 벤치에 파비오가! 오 마이 갓. 난 머리가 많이 자랐는데 오히려 파비오가 삭발을 했더라. 날 몰라보는 것 같았다. 서로 가볍게 얘기하다가 그냥 내가 혼자 말했다. '파비오, 난 내 길을 잃은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에 파비오가 내 어깨를 잡고 아빠 같은 눈빛으로 조용히 '아반티'(앞으로) 이러는 거야. '그래! 저스트 고. 그냥 앞으로 가자'. 강한 교훈으로 다가왔다."

한국을 다시 찾다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 이희훈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 이희훈


안코드가 만난 파비오라는 사람은 사실 피렌체 시민들이 아끼고 사랑하던 유명 인사였다.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노숙을 택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던 인물이었던 것. 안코드는 "노숙자 생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생의 가치가 진짜 뭔지를 그를 통해 묻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이후로 안코드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버스킹을 통해 번 돈으로 전 세계를 돌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며 살자." 이런 결심을 하던 차에 일본인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일본에 잠시 머물다 이웃 나라인 한국을 당시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았다. 부산에서의 버스킹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겨울엔 호주에 가거나 영국에 가족을 보러 가기도 했고, 한국은 그냥 내가 떠돌던 나라 중 하나였는데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 결심을 했다. 한국인 친구가 결혼식 축가를 부탁해서 했고, 아리랑TV에 섭외가 돼서 6개월 간 진행을 하기도 했다. 버스킹 공연과 내가 기획한 공연이 매진되는 걸 본 한 기획자가 큰 콘서트를 제안했고, 같이 기획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사실 안코드는 마음만 먹으면 더 이른 시기에 방송을 통해 유명해질 수도 있었다. 지금의 소속사가 2014년 8월 경 <비정상회담> 첫 번째 시즌이 한창 떴을 무렵 방송에 출연하자고 제안한 것. 줄리안, 일리야 등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방송인이 다수 소속된 곳이라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근데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하고 해외를 오가면서 버스킹을 계속 했지"라며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회사와 계약을 맺은 건 최근의 일이다. 마음이 바뀐 걸까? "음악을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그가 답했다. <비정상회담2> 등 방송 출연을 하기 시작한 것도 "유명세를 위한 게 아닌 본인의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안코드는 "음반 활동을 위한 과정이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사연 하나. 올해 봄 신촌에서 동료 탁보늬(바이올린), 태보고(색소폰)와 공연 중일 때 대선 후보로 나선 안철수와 마주친 것. 지지자들과 캠프 관계자들이 그의 공연장 주변에 나타나 일대가 한창 시끄러워졌고, 공연을 중단하고 돌연 안코드는 안철수를 무대로 불러 함께 노래 부르기를 제안했다. 후보자 연설을 자신의 공연 일부로 만든 것.

"그건 내 공연이었다. 사람들이 내 노래에 몰입하는 와중에 그 분이 와서 방해한 거였다. 진짜 난 매일 목숨 걸고 공연한다. 매일 전쟁을 치르며 준비하는 공연인데 무대 옆에서 사람들이 '안철수! 안철수!' 외치는 거야. 그래서 볼륨을 더 키워 그를 불렀고, 내 노래 '헤븐(heaven)'을 부르자고 한 거지. 안철수 지지자 분들도 같이 부르게 했다(웃음)."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안코드 ⓒ 이희훈


은 과제들

안코드는 "내가 갖고 있는 유명세는 그냥 어떤 순간에 땔감이 될 좋은 재산 정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버스킹 때 만난 태보고와 서울 을지로3가 지하철역에서 만난 탁보늬와 함께 하는 지금의 공연이 우선이었다. "내년에 이들과 공연을 크게 해볼 거다"라고 그가 포부를 밝혔다.

지난 4개월 간 이들이 공연한 날이 100일을 넘는다. 주 6회씩 거의 매일 채운 셈이다. 특히 그의 대표곡 '헤븐'은 상황에 맞게 한국어로 개사해 즉흥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사는 때론 방황하는 청춘의 아픔을 대변하거나 한국 사회의 폐부를 꼬집는 등 변화무쌍하다. "개사? 일단 해보기 시작하면 참 쉽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어느 나라에 가도 외국인이고 지구인이란 건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말"이라며 그가 말미에 자신을 지구인이라 표현하는 이유를 전했다. 어린 시절 겪은 아픔과 혼란, 이 지점에서 그는 지금까지 언론 매체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연 하나를 전했다. 그의 입양과 잦은 타지 생활은 다름 아닌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었는데 안코드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더 이상 그 종교에 믿음이 없다. 자유롭고, 숨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은 과제가 있다. 최근 한 예능 프로 녹화에 참여한 안코드는 "버스킹과 방송 출연에 대해 돈을 벌려고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질문에 상처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지만 그간 자신이 해왔던 공연 자체가 무시 받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는 반응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이 많이 바뀐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카메라 앞에선 보여줘야 할 모습이 있고,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편집으로 모든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방송은 대부분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나에 맞춰진 것 같은데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자칫 가식적인 면이 너무 많게 느껴질까봐 나도 조심스럽게 한다. 누가 뭐래도 음악이 최우선이다. 혹시나 사람들이 날 방송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내 동료들이 어떻게 음악을 대하고 실천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안다. 하루하루 버스킹을 위해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 사실 요즘은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 시기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와 지금 하는 일이 부딪히는 느낌이 들더라. 한국에선 돈 버는 게 우선시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돈 버는 거 물론 힘들지. 근데 힘든 게 문제가 아니다. 내 주변을 보면 대부분 안타까울 정도로 자아와 행복에 대해서 관심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게 문제 같다.


안코드 버스킹 비정상회담 태보고 탁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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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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