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 극장 나들이를 준비하다 보면 고작 한두 편, 많아야 서너 편의 영화가 상영관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중에 처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미 본 영화들이거나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그중에 없으면 망설일 수밖에요.

그렇다고 아무 영화나 덥석 고를 수도 없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배치된 시간표도 맞추기 힘들 것 같고, 무엇보다 같이 간 사람들의 불평이라도 듣게 되면 곤란하니까요. 이런 분들을 위해 상황에 따라 대안이 될 수 있는 개봉작들을 골라 봤습니다. 상영관이 많지 않기 때문에 미리 장소와 시간을 확인하고 예매해 두시는 게 좋습니다.

[하나] <해피 버스데이> (9/28 개봉)
 영화 <해피 버스데이>의 포스터.

영화 <해피 버스데이>의 포스터. ⓒ (주)티캐스트


온 가족이 다 같이 극장에 갈 계획이라면 단연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10살 난 딸 노리코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어머니 요시에는 딸에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매년 생일 카드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노리코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조금씩 성장하게 되지요.

요즘엔 인생에 대한 행복하고 낙관적인 전망보다는 씁쓸한 현실을 일깨우는 영화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인생의 쓴맛은 실생활에서도 충분히 맛보고 있으니 극장에 왔을 때만이라도 기분 전환이 되면 좋을 텐데 말이죠. <해피 버스데이>는 그런 바람에 딱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때문에 남녀노소가 쉽게 관람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삶에서는 주인공이라는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가득하거든요.

특히 아이가 자라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표현한 미야자키 아오이의 호소력 있는 연기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부모님 중 돌아가신 분이 있거나, 아이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주제가를 들으며 끝까지 여운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엔딩 크레딧 후에는 짤막한 부가 영상이 있습니다.

[둘] <우리의 20세기>(9/28 개봉)
 영화 <우리의 20세기> 포스터.

영화 <우리의 20세기>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오랜만에 여자들끼리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라면 이 영화가 딱 맞습니다. 1979년의 미국, 50대 중반의 주인공 도로시아는 이혼한 후 10대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아들이 잘 크기를 바라며 노심초사하던 그녀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20대 중반의 예술가 지망생 애비와 아들의 친구 줄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설정만 보면 사춘기 소년의 성장물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나잇대의 여성들의 삶에 관한 영화입니다. 원제가 <20th Century Women>인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40년전 미국 사회 여성들의 이야기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 여성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들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선입견에 맞서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려 애쓰는 여성들의 노력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계속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비기너스>(2010)로 주목받았던 마이크 밀스 감독의 신작으로, 문학으로 치면 소설과 시, 에세이를 넘나든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복합적인 형식을 가진 영화입니다. 직접 쟁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음악과 화면 효과, 당대의 페미니즘 텍스트, 내레이션 등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깊은 감정적 울림을 선사합니다.

[셋]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9/21 개봉)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포스터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 특히 중장년층 아버지라면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10대 후반에 접어든 브래드는 SNS로 알게 된 잘나가는 대학 동창들의 근황 때문에 영 마음이 불편합니다. 기부금 모으는 NGO에서 일하는 자기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죠.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 트로이와 함께 보스턴 인근 대학 투어를 떠난 그는, 아들이 최고 명문 하버드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흥분합니다.

자식 농사 잘 지은 것으로 자존심을 되찾고 싶은 브래드의 진지한 모습은 영화 내내 쓴웃음을 자아냅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을 자기 위안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너무나도 솔직한 모습과 똑같기 때문이죠. 한바탕 웃고 난 후 우리 자신의 자랑스럽지 못했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브래드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지만, 브래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소소한 삶의 행복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태도, 고락을 같이 해온 가족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내는 일,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목표에 일생을 바치는 일 등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세속적 성공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넷] <어메이징 메리>(10/4 개봉)
 영화 <어메이징 메리>의 포스터.

영화 <어메이징 메리>의 포스터.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조립식 주택에서 삼촌 프랭크와 단둘이 사는 일곱 살 소녀 메리는 비범한 수학 실력을 갖춘 소녀입니다. 갓 입학한 초등학교에서도 놀라운 수학적 재능을 발휘하지만, 아직 인간관계를 맺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학교에서는 영재 학교에 메리를 보낼 것을 권유하지만, 삼촌은 한사코 거절합니다. 이들에겐 불행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죠.

영재 집안의 재능을 이어받은 메리 이야기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와닿지 않을 것 같지만 한국에서 입시 지옥을 겪으며 자라난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더더욱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한 사람의 인생에는 피를 나눈 가족만이 아니라, 그를 아끼는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는 점입니다. 메리와 프랭크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안정을 찾기까지 그들을 아끼는 이웃들의 크고 작은 도움이 꼭 필요했습니다. 메리 역을 맡은 아역배우 맥켄나 그레이스의 연기가 심금을 울리고, 그것을 잘 뒷받침해 준 삼촌 역의 크리스 에번스의 연기가 좋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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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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