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정으로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다운로드, IPTV에서 바로 만나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 부가 판권 시장으로 직행한 영화들 가운데 추석 연휴 동안 볼만한 영화 10편을 골랐다. 일명 '추석 9박10일 비디오 가이드' 두 번째 시간. 관람 등급과 장르를 고려하여 골고루 선정했으니 마음껏 즐기시길. ( 참고 기사: 이 재밌는 영화들이 극장에 안 걸렸다고? 추석이 기회다! )

<돌로레스> 영화의 한 장면

▲ <돌로레스> 영화의 한 장면 ⓒ (주) 컴퍼니 엘


6. <돌로레스>
독일/판타지/90분/15세 관람가

누구나 어릴 적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그것들이 상상이 실제로 살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돌로레스>는 진짜를 똑같이 복제한 모형이 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으로 그 시절 상상을 영화 속 현실로 보여준다. <환상특급>이나 <어메이징 스토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쾌재를 부를 법한 내용이다. 시나리오는 프랑수아 쉬텐, 브누아 페테르스, 앤 바터스가 작업한 코믹북을 원안으로 삼아 각본가 세바스찬 펠드가 이야기의 살을 붙여 완성했다. 연출은 TV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작업하던 마이클 로젤이 맡았다(<돌로레스>는 TV 방영으로 제작된 영화다).

모형 제작자 게오르그(우도 쉔크 분)는 "완벽한 건 없다. 미세투사를 하면 모든 게 휘어 있고, 삐딱하다. 난 그 불완전함을 보면서 완벽한 모형을 만든다"고 말하며 현실을 재창조하길 꿈꾼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모형이 현실을 조종할 수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된 후, 짝사랑하는 여인 돌로레스(프란체스카 페트리 분)를 차지하기 위해 힘을 이용한다. 마음껏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다루었던 영화 <마법의 타자기><클릭><브루스 올마이티>가 밝은 정서로 가득했다면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의 민낯을 드러내는 <돌로레스>는 어두운 성인 동화에 가깝다. 내가 이런 능력을 얻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게오르그가 만든 불멸의 세상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여운을 제법 짙게 남기는 영화다.

<스텝업: 브레이킹쓰루> 영화의 한 장면

▲ <스텝업: 브레이킹쓰루> 영화의 한 장면 ⓒ 세컨드웨이브


7. <스텝업: 브레이킹쓰루>
미국/드라마/101분/12세 관람가

<스텝업: 브레이킹쓰루>는 <스텝업>시리즈와 무관하다. 메가폰을 잡은 존 스웨트남 감독이 <스텝업: 올 인>의 각본을 썼을 따름이다. 국내 수입사가 원제(브레이킹쓰루)에 '스텝업'이란 제목을 무단으로 붙였다.

춤에 대한 열정과 꿈으로 살아가는 케이시(소피 아귀아르 분)와 친구들이 유튜브 댄스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룬 <스텝업: 브레이킹쓰루>는 댄스 영화가 흔히 보여주는 도전, 좌절, 극복이란 공식에 충실하다. 영화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유튜브는 실제로 21세기 '스타 탄생'의 산실이다. 케이시와 친구들이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은 카메라, 소품, 인원 등에서 아마추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런 요소는 실제로 유튜브에 사람들이 올리는 영상에 가깝기에 현실성이 느껴진다. 제작비가 적게 든 영화라는 약점 역시 상쇄한다.

소피 아귀아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케이티 페리,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과 함께 무대에 섰던 인기 댄서 출신의 배우다. 그녀는 갈고닦은 춤 솜씨를 영화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천재 힙합 댄서이자 배우로 활약하는 레 트윈스의 래리, 로랑 형제,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아니타의 공연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백미는 끝 무렵에 케이시가 보여주는 퍼포먼스. 꿈과 현실, 얻는 것과 잃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녀는 마치 속내를 표출하는 듯한 퍼포먼스로 멋들어지게 펼친다. <스텝업> <스트리트 댄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댄스 영화의 매력은 골고루 갖추었다.

<미스 임파서블> 영화의 한 장면

▲ <미스 임파서블> 영화의 한 장면 ⓒ (주)유나이티드 미디어


8. <미스 임파서블>
프랑스/드라마/86/12세 관람가

제목만 보고 액션 영화로 오해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미스 임파서블>은 <라붐>과 <꼬마 니콜라>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온 성장 영화다. 기숙학교에 보내겠다는 부모님의 협박과 학교 선생님과의 갈등 속에서도 끊임없이 우정과 사랑에 빠지고, 무대에서 밴드 보컬로서 노래하는 꿈을 꾸는 명랑한 13살 소녀 오로로(레나 마리앙 분)의 유쾌한 내용을 담았다.

오로로는 매사 심기가 뒤틀린 듯 불평을 쏟아내어 친구나 가족과 매번 다툰다. 흡사 중2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다가 자기가 쿨하다고 위안한다. 그런 모습들 속엔 그 나이 또래의 생각과 꿈이 흠뻑 묻어있다. 운명의 남자를 찾는답시고 후보감을 물색하는 장면에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삶이 망했다고 고민하는 오로로에게 주위 사람들은 인생을 풀어가는 작은 실마리를 하나씩 알려준다. 그렇게 그녀는 한 걸음 나아가다 원점으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자신의 길을 찾는다.

술과 담배에 관대한 프랑스답게 영화에선 청소년들이 음주와 흡연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입사는 등급을 낮출 요량이었던지 흡연 장면을 모조리 블러로 처리했다. 더욱 큰 문제는 가위질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IMDB(인터넷무비 데이터베이스)에 공개된 공식 상영 시간은 90분이나 우리나라에서 심의를 받은 영화는 86분으로 4분가량이 잘려진 상태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 유럽 영화제, 제천국제영화제 등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근사한 성장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트와일라잇 사사라 사야> 영화의 한 장면

▲ <트와일라잇 사사라 사야> 영화의 한 장면 ⓒ (주)에이원 엔터테인먼트


9. <트와일라잇 사사라 사야>
일본/드라마/114분/12세 관람가

"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란 대사로 시작하는 <트와일라잇 사사라 사야>는 갓난아기와 아내만 남겨두고 죽은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영혼으로 머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사랑하는 사람, 영혼, 빙의란 소재로 보면 <트와일라잇 사사라 사야>는 <사랑과 영혼>에게 모티브를 얻은 인상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영화는 아기와 홀로 남게 된 서툰 엄마 사야(아라가키 유이 분)의 성숙해가는 모습과 사야의 주위 사람들의 사연을 다양하게 얽어 소동극의 형태로 풀어간다.

야구복을 입고 죽은 유령 유타로(오오이즈미 요 분)는 웃음과 감동이란 양념을 영화에 듬뿍 쳐준다. 유타로가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 빙의가 가능하다는 설정은 연기의 재미를 음미하게 해준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이, 젊은 청년 등 다양한 연령의 배우들은 오오이즈미 요가 연기한 유타로의 몸짓, 말투를 흉내 내어 하나의 인물로 함께 완성한다.

현재 일본에서  '탤런트 파워 랭킹' 1위를 구가하는 아라가키 유이는 다른 배우들을 한 명의 캐릭터로 마주하는 연기를 멋들어지게 소화한다. 따뜻함으로 가득한 각본과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는 영화의 전개는 깊은 감동을 끌어낸다. 지금 주어진 시간을 주위 사람과 소중히 나눠야 한다는 <트와일라잇 사사라 사야>야말로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 영화의 한 장면

▲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 영화의 한 장면 ⓒ 싸이더스


10.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
프랑스/미스터리/81분/15세 관람가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 SF 영화에서 보았음 직한 괴물을 떠올리게 하나 흔한 장르물과 거리가 멀다. 신비로운 섬에 오직 여인들과 어린 소년들만이 산다는 설정부터 남다르다. 연출을 맡은 뤼실 하지할릴러비치 감독은 전작 <이노센스>에서도 성장 또는 성장의 두려움을 기이한 화법으로 풀어낸 바 있는 문제적 감독이다.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 역시 <이노센스>의 연장선에 서 있다. 숲은 바다로, 소녀는 소년으로 바뀌었으나 성장이란 테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수수께끼로 겹겹이 쌓여있다.

회화적 이미지로 가득한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은 실로 난해하기 짝이 없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비평좌담'에서 유운성 영화평론가는 새로운 경향의 가족 영화를 이야기하며 이 영화를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가족 영화는 두 가지 테마가 있는데 가족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와 울타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는 영화가 있다고 했다.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라는 공간에 갇힌 자들은 규칙에 따라야 하고 위반할 시엔 제재가 따른다고 부연하며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이 여기에 해당하는 가족 영화라고 예시로 들었다. 진화는 어떤 의미일까?  가족과 어떻게 연결될까?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이 들려주는 불편한 성장담은 다양한 해석을 유추하게 한다. 기나긴 추석 연휴에 대뇌피질을 활성화하는 영화로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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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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