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벌인 심리전은 상상 이상으로 치밀했다. 28일 오후 방송된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아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치밀한 공작 행태를 생생히 고발했다. 특히 <스포트라이트>는 이날 방송을 통해 국정원이 배우 문성근씨, 김여진씨,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심리학 이론까지 동원해 이미지 훼손에 나선 정황을 폭로했다.

문성근씨 예를 들어보자. 국정원이 문씨에게 가한 이미지 파괴 공작은 실로 경악스럽다. 국정원이 문씨를 표적으로 삼은 시기는 2011년으로, 이때 문씨는 야권통합운동 '백만 민란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국정원은 문씨를 겨냥해 이미지 실추 유도, 특수활동 전개, 합성사진 유포 등 세 단계로 공작을 벌였다.

<스포트라이트>는 이때 전직 국정원 심리전단 관계자의 증언을 공개한다. 이미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합성사진은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문제의 합성사진이 공개될 때만 해도,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만들었다고는 보기엔 너무 허술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문씨 역시 일베에서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합성사진 속엔 정교한 심리학 이론이 숨어 있었다. 전직 국정원 심리전단 관계자는 <스포트라이트> 취재진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국정원 관계자: 처음에 합성사진 보여줬더니 (전문가가) 상태 너무 좋으니까 너무 전문가티 나니까 싼티나게 하라고 지시했다.

취재진: 아 그래서 문성근씨도 일베에서 만든 것으로 의심했구나.

비단 문성근씨, 김여진씨의 합성사진만이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희화화한 합성사진도 심리학 전문가의 자문을 거친 '작품'이었다.

 28일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심리전에 전문가들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28일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심리전에 전문가들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 JTBC


국민을 적으로 대한 대통령

이 전 대통령은 정말 국민을 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리학 이론까지 끌어들이면서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실제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때문에 정권 초반 최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국민이 대통령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반대만 외쳐서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라도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마침 이날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손석희 앵커는 유 전 장관이 제작진을 피곤하게 했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당시는 국민연금이라든가, 보건복지부 관련 이슈가 워낙 많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문가나 시민단체를 연결해 의견을 들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유시민 장관은 출연 신청을 했습니다. 반론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관이 직접 반론을 하겠다니 한편으로는 반길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거 너무 정부 입장만 전하게 되는 게 아닌가 부담스러움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방송에 나오면 프로그램 성격상 논쟁도 하게 되고는 했지만 유 장관이 그걸 마다할 사람도 아니었지요."

이 전 대통령도 이렇게 했어야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국민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해 죄송하다고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측근인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앉히고 국민들의 생각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심리학 전문가들이 이 전 대통령의 폭주를 거들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심리학자들의 반인륜 범죄, 묵과할 수 없다

정보기관이 요원들의 훈련과 원활한 작전수행을 위해 민간 전문가의 지식에 기대는 일은 자연스럽다. 미 중앙정보부(CIA)의 경우는 아예 학자들에게 연구용역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보기관이 민간 전문가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자문을 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함이다. 전문가들 역시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공공의 이익 증진을 위해, 특히 정보기관의 의뢰를 받았다면 국익 증진을 위해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과 심리학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저버렸다. 스포트라이트 취재진에게 증언한 전직 심리전단 요원은 이렇게 탄식했다.

 28일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심리전에 전문가들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28일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심리전에 전문가들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 JTBC


 28일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심리전에 전문가들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28일 JT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국정원의 심리전에 전문가들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 JTBC


"북한이나 적한테 할 행동을 국민한테 하는 게 너무 화가 많이 납니다. 사실."

국정원의 심리전을 거든 심리학 전문가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들의 행태를 '반인륜 범죄'로 규정했다.

"심리학자가 '심리적 고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자문하는 건, 의사가 '육체적 고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자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정원에 자문한 심리학자는 731부대에서 생체실험한 의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륜을 안다면, 저들을 용서해선 안 됩니다.

무고한 피해자가 받는 '심리적 타격'을 극대화하고 무식한 가해자들의 '패륜적 공격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개발한 심리학자들의 반인륜 범죄를 묵인한다면, 한국민은 2차 대전 중의 독일인이나 일본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됩니다."

무릇 협력 없이 지배 없다. 현재 전 정권의 방송장악이 문제로 지적됐고 이에 KBS·MBC 공영방송 노조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파업 중이다. 공영방송 내 협력자들이 없었다면 전 정권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심리학 전문가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국민들은 국정원 공작정치의 실체를 좀 더 일찍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정원의 심리전에 자문한 심리학 전문가들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당사자들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 전문지식의 제공은 공익적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민들을 상대로 정권이 벌인 심리전에 전문지식을 제공한 건 절대 묵과해서는 안 될 범죄행위다. 국정원 적폐청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민간에서 국정원에 협력한 민간 전문가들의 존재 역시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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