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부산 국제영화제가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올해 상영 편수는 총 75개국 298편으로 예년과 비슷하다. 10일간 열리는 영화제 개막작과 폐막작 모두 여성 감독이다. 이것이 영화팬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개막작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

 개막작 유리정원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문근영

개막작 유리정원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문근영 ⓒ 부산국제영화제


다리에 장애를 가진 여자가 있다. 그녀는 식물을 닮았다. 아니, 닮으려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조용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여자는 버림받고 상처를 입은 채 자기만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간다. 자기와 닮은 나무들의 세상 숲으로 말이다. 여자는 눈에 띄지 않으려 조심하며 묵묵히 자기 일에만 전념한다.

<유리정원>은 한 여인의 사랑과 아픔을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신수원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영화다. 동물적 욕망과 질서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식물로 살아야 하는 여자의 가슴 아픈 복수극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문근영이 식물을 닮은 여인, 재연을 연기한다. 재연은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일하며 연구소의 교수와 사랑하는 사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벌목으로 저주를 받아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고 믿는다. 재연은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며 식물의 세포를 통해 인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실험에 몰두한다.

실험은 더디게 진행되고 재연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교수는 연구소에서 새로운 애인을 만들고 재연은 버림받는다. 교수와 그의 새 애인은 재연의 연구 성과마저 가로챈다. 한편 홀로 사는 재연을 멀리서 지켜보는 무명 소설가가 있다. 그는 선배 작가에게 표절 시비를 걸었다가 문단에서 매장을 당한 상황. 재연에게 호기심을 느낀 소설가는 재연이 숨은 숲속 공간까지 찾아가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욕심을 낸다. 그리고 상상 못 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2010년 첫 장편 <레인보우>가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2012년 단편 <순환선>으로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카날플뤼상을 받았다. 두 번째 장편 <명왕성>(2013)은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에 초청, 특별 언급됐다. 세 번째 장편 <마돈나>(2015)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됐다.

폐막작은 실비아 창의 <상애상친>(Love Education)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실비아 창은 아시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80년대에 감독으로 데뷔, 2004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후보에 오른 <20 30 40>(2004), 2015년 홍콩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인 <마음의 속삭임>(2015) 등 1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했다. 각계각층의 여성을 흥미롭게 묘사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현재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Courtesy to the Nation)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 ⓒ 부산국제영화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영화는 이 말의 의미를 사회가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영화는 민주주의 투쟁이 정점이었던 군부독재 정권 시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낸 인간 강기훈을 담는다.

1990년대 열사들의 배후로 지목되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속에서 강기훈은 희생되고 박제되고 잊혔다. 영화는 유서대필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겪은 살아있는 인간 강기훈의 오늘을 따라간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1990년대 개인의 선택이자 시대의 선택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만들어냈는가?

전두환 군부정권의 악령이 떠돌던 노태우 정부시절 1991년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학교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 사망했다. 검찰은 김기설의 친구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과 정황증거로 징역3년을 선고받은 강기훈은 1994년 8월 17일 만기출소 했다. 재심을 받아들인 대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에 휘둘린 대한민국은 한동안 휘청거렸다. 강기훈은 검찰수사 과정에서 고문가혹, 조작행위가 있었고, 편파적인 필적감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를 총지휘한 사람은 법무부장관 김기춘이었다. 영화는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고 눈알을 부라리던 자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 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하던 신부 신분의 총장에게 '국가에 대한 예의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영화는 역사 속 개인, 개인 속 역사, 역사 속 선택, 정치적 인간, 인간적 정치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17년 현재, 열사들의 죽임이 헛되지 않았음을 광장은 말해주고 있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라는 시대정신에서 국가에 대한 예의는 무엇일까? 영화는 국민에게 묻고 있다.

서울대 출신 권경원은 늦깎이로 영화계에 뛰어들어 1997년 <넘버 3> 제작부 막내로 영화를 시작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단편 <새천년 건강체조>를 만들었다. <마지막 늑대>의 조감독이었고, <친절한 금자씨>의 프로덕션 수퍼바이저로 일했다. <감독을 위한 영화연기 연출법>을 번역했으며, 오랫동안 독립영화협의회의 독립영화워크숍 강사로 일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펀딩을 조성한 결과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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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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