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crete And Gold >를 발표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 Concrete And Gold >를 발표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 소니 뮤직


데이브 그롤(푸 파이터스의 리더, 너바나의 전 멤버)은 기타를 잡는 매순간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남자다. 첫 번째 내한 공연에서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록의 왕좌'에 앉아 투혼을 불태웠다. 지난 8월, 잠실에서 열린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는 무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몹시 신난 나머지 '앞으로 열 번 더 오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그들의 공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록'이었다. 그들의 공연에는 세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없고, 콜드플레이처럼 화려한 특수 효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예수처럼 긴 머리를 흔드는 록스타의 땀, 그리고 악기들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 9월 중순, 푸 파이터스의 9집 앨범 < Concrete And Gold >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와 UK 앨범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 Concrete And Gold >에는 록 팬들이 기대하던 푸 파이터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 하드 록에 탐닉하면서도, 그들은 곳곳에 작은 변화들을 숨겨 놓았다.

지난 두 장의 전작 < Wasting Light >(2012)과 < Sonic Highways >(2014)의 프로듀서는 부치 빅이었다. 그는 너바나와 스매싱 펌킨스의 음반들을 빚어낸 얼터너티브의 거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자리를 대신한 프로듀서는 바로 그렉 커스틴이다. 그는 아델(Adele)의 'Hello', 시아(Sia)의 'Chandelier',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Stronger' 등으로 유명한 팝 프로듀서다. 그렉 커스틴의 팝적인 감각, 그리고 푸 파이터스의 직선적인 록이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지 궁금했다. 그 결과물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I don't wanna be king, I just wanna sing a love song'
(왕이 되고 싶지 않아. 그저 사랑 노래를 부르고 싶을 뿐)

 Foo Fighters의 신보, < A Concrete And Gold >

Foo Fighters의 신보, < A Concrete And Gold > ⓒ 소니뮤직


이런 읊조림과 함께 < Concrete And Gold >는 문을 연다. 본격적인 시동을 거는 곡 'Run'은 7집의 푸 파이터스가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음악을 통틀어 가장 거칠다. 차분한 인트로와 함께 진행되더니, 압도적인 속도와 노이즈 사운드가 치고 들어온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데이브 그롤의 스크리밍은 록 키드들을 위한 선물이다. 그런데 이 파워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삶에 대한 희망이다. 'The Sky Is A Neighborhood'의 장중함 역시 권할 만 하다. 이 곡에서 데이브 그롤은 자신이 어렸을 때 하늘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빌려, 삶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게스트들 역시 이 앨범을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Make It Right'은 묵직한 기타 리프와 코러스가 이끄는 레드제플린 풍의 하드록인데, 이 곡의 코러스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맡았다. 이 특별한 콜라보레이션은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성사되었다는 후문이다. (앨범 속지에서도 팀버레이크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가 허스키한 보컬을 과시하는 'Sunday Rain'에서는 폴 매카트니의 드러밍을 들을 수 있다. 핑크 플로이드를 연상시키는 대곡 'Concrete And Gold'에서는 보이즈 투 멘의 멤버 숀 스탁멘(Shawn Stockman)의 목소리까지 더해졌다.

이번 앨범에서 데이브 그롤은 앞부분을 차분하게 구성한 뒤, 뒷부분에서 하드한 사운드를 터뜨리는 구성을 애용한다. 'Run'은 물론, Dirty Water', 'Arrows'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관중들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파괴적인 사운드를 원하기 때문일까. 에너지를 모두 쏟아낸 뒤, 이어지는 'Happy Ever After' (Zero Hour)'는 듣는 이의 감정을 이완시키기에 충분하다. 나른한 어쿠스틱 기타와 코러스를 듣고 있으면 목가적인 풍경이 눈에 그려진다. 푸 파이터스는 결코 거친 것에만 능한 밴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곡이기도 하다.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

'록' 페스티벌마저 흐름을 받아들여 일렉트로닉 뮤지션을 내세우고, 차트에서 록 밴드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다. 그러나 푸 파이터스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멋진 것을 고집하고 있다. 즉, 아날로그와 클래식 록에 대한 갈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9년 전,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5집 < 보통의 존재 >를 발표하면서 앨범을 트랙 순서대로 들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수록곡들이 하나의 감정을 둘러싼 채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푸 파이터스의 이번 앨범에 특별한 서사의 흐름은 없지만, 역시 트랙 순서대로 들어야 온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강약 조절이 있기 때문인데, 이런 것이 곧 음반의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 Concrete And Gold >는 하드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무드를 연출한 뒤, 그 어떤 밴드보다 웅장하고 강력하게 끝을 맺는다. 데이브 그롤은 이번 앨범을 '모터 헤드(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보컬 레미 킬미스터는 재작년 겨울 세상을 떠났다.)가 연주하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비틀즈의 역사적인 명반)'에 비유했다. 그롤의 이러한 의도가 그대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성취의 여부를 떠나,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영웅'이 끝내주는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푸 파이터스 FOO FIGHTERS 데이브 그롤 테일러 호킨스 폴 매카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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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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