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홉 번째 글은 광주MBC 김철원 기자의 글입니다.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 중인 광주MBC 노동조합 조합원들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 중인 광주MBC 노동조합 조합원들 ⓒ 광주MBC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광주에서도 대규모 집회가 예정됐는지라 보도국에서는 기자들이 취재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중계 장비를 챙겨 나갈 준비를 하던 기자들 사이에서 수심 어린 대화가 오갔다.

기자A: "금남로에 가면 우리도 쫓겨나지 않을까."
기자B: "그래도 우리는 부끄러운 방송은 안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기자C: "MBC면 다 같은 MBC지. 사람들이 서울MBC, 광주MBC 구분해서 욕한답니까."
기자D: "그래도 취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 광화문에서는 서울MBC 취재인력이 시민들 항의를 받고 철수하거나 쫓겨나고 있었다. 탄핵 사태를 제대로 취재하지도, 방송하지도 않는 MBC에 대한 항의였다. 중계차를 타는 방송기자가 자신의 정체성인 MBC 태그를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떼어내는 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없는 건물 옥상 따위에 올라가 겨우 방송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MBC브랜드를 함께 공유하는 지역의 방송기자들이 불상사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광주였다. 광주시민들이 누군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사실보도를 하지 않는다며 광주MBC에 불을 질러 응징한 이들이 아니던가. 박근혜 대통령 전국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5%로 떨어졌을 때는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 0%를 기록한 광주전남이었다. 국정농단사태에 어느 지역보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고 탄핵 관련보도에 어느 누구보다 관심이 큰 광주시민들이었다. MBC의 왜곡보도와 축소보도에 대한 분노가 서울시민들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상황에서 광주MBC 취재인력이 금남로에서 강력한 비판과 항의에 직면할 것이라는 걱정은 당연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차 촛불집회부터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통틀어서 말이다. 비록 JTBC만큼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광주MBC 취재진은 금남로에서 배척당하거나 욕먹지 않았다. 집회 도중 흥분한 일부 시민이 취재진에게 시비를 걸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며 말려줬다.

"광주MBC는 서울MBC와 다르잖아요." 

광주MBC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집중보도했거나 광주시민들의 여론과 정서를 제대로 반영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평가가 누적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금남로 촛불집회 때 광주MBC 취재진을 본 시민이 보내온 페이스북 메시지.

금남로 촛불집회 때 광주MBC 취재진을 본 시민이 보내온 페이스북 메시지. ⓒ 김철원


"광주문화방송 건물이 불타고 있습니다"

5.18 때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빚을 갚기라도 하듯 그동안 광주MBC는 5.18의 진실을 밝히는 보도와 프로그램을 지역 언론사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방송해왔다. 이명박 정권 시절엔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박근혜 정권 때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취재함에 있어서는 목포MBC, 여수MBC와 함께 최선을 다했다. 엄혹한 시절에도 정권비판적 의제를 정면직시한 덕분에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와 각종 동호회 게시판에는 '역시 광주MBC'라는 내용의 포스팅들이 종종 떠올랐다.

이런 평가들이 누적된 결과가 금남로 촛불현장에서 사람들이 말했다는 "광주MBC는 다르잖아요"라는 문장으로 발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주MBC는 금남로 시민들의 인터뷰를 모아 [2016 우리가 켠 촛불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도 했다. 방송보기-> (http://bit.ly/2fnGNdl) 당시 서울MBC에서는 방송을 기대할 수 없었던 기획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 5.18 기획보도의 경험이 특별하다. 5.18 광주항쟁 열흘의 의미를 하루하루씩 정리한 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방송보기->http://bit.ly/2fhhB4G)의 4편 '언론은 어디에?'(방송보기->http://bit.ly/2xZsLGu)편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방송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사의 첫문장은 이랬다.

"광주문화방송 건물이 불타고 있습니다"

자사 기사를 통해 자사 홍보를 하지 못해 안달인 요즘에 자사의 불행한 역사를 다룬 저 기사는 어떻게 출고되고 방송될 수 있었을까. 불탄 자사의 역사까지 상대화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1980년 5월 21일 시민들이 불을 질러 전소된 광주MBC 사옥

1980년 5월 21일 시민들이 불을 질러 전소된 광주MBC 사옥 ⓒ 광주MBC


오월영령들이 만들어준 투명한 방패막

광주MBC는 지난 37년 동안 왜곡보도로 응징된 언론의 대명사로 기능해왔다. 지금도 사람들은 왜곡 기사나 부실한 취재를 비판할 때 '80년 광주MBC'를 언급한다. 시민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보도하지 않다 시민들이 불을 질러 전소된 그때의 광주MBC처럼 되지 않으려면 제대로 취재하라는 뜻이겠다.

한국 언론 역사상 최초라 보여지는 수용자에 의해 언론이 응징된 이 상징적 사건은 한편으로는 광주MBC 구성원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MBC를 둘러싸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방패막이 돼주었다. 광주MBC 구성원들이라면 누구나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를 행사하거나 혹은 받게 됐을 때 '80년 광주MBC'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광주MBC 피디와 기자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광주시민, 오월영령들이 있는 한 그런 부당한 지시를 받을 수 없고 터무니 없는 보도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말이다. 1980년의 불탄 경험은 부당한 지시나 외압에 맞설 강력한 용기와 명분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자 투명한 방패막으로 작용했다.

생각건대 광주시민들은 지금의 광주MBC를 그 때의 광주MBC와 확실히 다른 성격의 언론사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달리 말하면 지금과 그때의 광주MBC의 DNA가 달라졌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오월영령들은 광주항쟁을 통해 광주MBC의 DNA를 성공적으로 바꿔낸 셈이다. 그런데 DNA라고 쓰고 보니 MBC 사장이었던 김재철씨가 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여가면서 바꾸고자 했다는 MBC의 DNA가 생각난다.

김씨가 그토록 바꾸고자 안간힘을 썼던 MBC의 DNA는 1987년 유월항쟁 때 만들어졌다. 현재 MBC 노동조합이 벌이고 있는 파업의 원동력은 이 때 형성된 DNA 덕이라 볼 수 있겠다.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MBC의 DNA 말이다. 이걸 바꿔보겠다며 김재철씨와 안광한씨 등이 기자, PD들을 쫓아내가며 억지로 DNA를 주입했지만 MBC의 DNA로 이식되는 데 실패했다. 그건 그저 떼어내야 할 종양이나 암덩어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0년 때처럼 다시 불탈 수 없다는 광주MBC 노조의 의지를 담은 피켓

1980년 때처럼 다시 불탈 수 없다는 광주MBC 노조의 의지를 담은 피켓 ⓒ 광주MBC


알 유 어 리포터?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통하는 주제는 영화 속 광주시민 류준열이 토마스 크레취만에게 건네는 전라도 사투리가 가득한 저 대사(알 유어 리포터? Are you a reporter?)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고립된 광주의 소식을 전해줄 기자를 만난 기쁨을 표현한 대사("당신, 기자 맞아요?")였겠지만 내게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광주의 진실을 취재해서 보도할 수 있는 진짜 기자가 맞냐는 대사("당신, 진짜 기자 맞아요?")로 들렸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계엄군을 피해 도망가거나 전두환 정권에 부역해 보도를 하는 와중에도 힌츠 페터 기자와 나경택 기자처럼 현장을 지키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면서 언론인의 역할을 다한 이들이 있었기에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었다. 광주시민이 기자에게 던지는 '너 기자(언론인) 맞냐?'는 질문은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중인 MBC 노조 조합원들이 저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언론자유와 언론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나선 파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때의 광주MBC와 지금의 광주MBC가 다른 것처럼 지금의 MBC는 나중에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해답은 이번 파업 결과에 달려 있다.

 광주MBC 김철원 기자.

광주MBC 김철원 기자. ⓒ 김철원


김철원 기자는 2004년 광주MBC에 입사해 법조와 정치, 경제 분야를 취재해오고 있다. 2012년부터 SNS 프로필 사진에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이자 저항의 아이콘인 '가이 포크스' 가면을 착용한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가면을 쓰는 건 MBC와 YTN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이 복직할 때까지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해직 언론인들이 하루라도 빨리 복직해 가면을 벗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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