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미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는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을 배출했던 1984년과 함께 역대 최고의 풍년으로 꼽힌다. 실제로 2003년에는 '킹'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비롯해 '플래쉬' 드웨인 웨이드, '공룡' 크리스 보쉬, 데이비드 웨스트(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 많은 스타 선수들이 배출됐다. 실제로 2003년 드래프트 출신들이 얻은 챔피언 반지만 해도 6개나 된다.

하지만 그 해 전체 3순위로 입단해 10년이 넘도록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활약했던 카멜로 앤서니(이하 멜로)는 유독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승은커녕 아직 파이널 무대를 밟은 적도 없다. 득점왕 1회와 ALL NBA팀 6회 선정, 올스타전 10회 출전, 올림픽 금메달 3개에 빛나는 멜로의 화려한 업적을 돌이켜 보면 운이 따르지 않았던 셈이다.

덴버 너기츠에서 데뷔한 앤서니는 지난 2011년부터 NBA 최고의 빅마켓팀인 뉴욕 닉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앤서니는 점점 줄어드는 팀 내 입지와 프런트와의 갈등, 더 늦기 전에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겹치며 대도시의 외로운 에이스 대신 더 많은 승리를 챙길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지난 24일 트레이드를 통해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MVP 러셀 웨스트브룩이 속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합류한 것이다.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닉스와 멜로의 7년

 멜로와 닉스가 함께 한 7년은 서로에게 썩 유익하지 못했다.

멜로와 닉스가 함께 한 7년은 서로에게 썩 유익하지 못했다. ⓒ NBA.com


닉스는 멜로가 득점왕을 차지했던 2012-2013 시즌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 패한 이후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닉스는 2016-2017 시즌을 앞두고 데릭 로즈(클리블랜드), 조아킴 노아, 코트니 리 등을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복귀를 노렸지만 좀처럼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멜로는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려는 구단과 갈등을 빚었고, 필 잭슨 사장은 멜로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으며 리빌딩을 선언했다. 하지만 멜로는 2014년 7월 닉스와 5년 1억24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맺으면서 트레이드 거부 조항을 넣었다. 결국 닉스의 멜로 트레이드는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닉스는 시즌이 끝난 후에도 꾸준히 멜로의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하지만 멜로는 급할 것이 없었다. 우승에 가까운 강팀으로 이적하면 좋지만 설사 트레이드가 무산된다 해도 남은 2년 동안 54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올림픽 금메달 3개라는 업적을 가진 멜로 입장에서는 굳이 우승반지에 목을 멜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멜로는 크리스 폴과 제임스 하든 콤비를 결성한 휴스턴 로케츠를 이적 희망 구단으로 공공연히 밝혔다. 하지만 이미 폴을 데려오느라 선수단의 절반을 내보낸 휴스턴은 멜로를 영입할 여력이 없었다. 휴스턴은 2020년까지 장기계약으로 묶여 있는 포워드 라이언 앤더슨을 매물로 내놨지만 아무리 닉스가 멜로 트레이드에 혈안이 돼 있어도 골밑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29세 포워드의 장기계약을 떠안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닉스와 멜로의 '불편한 동거'는 2017-2018 시즌에도 계속 이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난 24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닉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을 보냈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1992년생의 수준급 빅맨 에네스 칸터와 백인 슈터 덕 맥더멋, 그리고 2018년 드래프트 2차 지명권을 닉스에 제시한 것이다. 에어컨리그를 뜨겁게 달군 멜로 드라마 2.0이 종영되는 순간이었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웨스트브룩의 조력자가 돼야 하는 멜로

 슈퍼스타 멜로가 합류하지만 오클라호마시티는 여전히 러셀 웨스트브룩의 팀이다.

슈퍼스타 멜로가 합류하지만 오클라호마시티는 여전히 러셀 웨스트브룩의 팀이다. ⓒ NBA.com


사실 오클라호마시티는 이번 오프시즌의 최대 수혜자이자 숨어있던 강자라고 할 수 있다. 팀 전력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브룩을 지킨 채로 지난 시즌 한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올스타 레벨의 포워드를 둘이나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폴 조지를 영입하면서 인디애나에 내준 빅터 올라디포는 성장이 정체되고 장기계약까지 해버린 '계륵'이었다.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MVP 웨스트브룩과 작년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멜로, 조지의 올스타 출전 횟수를 모두 합치면 무려 20회에 달한다. 빅3의 이름값만 놓고 보면 골든 스테이트의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클레이 탐슨, 보스턴 셀틱스의 카이리 어빙, 고든 헤이워드, 알 호포드, 클리블랜드의 제임스, 아이재아 토마스, 케빈 러브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선수 기용은 빌리 도노반 감독의 고유 권한이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클라호마의 2017-2018시즌은 웨스트브룩, 안드레 로벌슨, 멜로, 조지, 스티븐 아담스로 주전 라인업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스몰 포워드에 익숙한 조지가 파워포워드로 나서기가 다소 부담스럽겠지만 빠른 몸놀림과 정교한 기술, 그리고 넓은 슛거리까지 겸비한 조지라면 부족한 파워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예측된다.

문제는 역시 멜로의 역할이다. 만약 멜로가 웨스트브룩의 조력자로 베테랑답게 팀을 위해 헌신한다면 오클라호마시티는 서부지구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멜로가 뉴욕에서의 마지막처럼 에이스 역할만 고집한다면 팀의 조직력은 완전히 와해될 수도 있다. 우리는 NBA 역사를 통해 '급조한 슈퍼팀'이 얼마나 큰 위험부담이 있는지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포지션으로 보나 플레이 스타일로 보나 지난 시즌에 보여준 기량으로 보나 오클라호마시티는 웨스트브룩이 이끌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멜로는 만19세의 나이에 NBA무대를 밟은 후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소속팀의 에이스가 아닌 적이 없었다. 멜로가 조력자라는 새 역할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오클라호마시티의 새 시즌, 그리고 2017-2018 시즌 NBA의 판도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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