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막바지 두산에 공동 선두를 허용하며 역전 위기에 몰린 기아 타이거즈의 행보가 어수선하다. 전반기를 압도적인 1위로 마치며 독주체제가 예상되었던 기아는 후반기에는 25승 27패로 5할에도 못 미치는 승률로 부진을 거듭하다가 두산에 무려 13게임차를 따라잡히는 이변을 허용하고 말았다.

6경기를 남겨둔 현재 객관적인 상황은 여전히 기아가 조금 더 유리하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다. 기아는 9월 성적이 9승11패에 그치고 있으며  지난 주만 놓고보면 1승4패다. 지난주 기아의 팀타율은 2할5푼으로 9위에 그쳤다. 득점권 타율은 2할2푼9리로 더 떨어진다. 선발진이 비교적 호투하고도 불펜 난조로 승리를 놓치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라이벌 두산은 무려 6연승의 상승세를 달리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만일 두산이 이대로 역전우승을 달성하게 된다면 KBO 역사상 손꼽히는 드라마가 탄생하게 되겠지만 반대로 기아 입장에서는 구단 역사상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역대급 흑역사를 쓰게된다. 정규시즌은 물론이고 포스트시즌에까지 후유증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최근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인기와 성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자축하던 분위기에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디펜딩 챔피언 두산의 놀라운 후반기 상승세를 감안하더라도 2위권과 8~13게임에 이르던 승차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기아 스스로 무너진 면이 크다. 팬들의 원성이 높은 부분은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전반기 상승세에 자만하여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게 아니냐는 불만이다. 실제로 후반기에도 기아가 2위권과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했다. 하지만 고비마다 거듭된 역전패와 연패로 인하여 상승세를 스스로 걷어차며 추격의 여지를 내주는 장면이 반복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최근 팬들의 비판은 사령탑인 김기태 감독에게 집중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바탕으로 암흑기를 전전하던 기아를 지난해 5년만의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이어 올시즌에는 한층 안정된 투타 전력을 바탕으로 1위에 등극시켰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LG 시절에 이어 또 한번 '팀 재건의 달인'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기아의 선두 수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김기태 감독의 팀운영도 점점 비판을 받는 빈도가 늘어났다. 사실 지나치게 변칙적인 선수기용이나 투수교체 타이밍에 대한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번 지적받았던 부분이다. 전반기에는 워낙 압도적인 팀성적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기아가 지난 8~9월에 급속도로 위기를 맞이하면서 김기태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기아 입장에서 반드시 잡아야하는 경기, 혹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경기에서 하필 김기태 감독이 불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선수교체 타이밍으로 주도권을 내주면서 상대에게 흐름을 내주고 무너지는 양상이 반복됐다. 9월 3일 넥센전에서 9회 말 6점차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고척 대참사'나, 전반기에 4연패 이상이 한번도 없었던 팀이 후반기에만 각각 6연패-4연패를 잇달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용병술의 모순도 자주 거론된다. 자주 지적받는 단골메뉴로 불펜 혹사나 좌우놀이, 잦은 선수교체 등 일정한 '루틴'에 집착하는 듯한 경기운영을 보이면서도, 정작 그 근거가 되어야할 데이터나 연속성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은 잘 보이지 않으며 감독의 '감'에 따라 즉흥적으로 팀운영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결과론'으로 몰아붙인다는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후반기 기아가 유난히 역전패가 많고 비슷한 양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되풀이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는 것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의미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반기에 워낙 좋은 성적을 올리다 보니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모두 긴장감이 느슨해졌고, 적절한 완급조절이  필요한 상황에서 김기태 감독도 다소 경기운영을 안일하게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실 감독의 진정한 역량은 잘 나갈 때보다는 오히려 팀이 어려울 때 빛을 발한다는 격언도 있다. 김기태 감독은 분명히 선수단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하여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능력에 장점이 있는 지도자다. 문제는 일정수준으로 올라가는 것보다도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점이다.

김기태 감독과 기아 모두 1위를 지키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김 감독은 LG 시절 정규시즌 2위에 오른 것이 감독인생 최고의 성적이었고 기아도 마지막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2009년으로 벌써 8년전이다. 수성에 대한 압박감은 정상에 도전하는 강팀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기도 하다. 김 감독 개인에게도 지도자 인생에서 '명장'으로 올라설수 있느냐, 아니면 그저 '괜찮은 감독' 정도로 머물지 가늠할 수 있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왕조의 중흥을 꿈꿨던 기아는 후반기만 놓고보면 '역대 가장 만만한 1위팀'이라는 조롱을 듣는 상황에 몰렸으며, 김기태 감독도 '역대 가장 비난받는 1위팀 감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듣는 처지가 됐다. 냉정히 말하면 올해 가을야구 탈락이 확정되어 차라리 속편한 하위권팀 감독들보다도 차라리 김기태 감독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체감상 훨씬 강하게 느껴질 정도다.

김 감독으로서는 불과 몇 년전까지 가을야구 진출도 언감생심이던 팀을 여기까지 올려놓은 공로를 감안하면 살짝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높이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기대치도 많아지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여론의 생리다.  김 감독은 과연 1위라는 왕관을 스스로 지켜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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