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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김제동씨는 <그알>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직원과의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그알>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직원과의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 SBS


"가서 똑똑히 전해주라. 당신 임기, VIP 임기는 4년 남았지만 나 유권자로서의 임기는 평생 남았다. 누가 더 오래 가는지 보자. 누가 더 걱정해야 되는지 보자."

23일 오후 방송된 SBS 시사 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은밀하게 꼼꼼하게-각하의 비밀부대' 편(아래 <그알>)에 출연한 방송인 김제동씨의 말이다. 김씨는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이 찾아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제 사회를 맡지 말아 달라는 외압을 가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의 말을 들으면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먼저 정권의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은 데 고마웠다.

직접 겪은 일이다. 2016년 7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부지로 경북 성주군이 결정되자 성주군민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이에 다음 달 직접 성주로 내려가 군민들과 접촉을 했고,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옮겼다. 그런데 주민 중 한 분께 연락을 받았다. 정보과 형사가 해당 기사를 보고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 어떤 경위로 그 같이 말했는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그러면서 정보과 형사로부터 연락받고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공권력의 전화 한 통화도 이렇게 공포감을 심어 주는데, 김제동씨에겐 국정원 직원이 직접 찾아갔으니 위축될 법도 했다. 그런데 김제동씨는 국정원 직원에 당당하게 맞섰다. 이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또 하나 더욱 고마운 점은 우리 각자가 종신 임기인 유권자임을 일깨워준 데 있다. 김제동씨의 말대로 정권의 임기는 정해져 있다. 어느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든 일단 정해진 임기까지만 최고 권력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임기 동안의 성과에 따라 정권 재창출을 보장받을 수도, 반대일 수도 있다. 이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방식을 거스르고 국정원을 위시해 모든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보수 정권을 재창출하려 했다. 불행하게도 이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소중한 유권자의 권리, 엿바꿔 먹지 않았나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우리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도 이른바 적폐 세력들은 여전히 도처에 퍼져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정권 당시 정부·여당이었던 현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으로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일관되게 거부권을 행사 중이다. 최근엔 이 당의 정진석 의원이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씨가 가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막말로 일대 파문을 불러왔다. 그뿐만 아니라 장제원 의원, 홍준표 대표가 정 의원을 두둔하는 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정 의원이 고 노 전 대통령을 끌어 들인 데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사를 막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수년 전 비극적으로 세상을 등진 고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참으로 야비하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정치적으로 위기 국면에 처했을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하지 않았던가? 이들이 재차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과연 인두겁을 쓴 사람인지 의심마저 든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민의 선택으로 뽑힌 자들이다. 특히 이 당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 지역구는 조건 없는 지지 경향이 강하다.

비단 자유한국당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 11일 정기국회에서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이 부결됐다. 김 전 후보자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민주주의는 하해와 같다'는 소수 의견을,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 의견을 냈다. 이런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 인준을 받는데 국회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145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 과정에서도 주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성 소수자 관련 입장을 문제 삼아 인준 반대 여론몰이를 했다. 도대체 국회에 어떤 자들이 들어가 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질까? 또 이런 자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준 국민은 또 어떤 사람들일까? 혹시 우리가 소중한 한 표를 엿 바꿔 먹듯 함부로 던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현실 정치가 이 지경이기에 우리가 종신 임기를 보장받는 유권자임을 일깨워준 김제동씨의 한 마디는 큰 감동이었고,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알>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경찰과의 교감,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 그간 꾸준히 제기됐던 의혹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줬을 뿐, '큰 팩트'는 없었다. 그러나 김제동씨의 한 마디는 팩트가 빠진 빈칸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일베' 등 극우 인터넷 사이트는 김씨를 '입진보'라고 폄하해 왔다. 그러나 김씨야 말로 정치의 작동방식을 제대로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말'의 예술

정치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으나 정치는 기본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 그중에서도 '말'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행위다. 물론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험악한 말이 불거질 수는 있다. 또 자유한국당처럼 자유롭게 막말을 '투척'하며 판을 어지럽히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도 말은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되고, 품격 넘치는 말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의 정치판처럼 상대 정치인이나 세력을 흠집 내기에만 골몰하는 건 정치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VIP 임기는 4년 남았지만 나 유권자로서의 임기는 평생 남았다"는 김제동의 한 마디는 정곡을 제대로 찌른다.

이제 다시는 김제동씨 같이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문화예술인들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을 최종 지시한 책임자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든 정황은 최종 책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임을 지목하고 있다. <그알>의 진행자인 김상중씨도 클로징 멘트를 통해 이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첫걸음은 적폐의 책임자가 모든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밝히는 일이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국민을 둘로 갈라 싸우게 했는지, 권력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해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반대하는 목소리를 탄압하고 사찰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믿는 민주주의인지, 이제 당신께서 국민의 이 물음에 답할 차례입니다."

김상중의 클로징 멘트는 <그알> 제작진이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알> 제작진들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벌써 설렌다.

그것이 알고싶다 김제동 사드 성주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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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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