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히딩크 사태'가 한국 축구의 주요 이슈인 시점에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명단 발표가 있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10월 7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와, 3일 뒤에는 튀니지를 대신해 모로코와 평가전을 가질 예정이다. 25일 발표된 대표팀 명단에 속한 선수들로 평가전 2경기를 치러낸다.

예고했던 대로 K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전부 제외됐다.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과정에서 잦은 '조기 소집'으로 피해를 본 K리그를 위한 배려다. K리거들이 빠진 자리는 모두 해외 클럽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로 채워졌다.

해외파답게 명단의 면면은 화려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기성용(스완지시티)이 어김없이 발탁됐고, 이번 시즌 간간이 소속팀에서 기회를 부여받고 있는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도 신태용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최근 리그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던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도 일단 명단에 포함됐다. 프랑스 무대에서 뛰어난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 권창훈(디종 FCO)도 선택을 받았다.

수비진은 중국과 일본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지난 '신태용호 1기'에서 주장 완장을 찼던 김영권(광저우 헝다)을 필두로 김주영(허베이 화샤)와 권경원(텐진 취안첸) 등이 수비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골키퍼 자리에는 지난 최종 예선 경기 동안 주전으로 낙점 받은 김승규(빗셀 고베)와 단골 손님인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간혹 대표팀에 뽑혔던 구성윤(콘사도레 삿포로)이 선발됐다. 기대를 모았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와 백승호(페랄라다)의 발탁은 뒤로 미뤄졌다.

지동원을 발탁한 신태용의 의중

가장 관심을 끄는 선발은 역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이 가능한 지동원과 황의조의 발탁이다. 해외파 중 공격수 자리에는 신태용 감독의 강한 신뢰를 받고 있었던 황희찬이 존재했지만 부상으로 이번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새로운 얼굴들이 뽑히게 됐다. 두 선수 모두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부터 꾸준히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들이기에 발탁 자체가 어색하지는 않다.

지난 여름 성남FC에서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 황의조는 비교적 빠르게 일본 무대에 적응하고 있다. 데뷔전에 곧장 득점을 터뜨렸던 황의조는 2달여 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 주말 기습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리그 2호골을 신고했다.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고 심심치 않게 득점도 터뜨리고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면 지동원의 대표팀 발탁은 논란이 되고 있다. 구자철과 함께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의 지동원은 올 시즌 경기 출장 숫자가 '0'인 선수다. 어느덧 분데스리가에서만 5년 이상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 공격수지만 이번 시즌 팀의 전술에서 완전히 배제된 모양새다. 리그 전 경기 출장이라는 뜻 깊은 기록을 세웠던 지난 시즌과는 정반대의 출발이다. 아직 리그 초반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기회를 부여 받겠지만 지동원 없이도 아우크스부르크 공격진이 잘 굴러가고 있단 점은 지동원 개인에게는 악재다.

지동원은 현재 소속팀에서 아무런 기회도 잡지 못하고 있단 사실과 더불어 최근 출장한 A매치 경기에서 매번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던 점이 더해져 선발되었단 사실만으로 크게 비판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동원과 마찬가지로 소속팀에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는 석현준은 무슨 이유로 뽑지 않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 신태용 감독은 "(석현준과 다르게) 지동원은 차두리 코치가 직접 현지에서 컨디션을 체크했다. 경기에는 못 나가고 있지만 꼭 써 보고 싶다"며 석현준 대신 지동원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드러나지만 지동원은 신태용 감독이 선호하는 유형의 공격수다.

지동원은 상당히 다재다능한 공격수다. 큰 키에도 유연함을 갖췄고, 양 발을 두루 잘 사용하며 강력한 슈팅도 구사한다. 여러 가지 강점을 동시에 보유한 최전방 공격수를 기용해 2선 자원들의 공격력을 극대화 시키는 신태용 감독의 공격 전술에 안성맞춤인 선수다. 신태용 감독은 연령별 감독 시절부터 황희찬, 조영욱 등 2선 자원과 연계가 좋은 공격수를 중용했다.

황의조의 발탁도 이러한 신태용 감독의 성향이 이번 대표팀에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황의조도 지동원과 마찬가지로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을 정도의 멀티 자원이다. 지동원과 플레이 스타일은 차이가 있지만 공격수로서의 다수의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문제는 사실 두 선수의 경기 스타일이 아니다. 바로 그들의 '득점력'이다. 특히 지동원의 득점력에 많은 이들이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만 34경기에 출장했지만 지동원이 터뜨린 득점은 고작 4골이다. 이번 시즌 시작 전 아우크스부르크가 지동원을 대체할 공격수를 다수 영입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황의조 또한 K리그를 강타했던 2015 시즌을 제외하고는 득점 기록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에게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신태용 감독에게는 본인의 공격 전술을 상징하는 지동원과 황의조의 활약 여부가 중요해진 10월의 2연전이다.

'김민재 파트너' 경쟁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졌던 최종 예선 경기에서 신태용 감독이 거둔 최대 수확물은 단연 '괴물 신인' 김민재(전북 현대)다. 올 시즌 성인 무대에 데뷔했음에도 전북에서 단숨에 주전 수비수로서 낙점을 받은 김민재는 국가대표팀 데뷔전부터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답답했던 경기에서 유일한 희망으로 평가받았다. 중앙 수비수 자리를 놓고 월드컵 전까지 대표팀 내에서 경쟁이 지속되겠지만, 현 흐름 상으로는 김민재가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이제 최대 격전지는 김민재의 파트너 자리다. 경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언론과 팬들이 김민재에게 가장 걱정했던 '경험'의 문제를 지난 두 번의 A매기 경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신인인 김민재 옆에는 베테랑 수비수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완전히 부숴졌다. 경기 종료 후 신태용 감독이 "오히려 김영권이 김민재에게 기댔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김민재는 믿음직한 수비수가 되었다.

김민재의 파트너로 중용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김영권이다. 일단 김영권은 지난 최종 예선 경기에서 주장직을 역임했을 정도로 신태용 감독의 신뢰가 두텁다. 중압감 높은 경기에서 김민재와 발을 맞춰 봤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또한 플레이 스타일도 조합적인 측면에서 김민재와 어울린다. 김민재가 '파이터' 유형의 수비수라면 김영권은 '리딩형' 유형의 수비수다. 파이터형-리딩형 수비수 조합은 많은 팀들이 중앙 수비수 라인을 구성할 때 선택하는 조합이다.

다만 김영권이 이란·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그다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최대 강점인 발을 활용한 공격 전개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비력 자체는 불안했다. 특히 이란과 경기에서 결정적인 패스 미스 혹은 터치 실수로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여기에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도 되짚어 볼 만 하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A대표팀의 중앙 수비수 조합은 김영권-홍정호였다. 두 선수 모두 '파이터'보다는 '리딩형'에 가까운 선수였는데, 본선에서 맞이한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내기에 두 선수 모두 힘이 부족했다. 본선 무대에서 한국은 부정할 수 없는 약체다. 공격을 주도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빌드업'에 능한 수비수보다 '수비력' 자체가 좋은 선수가 필요했음이 2014년의 실패로 증명됐다.

때문에 송주훈(알비렉스 니카타)는 이번 명단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다. 이번 발표로 생애 첫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된 송주훈은 잊혀진 신태용호의 '황태자'다. 송주훈은 신태용 감독이 올림픽 대표 감독 시절 주장으로서 활약한 경험이 있다. 신태용 감독이 수비의 핵이자 팀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선수지만, 올림픽 본선 직전 당한 부상으로 대회에 같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송주훈은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김영권과 다른 스타일이기에 눈 여겨 볼 만 하다. 190cm의 키에서 나오는 제공권이 최대 강점인 송주훈은 투지있게 상대의 공을 낚아챈다. 신태용 감독도 "우리나라 다른 수비수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신체조건과 와일드함을 갖췄다"라고 평가했다. 스타일상 김민재와 겹치지만 앞서 말했듯이 수비수에게 가장 중요한 수비력만 이번 A매치를 통해 증명한다면 김민재-송주훈으로 이어지는 '투사형' 수비수 조합도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김민재가 오른발잡이인 반면 송주훈이 왼발잡이인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중앙 수비수 경쟁이 원점으로 돌아왔기에 이번 평가전을 통해 권경원, 김주영 등의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단단한 중앙 수비수 없이는 월드컵 본선에서 참패를 경험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됐다. 김민재 파트너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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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명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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