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방송 파업을 위해 KBS 새노조가 다시 깃발을 들었습니다. 'RESET KBS!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습니다!' KBS 구성원들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고대영 사장 퇴진과 무소불위의 KBS 이사회를 향한 싸움. 이번에는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KBS 구성원들이 직접 시청자 여러분에게 전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서 연속으로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들의 꾸준한 싸움을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글은 2012년 KBS 새노조에서 파업 특보를 제작하다 '근무질서 문란' 혐의로 징계를 받은 KBS 이철호 기자의 글입니다.

KBS기자협회 제작거부 돌입 KBS기자협회가 28일 오전 여의도 KBS신관앞에서 “공영방송의 근간인 신뢰도와 공정성이 처참히 무너져, 많은 시민들이 KBS뉴스를 믿지 않게 되었다’며 고대영 사장 퇴진, 이사회 해체 등을 요구하며 제작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기자협회가 8월 28일 오전 여의도 KBS신관앞에서 “공영방송의 근간인 신뢰도와 공정성이 처참히 무너져, 많은 시민들이 KBS뉴스를 믿지 않게 되었다’며 고대영 사장 퇴진, 이사회 해체 등을 요구하며 제작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보도국 내 자리 뒤에는 TV 모니터들이 놓여 있었다. A 간부는 내게 다가와 "철호야, 네 형이 TV에 나온다"며 말을 걸었다. 무녀독남 외아들인 내게 형이라니. "예?"하고 반문하니 A는 '씩' 웃더니 뭔가 깨달은 듯 "아! 형이 아니라 동생이구나"라고 말하며 웃었다. 박장대소라기 보다는 낄낄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TV에서 북한 김정은이 나오고 있었다. 나를 김정은의 형이라고 조롱한 건 아마 '친북 좌빨'이라는 뜻일 게다. A는 지금도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1984년 생인 김정은이 1975년 생인 나보다 동생이긴 하다. '75년 생 이철호'는 어쩌다 북조선 로열패밀리의 일원이 됐을까. 

참 대단했던 KBS, 그러나

2006년 2월 7일 국회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세계일보> 열린우리당 말진이었던 나는 점심시간에 여의도 KBS본관을 찾았다. KBS 경력기자 공채 최종 면접날이었다. 그리고 3월 1일 입사했다. 정연주 사장이 처음 도입한 '경력기자 1기'였다.

KBS 기자가 되면서 월급도, 영향력도 늘었다. 이듬해 사건팀 마포1진으로 '신정아 게이트'를 담당했다. 명색이 청와대 서열 3위 변양균 정책실장이 연루됐지만 보도 과정에서 아무런 간섭이나 검열이 없었다. 다음 부서였던 <미디어포커스>는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동종업계는 물론 KBS 비판도 가능했다. "KBS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KBS가 대단해서였기보다 정권이 언론을 그냥 내버려뒀던 시절이었다. 

2008년 8월 8일 이철성 영등포경찰서장(현 경찰청장)이 사복경찰과 함께 KBS에 난입했다. 그날 KBS이사회는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 그리고 이병순 사장이 취임했다.

 KBS <미디어포커스>가 2008년 11월 15일 폐지됐다. 정권에 비판적인 <미디어포커스>의 폐지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 신호탄이었다.

KBS <미디어포커스>가 2008년 11월 15일 폐지됐다. 정권에 비판적인 <미디어포커스>의 폐지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 신호탄이었다. ⓒ 미디어몽구


<미디어포커스>에서는 우선 데스크가 교체됐다. 그리고 원고 승인 시간이 길어졌다. 예전에는 데스크 선에서 원고를 보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데스크가 본 원고를 그 위의 간부가 다시 봤다. '수정', '삭제' 지시가 반복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을 비판하는 아이템('논란 부른 노변담화 정례화')을 준비할 때였다. 원고 수정과 삭제 지시가 수없이 반복됐다. 데스크는 자정 무렵 복도에서 한숨 섞인 담배를 피며 "흉통이 온다"고 토로했다.

'이명박OUT'이라고 적힌 손팻말이 나오는 영상은 대체해야 했다. '유인촌 장관의 막말'은 "유 장관의 품위가 손상될만한 민감한 내용들은 빼라"는 지시 속에 무뎌졌다. 그리고 2008년 11월 15일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미디어포커스>는 폐지됐다.

두 번의 징계

2008년 9월 8일 고대영은 보도총괄팀장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고대영 팀장은 나를 포함해 <미디어포커스> 폐지를 반대하던 평기자들을 "지방으로 유배시키겠다"며 겁박했다. 고대영 팀장이 술집에서 <미디어포커스> 폐지에 반대하던 후배 기자들의 멱살을 잡았을 때가 그 즈음이다. 조직개편으로 고대영 보도총괄팀장이 보도국장이 된 직후 용산참사가 발생했다. 유독 철거민의 폭력성이 부각됐다. '노무현 서거' 국면을 거치며 80년대 이후 처음으로 KBS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기자협회는 고대영 보도국장과 김종률 보도본부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결의했다.

투표 참가자의 93.4%가 고대영 보도국장을 불신임했다. 이 신임 투표에 대한 징계에 내가 포함됐다. 신임투표를 막으려던 당시 기자협회장이 '사퇴'를 선언하고 '잠수'를 탔기 때문이었다. 투표 진행 주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비상운영위원회가 꾸려져 투개표가 진행됐는데 회사는 당시 10년 차도 안 된 평기자 3명을 징계(경고 및 시말서)했다. 왜 우리였을까. 그건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당시 기자협회 사무실을 비추던 CCTV 확인을 통해 개표 당시 협회 사무실을 들락거렸던 기자들 중 일부를 추렸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인사위원회 회부 요청 문서

인사위원회 회부 요청 문서 ⓒ 이철호


2009년 가을 결혼을 앞두고 집을 보러 다니던 중이었다. 노고산동 일대를 둘러보던 중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지역 발령이 날 것 같다." KBS에서 지역 순환 근무는 신입 직원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일종의 징병제와 같다. 그래서 경력기자들은 입사 직후 "우리는 어떻게 적용되는 건지" 회사에 문의했다. 회사는 경력기자 자체가 전례 없는 제도이다 보니 "원하는 사람은 지역 근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지역 발령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11월 28일 결혼식이었는데 11월 1일 충주로 갔다. 같은 날 내려간 동기 기자는 11월 27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통상 3월에 인사 이동을 내는 걸 미루어 봤을 때도 갑작스럽고 이상한 지역 발령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회사에 '똥칠'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방노동위원회에 경고 징계 관련 '부당징계 구제'를 신청했다. 지금의 새노조도 없던 시절이었다. 노동위원회 사건 신청서 샘플을 구해 직접 신청서류를 작성했다. 쟁점은 역시나 "왜 이들 3명이 징계 대상인가?"였다. 고대영 팀장은 중노위에 직접 "(10년 차도 안 된) 3인이 투개표에 적극 가담"했다며 진술서를 제출했다.

끝내 징계를 받았던 기자들은 지노위에서도 중노위에서도 졌다. 사측은 창조컨설팅이 사건을 대리했다. 나중에 창조컨설팅 내부자로부터 "논리로는 이길 수 없었다. 정직 감봉 수준의 중징계가 아니어서 겨우 이겼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창조컨설팅 심종두 대표는 2011년 KBS 창사 기념일에 "노사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하여 KBS 노사 관계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며 김인규 사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고대영 진술서

고대영 진술서 ⓒ 이철호


1년 지역 근무를 마치고 다시 사회2부 사건팀으로 발령났다. 사건팀 회식 자리에 승진해 '보도본부장'이 된 고대영 사장이 나타났다. 만취한 상태에서 나를 부르더니 "지난날의 앙금은 잊자"고 말했다.

하지만 고대영 보도본부장이 싫어 그가 있는 보도본부를 벗어나 PD조직인 제작본부에 자원했다. <생생정보통>에 '시선 600'이라는 시사 코너가 있던 시절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아이템을 방송했다. 당시 길환영 제작본부장이 담당 CP에게 전화해 불같이 화를 냈다. "고려대를 죽일 일 있냐." 길환영은 고려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그래도 당시 제작본부는 보도본부보다 제작 자율성이 있었다. <뉴스타파>로 간 김경래 기자, 현 새노조 중앙위원인 최광호 기자 등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홍대 청소노동자' 등 보도본부에서는 하기 힘든 아이템들을 방송하며 청량감을 맛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코너는 폐지됐고, <생생정보통>은 외주제작국으로 넘어갔다.

2012년 95일 파업 때 노조 편집국장으로 파업특보를 만들었다는 혐의로 정직 1월의 두 번째 징계를 받았다. "김정은의 형"이라는 조롱은 받았을지언정 MBC처럼 완전히 취재 현장에서 배제되지는 않았다. 서울시와 경인방송센터처럼 출입처가 있는 취재기자 생활도 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박원순을 비난하는 데 혈안이 됐던 간부들과 다툴 일이 적지 않았다. "이인호 이사장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경인여대 이승만 석상 아이템을 촬영하고 있는 도중에 제작 중단 지시를 받은 적도 있다.

퇴진 요구 받는 KBS 고대영 사장 고대영 KBS사장이 1일 오후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제54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자, KBS노조원들이 “고대영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퇴진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대영 KBS사장이 1일 오후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제54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자, KBS노조원들이 “고대영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퇴진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고대영과 적폐들'의 놀이터 된 KBS, 더는 안 된다

정권의 폭압만큼 혐오스러웠던 건 9년 간 승진을 거듭해 온 고대영 사장을 단물을 빨며 추종해 온 KBS 간부들의 수준이었다. 지난해 촛불정국 당시 어버이연합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을 기사화 하려는 후배에게 한 간부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폭력 사례를 찾아오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쌍용차 아이템을 발제한 기자는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궤변을 들어야 했다.

'박정희 군부독재', '5.16 쿠데타', '이승만 독재정권'이라는 단어들은 데스킹 과정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무슨 민변, 북변(北辯)이지"라고 조롱한 간부, "교사 월급은 교장이 주는 것 아니냐"는 간부는 차라리 사회적 해악이 덜하다고 해야 하나.

국장까지 지낸 한 KBS인은 7일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노무현 정권 때 굉장히 많은 기자와 PD를 뽑았는데 (이들이) KBS의 DNA와 피를 바꾼 것"이라며 "과거 진보정권 10년에 심어둔 숙주가 만개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거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형'은 어느새 '좌파 숙주'까지 돼버렸다.

KBS 노조 총파업 “고대영은 물러나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해 고대영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해 고대영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영화 <공범자들>을 본 일반인들은 "언론인들이 9년 간 침묵하지 않고 싸웠다는 사실을 알 게 됐다"라고 말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9년 동안 우리의 싸움은 다른 현장의 싸움보다는 비교적 덜 공포스러웠다. 유성기업에서처럼 용역의 폭행도 없었고, 쌍용차 평택공장에서처럼 테이저건도 없었다. 백남기 농민이나 용산 남일당에서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에 비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언론계 내부만 놓고 봐도 해고자들이 나온 MBC에 비해 덜 파괴됐다.

그러나 '고대영과 적폐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KBS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어느 새 파업 한 달. 파업 참가자들을 막기 위해 사측이 본관에 불법 설치한 철문에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집회 장소를 봉쇄하려는 사측의 불법 행위에는 근로감독관의 시정 지시가 내려지고 있다. 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 그동안 투쟁에 소극적이었던 동료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있다. 지난 9년 어느 때보다 나아진 여건이다. 그런만큼 이번 파업은 더 질겨야 할 것이다.  

 25일 언론노조 KBS 본부 총파업 집회 중 이철호 기자의 모습.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25일 언론노조 KBS 본부 총파업 집회 중 이철호 기자의 모습.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 KBS기자협회


* 이철호 KBS 기자는 지난 2006년 3월 KBS 경력 기자로 입사해 시사보도팀 <미디어포커스>에서 일했으나 <미디어포커스>가 폐지된 후 <시사기획 쌈>으로 옮겼다. 이후 2009년 근무질서 문란 혐의로 인사위원회 회부됐다. 그는 2012년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편집국장을 지냈고 다시 파업 특보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근무질서 문란 혐의로 인사위원회 회부돼 정직 1개월 징계을 받았다. 현재 2016년 11월 '통합뉴스룸 디지털'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게인 KBS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공정방송 수신료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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