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가 생애 첫 프로 1군 무대를 누볐다. 출전 시간은 21분밖에 안 됐고, 팀의 패배도 막지 못했지만, 자신의 데뷔전을 손꼽아 기다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번뜩임'을 보여줬다.

헬라스 베로나가 24일 오후 10시(한국 시각) 이탈리아 베로나에 위치한 마르크 안토니오 벤테고디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6라운드 라치오와 홈경기에서 0-3으로 패배했다. 이로써 베로나는 시즌 첫 승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고, 19위로 추락하며 험난한 여정을 이어갔다.

해결책이 안 보이는 베로나

베로나는 개막전이었던 나폴리와 홈경기에서 페널티킥 득점을 터뜨린 이후 5경기째 골이 없다. 올 시즌 유일한 득점자 지암파올로 파찌니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정확도가 '0'에 수렴하는 크로스가 난무하고, 중원을 거치는 공격 전개도 찾아보기 어렵다. 마티아 발로티와 엔리코 베르조티, 알레시오 체르치와 모이스 킨 등이 공격에 투입되지만, 변화는 없다.

수비는 더 심각하다. 나폴리전 3실점을 시작으로 6경기에서 총 14골을 내줬다. 수비 조직력이 허술하고, 중원의 도움도 찾아볼 수 없다. 손쉽게 뒷공간을 내주고,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로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등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베로나는 홈경기였음에도 전반에만 2골을 내줬다. 전반 22분, 아담 마루시치의 빠른 돌파에 힘없이 무너지며, 치로 임모빌레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했다. 전반 40분에는 임모빌레의 예리한 볼 터치와 드리블에 속수무책 무너지며 추가골을 내줬다. 라치오는 후반 15분, 임모빌레의 패스를 마루시치가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하며 세 번째 골까지 터뜨렸다.

베로나는 후반 시작과 함께 킨과 체르치를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팀 전술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운영을 이어가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후방에서 길게 넘겨주지 않으면 중앙선 부근을 넘어서기도 어려웠고, 패스가 3번 이상 이어지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흐름을 바꾼 '21번' 이승우

답답함이 이어지자 파비오 페치아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후반 26분, 프로 1군 무대를 누벼본 적이 없던 이승우를 투입했다.

상대 진영을 향한 패스와 드리블 등 전진하는 데 애를 먹었던 베로나의 공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반 29분, 가벼운 몸놀림을 자랑하던 이승우는 마루시치의 반칙과 옐로카드를 유도했다. 5분 뒤에는 박스 밖으로 흘러나온 볼을 지체 없이 슈팅으로 연결해 득점을 노렸다. 긴장한 탓인지 슈팅이 높이 떴지만, 공격수라면 충분히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후반 36분, 이날 베로나의 공격 전개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나왔다. 이승우는 왼쪽 측면으로 빠르게 달려들어 볼을 잡아냈고, 수비수 2명 사이를 빠져나온 뒤 절묘한 칩샷 패스를 연결했다. 이를 박스 안쪽에 있던 마르코 포사티가 헤더로 떨궈줬고, 이승우는 재빨리 달려들어 낮고 빠른 크로스를 시도했다. 비록, 골문 앞에 있던 수비에 걸리며 슈팅까지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라치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유일한 공격 장면이었다.

이승우는 공격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에 자리했지만,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공격 전개 과정을 도맡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란 것이 눈에 띌 정도로 간결한 패스와 드리블, 빌드업 능력이 돋보였다. 체력적인 여유가 있었던 만큼 전방 압박과 수비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승우의 축구 인생, 이제 시작

대한민국 선수여서가 아니다. 이날 베로나 공격진 중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는 21분을 뛴 등번호 21번 이승우였다.

축구 통계 전문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베로나 공격진 중 이승우에게 가장 높은 평점(6.4점)을 부여했다. 선발 출전한 파찌니(5.8)와 발로티(6.0), 베르조티(6.0), 후반 시작과 함께 출전 기회를 잡은 킨(6.0)과 체르치(5.8) 모두 무기력한 모습을 유지했던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적극성'이었다. 이승우는 기존의 한국 선수들과 달랐다. 팀에 합류한 지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동료들과 끊임없이 대화했고, 큰 몸동작을 섞어가며 패스를 달라고 외쳤다. 공간을 찾아 들어가며 패스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승우는 21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22번이나 공을 잡았다. 풀타임을 소화한 파찌니(25번), 47분을 소화한 킨(21번)과 체르치(22번)와 비교하면, 이승우가 얼마나 영리한 움직임을 보여줬고, 얼마만큼의 신뢰를 얻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왜소한 체구와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물론, 너무나도 큰 기대는 금물이다. 데뷔전 21분간의 활약이 주전 자리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승우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공격수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득점에는 실패했다. 라치오의 승리가 확실했던 상황에서 그라운드에 들어선 만큼, 상대의 압박이나 수비 집중력이 최상이었다고 볼 수도 없다.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베로나에는 이승우의 스피드와 결정력을 살려줄 패스가 보이지 않는다. 전방으로 길게 넘겨주는 뻥축구와 부정확한 크로스만 눈에 띈다.

이승우는 세밀한 패스 축구를 토대로 성장한 만큼, 팀의 부진 탈출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대 장기인 드리블을 통해 팀 득점을 늘릴 수 있도록 헌신해야 한다. 자신이 돋보이는 것도 좋지만, 한 차원 높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승우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자신감을 잃지 않길. 데뷔전 활약상과 여론의 칭찬에 만족하기보다 '6경기 1득점', 빈약한 팀 공격력 해결을 위해 훈련에 매진하길. 19세 소년 이승우의 축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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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헬라스 베로나VS라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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