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리그 종료를 불과 9일 남겨둔 상황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가 나란히 공동선두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두산은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 위즈와의  6-4로 역전승하며 최근 6연승을 내달렸다. 반면 기아는 같은날 홈구장인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한화에 무기력하게 0-5로 영봉패를 당했다. 두산은 82승 3무 55패,  기아는 82승 1무 55패를 기록하며 승률 0.599로 동률을 이루게 됐다.

기아는 4월 중순 처음 선두에 등극한 이래, 6월 중순 잠시 NC 다이노스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단독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기아가 공동선두를 허용한 것은 6월 28일 이후 88일 만이다.

반면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두산은 후반기에 고공비행을 거듭하며 한국시리즈 2연패에 빛나는 디펜딩챔피언의 위용을 회복했다. 지난 7월 13일 전반기가 종료됐을 당시 1위 기아는 2위 NC에 8게임차이로 앞서있었고 5위에 그쳤던 두산과의 승차는 무려 13게임차나 됐다. 당시만 해도 두산은 1위 경쟁은 고사하고 포스트시즌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후반기에 접어들며 양팀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반기까지 57승 28패(승률 0.671)를 기록하며 독주체제를 굳히는 듯 했던 기아는 후반기 25승 27패로 승률에 5할에도 못미치며 역주행했다. 이틈에 두산은 40승2무 16패(0.714)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빠르게 기아와의 격차를 따라잡았다. 당연히 후반기 10개 구단 전체 1위이자, 승률만 놓고 보면 전반기의 기아마저도 뛰어넘는 페이스다. 후반기 시작한 이후 불과 2개월 여만에 벌어진 반전이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뒷심이 강했다. 전신인 OB시절 1995년에도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역전 1위에 성공하는 기적을 연출한 바 있다. 당시 8월 말까지 1위 LG에 6경기 차이로 뒤져있던 OB는 이후 20승 7패 승률 .741의 고공비행을 기록하며 거짓말같은 역전극을 일궈냈다.

당시 LG는 올해의 기아와 달리 9월에도 5할 이상의 승률을 꾸준히 유지한데다 OB와의 상대전적에서 크게 앞서있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경기수가 적었던 탓에 누구도 역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력의 OB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서 승리하면서 LG를 최종 반게임차이로 따돌리고 극적으로 1위를 확정지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OB는 플레이오프에서 LG를 무너뜨리고 올라온 롯데를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꺾고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모든 면에서 올해 두산의 행보 22년전의 '미라클 1995'를 떠올리게 한다.

기아는 역주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2011년과 2013년에도 초중반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급속도로 추락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그나마 이전에는 시즌 초반 반짝 1위였거나 경쟁팀과의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올시즌에는 무려 120일 넘게 단독 1위를 달리다가 10게임 차이를 지키지못하고 막판에 역전을 허용한다면 그야말로 구단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재앙이 아닐수 없다. 단순히 정규시즌 1위라는 자존심 문제를 떠나 포스트시즌에서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기아는 마지막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의 기억을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도 기아는 선두를 달리다가 막판 SK가 파죽의 19연승을 질주하며 위기를 맞이한 바 있다. 올해와 다른 점이라면 당시에는 기아 역시 시즌 막바지까지 월별 승률 6할대를 넘기며 선전했기 때문에 SK를 단 1게임차이로 제치고 1위를 수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다시 만난 SK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통산 10번째 정상에 올랐다. 만일 기아가 1위 수성에 실패했다면 한국시리즈 우승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95년 LG'의 재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아로서는 두산을 따돌리고 정규시즌 1위를 지키는 것은 사실상 '미리 시작한 한국시리즈'만큼의 의미나 마찬가지다.

현재 두산은 4경기, 기아는 6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산술적으로는 2경기를 더 남긴 기아가 조금 더 유리하다. 하지만 최근 기세는 두산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두산은 각각 KT-LG-한화-SK 순으로 1경기씩을 남겨두고 있다. 기아는 LG와 1경기, 한화와 2연전, kt와 3연전을 남겨놓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가을야구가 사실상 멀어진 하위권팀들의 대결이 많다는 점에서 과연 어느 팀이 1위 경쟁의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두산은 27일 수요일 kt전을 시작으로 연전없이 계속해서 하루 휴식 이후 경기를 치르는 '퐁당퐁당' 일정이다. 투수진의 체력을 안배하며 전력을 쏟아붓기에 훨신 유리하다. 반면 기아는 2연전과 3연전이 각각 한번씩 있는데다 LG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5경기가 모두 원정이다. 기아는 시즌 내내 꾸준하던 간판타자 최형우가 9월들어 슬럼프에 빠진데다 원투펀치 헥터와 양현종을 내고도 잇달아 승리를 놓치면서 위축된 팀분위기를 수습하는게 급선무다.

이미 두산은 기아와의 상대 전적에서도 8승 1무 7패로 우위를 확정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유리한 입장이다. 두산은 시즌 중반까지 중위권을 맴돌다가 어느덧 공동선두까지 치고올라오만큼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잘했다.'는 여유가 있는데 비하여, 크게 앞서다가 따라잡힌 기아 입장에서는 1위를 놓칠 경우 '한 시즌 농사를 막바지에 망쳤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훨씬 크다는게 경기력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기세와 경험'에서 앞선 두산의 선두 등극 가능성이 좀더 높아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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