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방인> 무대

연극 <이방인> 무대 ⓒ 조은미


중앙에 관이 놓여 있다. 관을 둘러서 둥근 원 모양으로 벽이 쳐 있다. 관은 오늘, 아니 어쩌면 어제 죽은 엄마의 관이다.

알베르 카뮈를 세상에 알린 소설 '이방인'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식,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상중에 즐기는 애인과의 데이트, 바다에서의 수영,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 태양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뫼르소,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그, 수감되고 재판을 받아 배심원들의 만장일치로 사형선고를 받는 남자…

이방인이었던 알베르 까뮈, 그가 쓴 소설 '이방인'

 알베르 까뮈 소설 <이방인>

알베르 까뮈 소설 <이방인> ⓒ 민음사


알베르 카뮈는 1913년 농장 노동자의 아들로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이국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재능이 눈에 띄어 대학에 갈 기회를 얻게 되고 또 장 그르니에를 만나 작가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성취를 이루지만, 그의 삶의 궤적 자체가 이방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까뮈는 프랑스인인 동시에 알제리인이었으므로 이는 결국 어느 한 사회에도 완전히 편입될 수 없는 정체성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는 알제리 독립 과정에서 알제리와 프랑스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지성인 중 하나였다.)

'이방인'에서의 세 번의 죽음이 등장한다. 엄마의 장례식, 아랍인 살해, 그리고 뫼르소의 사형이 그것이다. 순차적으로 벌어지는 이 세 죽음은 서로 연결된다. 주인공 뫼르소가 이웃들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계기가 바로 이 엄마의 장례식이다. 뫼르소는 관을 열어 엄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려고도 하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으며 수위가 주는 밀크커피를 마시고 겨우 장례식에 참석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서는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 양로원 원장이나 수위, 이웃 사람들은 뫼르소에게 조의를 표했을 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를 잃은 아들 같지 않은 그의 반응에 놀라고 불편해한다.

당연히 어떠한 행동을 하리라는 통념적, 관습적 기대에 뫼르소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의 욕구와 감각, 본능적 필요는 충실히 따르지만, 남들이 기대하는 의례적인 말과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애인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흔한 사랑의 말도 하지 않으며, 엄마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냉소적 태도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자명한 노릇이다.

더운 날씨에 치러야 했던 장례식,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 뫼르소는 자신의 실존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런 관행들을 그를 옥죄는 태양으로 환유하고 있다.

"내가 엄마를 땅에 묻던 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때처럼 머리가 유난히 아프고 모든 혈관이 피부 아래서 동시에 뛰고 있었다."
"나는 바위 뒤의 서늘한 샘을 생각했다. 흐르는 물소리를 되찾고 싶었고, 태양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고 그늘과 평온을 되찾고 싶었다." (연극 <이방인> 대사 중)

이글거리며 그를 숨 막히게 하는 태양 아래서 그는 아랍인을 살해한다. 그리고 이 뉘우침 없는 살해로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까뮈는 미국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그에게 관례대로의 공식에 따라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그 점에 대해서 진정으로 뉘우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뉘앙스 때문에 그는 유죄선고를 받는다."

소설 속 뫼르소, 연극으로 만나다 

 연극 <이방인> 포스터

연극 <이방인> 포스터 ⓒ 산울림소극장


연극 <이방인>은 소설 속 뫼르소를 현실로 소환해준다. 배우들이 책의 문장들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 특히 뫼르소의 말들이 강렬하게 가슴에 꽂힌다. 뫼르소 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가 생생하게 책을 읽어주는 것 같다. 그의 낭랑한 육성은 관객들에게 뜨끔해지도록 던지는 질문과 같다. 한편 뫼르소는 무대의 원(울타리) 밖에 서 있고, 뫼르소를 아는 다른 인물들은 그들만의 원 안에서 뫼르소에 대하여 말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우리들은 관례를 따르지 않거나 통념적 행동을 하지 않는 '불순한' 타자에 대해 가차 없이 배격하고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가.

뫼르소는 그의 살인에 대해 처벌은 면치 못하더라도, 적어도 사형 선고는 면할 수도 있었다. 그가 뉘우치는 기색을 비쳤다면 말이다. 까뮈는 뫼르소의 선택이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았다. 연극에서는 졸렬한 이웃들에 맞선 그런 뫼르소의 '선택'과 항변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뫼르소는 죽음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연극 <이방인>은 산울림소극장에서 2017년 10월 1일까지 이어진다.

연극 이방인 알베르 까뮈 산울림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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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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