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16개 지역MBC는 서울MBC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등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MBC 잔혹사를 소개합니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도, 지역MBC에는 그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남게 됩니다. MBC가 완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지역MBC도 살아나야 합니다. '지역MBC 잔혹사'는 안동MBC 강병규 PD가 연재합니다.

지난 9월 5일 다섯 차례 소환에 불응해 오던 MBC 김장겸 사장은 엄마부대(대표 주옥순)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출석했다. 자신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에 대해 유례없는 언론탄압이라며 자유한국당의 국회 일정 보이콧 등에 기대어 숨어 있다가 결국은 포토라인 앞에 선 것이다.

수많은 언론의 질문에, 김장겸 사장은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을 어떻게 지킬까 고민이 많았다며 민주투사 코스프레를 했다. 그는 또 "취임 6개월밖에 안 된 사장이 정권 편에 선, 사실상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를 했겠는가?"라며 짧은 재임 기간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김장겸 MBC사장 “당당히 조사 받고 가겠다” 고용노동부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다섯 차례 소환에 불응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장겸 MBC 사장이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에 출석하고 있다.
김 사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공영방송의 수장으로서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어떻게 지킬까 요 며칠 고민이 많았다"며 "취임 6개월밖에 안된 사장이 정권의 편인, 사실상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무슨 부당 노동행위를 했겠나. 왔으니 당당히 조사받고 가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다섯 차례 소환에 불응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장겸 MBC 사장이 9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에 출석하고 있다. 김 사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공영방송의 수장으로서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어떻게 지킬까 요 며칠 고민이 많았다"며 "취임 6개월밖에 안된 사장이 정권의 편인, 사실상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무슨 부당 노동행위를 했겠나. 왔으니 당당히 조사받고 가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취임 6개월밖에 안 된 사장이라 책임 없다는 김장겸

정말 그의 말대로 김장겸 사장에게는 부당노동행위나 공영방송 파괴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사장 재임 기간이 아니라면 그 이전 본부장이나 국장 시절에는 정녕 깨끗하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불행히도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김장겸 사장의 초고속 승진은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지역MBC에서도 그의 악행은 예외가 아니었다. 공영방송 회복과 낙하산 철폐를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의 총파업을 시작하면서 노동조합 사무실의 책상에 있던 컴퓨터에서 발견한 파일에서 김장겸의 과거는 여실히 드러났다.

2009년 봄 MBC에는 한차례 광풍이 몰아쳤다. 4월 13일 당시 MBC 사장이었던 엄기영씨는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로 정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던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현 민주당 국회의원)를 하차시켰다. 신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MBC가 홈페이지에 따로 묶어 서비스까지 했을 정도로 MBC의 '히트 상품'이었지만, 끊기고 말았다.

"회사 결정에 따라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그동안의 제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쉽지만, 희망을 품을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 하겠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클로징 멘트였다.

 2009년 4월 MBC <뉴스데스크>를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신경민 앵커.

2009년 4월 MBC <뉴스데스크>를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신경민 앵커. ⓒ MBC


이에 앞선 2009년 4월 11일에는 전영배 당시 MBC 보도국장이 <뉴스투데이> 톱뉴스에 잡혀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기업인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수십억 전달 의혹 보도를 누락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뉴스데스크> 앵커 교체에 반발해 엄기영 사장 등 경영진에게 전영배 당시 보도국장, 송재종 당시 보도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엄기영 사장은 14일 "국장 보직사퇴 또는 국장 교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전영배 보도국장 역시 "회사와 상의 없이 혼자서 그만둬버리면 회사에 무책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사퇴에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 당시 김재철 전 MBC 사장의 측근으로 보도국장이었던 전영배 현 MBC C&I 사장은 지난 10일 검찰에 출석했다. MB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전담 수사팀이 전영배 사장을 소환한 것 역시 국정원 관계자와의 접촉과 의견 교환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 사무실에서 발견한 김장겸 사장의 과거

MBC 보도국 기자들은 이 두 사건에 반발해 제작 거부에 들어갔고 이로 인해 뉴스 시간은 단축됐고, 시사프로그램은 결방되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MBC 뉴스는 보도국 기자들과 전국 16개 지역 MBC의 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을 모두 취합한 후 데스크 과정을 거쳐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등 시간대별 뉴스에 편집되어 방송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정권의 압력에 굴복한 앵커 하차'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MBC 기자들이 제작 거부라는 강도 높은 투쟁을 벌여나가자, 지역 MBC의 기자들 역시 서울 뉴스 송고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역 MBC에서 취재한 뉴스의 서울 송고는 지역 데스크 즉 지역사 보도국 간부의 권한이기 때문에 지역 MBC에서는 평기자들이 아니라 간부들이 제작 거부에 동참한 꼴이 되었다.

서울 MBC 기자들의 제작 거부로 인해 취재의 절대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지역 MBC가 취재한 내용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뉴스의 분량을 채워줄 요긴한 기사였다. 하지만 지역 MBC까지 기사 송고를 거부하자, 뉴스 파행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MBC보도국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과 같은 부서 중 하나인 네트워크부가 있는데 네트워크부장은 지역MBC에서 송고된 기사들을 종합해 그날 뉴스에 편집해 넣는 역할을 하는 보도국 간부이다. 지역MBC의 기사 송고가 없어지니 속이 타는 것은 그 일을 담당하고 있던 네트워크 부장이었다. 네트워크 부장은 결국 도발을 감행했다.

MBC아나운서들 '침묵시위' 1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방송의 날 기념행사에 MBC 김장겸 사장,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KBS 고대영 사장을 비롯해 양대 방송사 노조와 언론단체들이 ‘언론부역자’로 지목한 이들이 다수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MBC아나운서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MBC아나운서들 '침묵시위' ⓒ 권우성


MBC의 방송 파행이 시작된 지 열흘 남짓 되던 2009년 4월 17일, 네트워크 부장이 지역 MBC 보도 데스크들에게 뿌린 메일이 노동조합 컴퓨터에 남아 있었다. 그 파일에서 당시 네트워크부장이었던 김장겸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역 MBC에서 취재한 기사 송고와 데스크 과정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지역MBC와 연락을 주고받던 네트워크부장은 기사송고 거부가 길어지자 인내를 접은 것이다.

"네트워크부장 김장겸입니다"로 시작된 메일은 "며칠간 본사에서 벌어진 파행으로 인해 계열사에게 까지 피해를 끼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며 매우 공손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글에는 불만 가득한 노기까지 묻어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한 말씀은 드려야겠다 싶어 올립니다"로 포문을 열었다. 노조가 파업을 하든, 기자들이 제작 거부를 하든 간부들까지 동참한 사례는 없었다며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회사를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 간부들에게 있었다면서 지역 MBC 보도국 데스크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그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를 언급했다. 정권의 압력에 굴해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던 앵커를 교체하고, 이명박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을 취재했던 기사를 편집에서 빼는 등 공영 언론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공정성을 무너뜨려 버린 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낱말은 아니었다. 이랬던 김 사장은 얼마 전 고용노동부 조사에 출석하며 민주투사인양 굴었다. 네트워크 부장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김장겸 네트워크부장은 서울의 보도국 데스크(간부)들은 비록 노동조합원이라도 파업이든 제작거부 때이든 전원 리포트를 했다며 서울 MBC와는 다르게 행동하던 지역 MBC의 보도국 간부들을 질타했다. "(지역 MBC의) 평기자들부터 간부들까지 일사불란하게 송고 거부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 계열사에서 올라온 노조 간부가 관여했음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일부 계열사 사장은 (노동조합) 눈치 보기로 일관했습니다"라며 "송고권을 가진 데스크까지 허위사실이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한 것은 유감입니다"는 강력한 항의와 협박을 쏟아놓았다.

네트워크 부장 김장겸은 끝으로 "편집 편성권의 독립,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한쪽으로는 이를 훼손하는 행동을 하는 현실에, 계열사 데스크들이 일사불란하게 동조한 현실이 씁쓸합니다"라며 마지막까지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전사인 양 글을 맺었다.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징계를 받은 MBC 김민식 PD. ⓒ 권우성


네트워크 부장→MBC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

네트워크부장이었던 김장겸은 그 후 2011년 2월 정치부장을 시작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사장에 이르기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정치부장 시절 각종 정치 이슈와 선거 관련 보도를 편파적으로 지휘했으며, 한미 FTA 반대 집회 보도를 누락하고, 장관 인사청문회 의혹을 축소하는 등 철저한 친정부적 행보를 보였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 논문 표절 의혹'을 아무런 검증 없이 날조해 보도한 사례는 MBC 사상 기념비적인 대형 오보로 기록됐다.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방송을 추구하는 정상적인 방송사라면 정치부장인 김장겸은 경질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권력의 시녀가 된 MBC는 오히려 2013년 봄에 김장겸을 보도국장으로 승진시켰다.

 MBC 김장겸 사장

MBC 김장겸 사장 ⓒ MBC


9월 2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으로 출근하던 김장겸 사장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항의에 "민주당 문건대로 잘 돼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되느냐. 왜 이리 조급한가"라며 조롱했다. 전방위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충성심이 초고속 승진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그런 김장겸은 네트워크부장 시절부터 지역 MBC를 서울의 방송 파행이 시작되면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대체품 정도로만 여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수평적 네트워크 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지역 MBC의 독립적인 경영이나 방송의 자율성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공영방송의 모든 것을 가져다 바친 그런 인물이었다.

김장겸, 그의 과거부터 지금까지가 이러했기 때문에 공영방송 회복과 지역 낙하산 철폐를 위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총파업 투쟁에 지역 MBC 조합원 800명도 함께 사력을 다해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 강병규PD는 1996년 안동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2005년~2007년까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직국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2012년은 MBC본부 안동지부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김재철 퇴진을 위한 총파업 당시 정직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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