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6-8-9-9-6-7-8' 최근 10년간 한화의 정규시즌 순위다. 한화는 올해도 가을야구 와 멀어지면서 2008년부터 이어온 포스트시즌(PS) 연속 탈락 기록을 10년으로 늘렸다. LG트윈스(2003~12년)와 타이 기록이다.

무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된 한화의 암흑기에는 단기적인 원인과 장기적인 원인이 혼재되어 있다. 일단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2015년부터 시작된 한화표 '갈락티코' 정책이 초라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한화는 2015시즌을 앞두고 승부사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 것을 비롯하여 FA(권혁·배영수·송은범·정우람·김태균)와 외국인 선수(로저스, 탈보트, 유먼, 오간도, 비야누에바, 로사리오)등을 영입하는데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며 이적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이름값있는 감독과 선수를 한꺼번에 영입하여 단숨에 전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었다. 특히 한화는 당시 승부사로 명성을 떨치던 김성근 감독에게 전폭적인 권한을 보장하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한화는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 지난 2년간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큰 손 효과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물론 일시적으로 중위권으로 반등하는 성과도 없지는 않았지만, 선수혹사와 잦은 부상, 비매너 야구, 라인업의 고령화같은 '김성근 야구'의 부작용이 잇달아 지적받으며 매일같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은 2017시즌 초반에도 팀성적이 9위로 추락하며 고전하다가 결국 계약기간 마지막해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사퇴했다. 한화는 이상군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소화했으나 41승 50패에 그쳤고 9경기를 남겨둔 현재 8위로 올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포스트시즌 탈락이 무려 10년이나 이어진 데는 역시 한화 구단이 자초한 업보라고 할수 있다. 사실 한화는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투자에 인색한 대표적인 구단으로 꼽혔다. 송진우-정민철-구대성-장종훈 등 빙그레 시절부터 90년대 한화의 전성기를 이끈 '황금세대'가 건재했을 때만 하더라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이들이 노쇠해가면서 한화의 부족한 유망주 인재풀과 인프라에 대한 위기감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한화는 선수 육성과 관리를 위하여 필수적인 2군 전용 시설이 2013년에야 마련됐다. 외부 영입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2010년대 이후의 일이다. 최근 10여년간 김태균과 류현진같은 몇몇 특급 선수를 제외하고 한화에서 내부적으로 육성하여 키워냈다고 할만한 주전급 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육성도 투자도 제대로 되지않으니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리가 만무했다.

앞으로 구단을 어떻게 끌고나가겠다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방향성도 보이지않았다. 대표적인 것인 감독 선임 문제만 봐도 알수 있다. 한화는 김인식 감독(2005-2009)을 시작으로 한대화(2010-2012), 김응용(2013-14), 김성근(2015-2017), 그리고 지금의 이상군 감독대행까지 여러 명의 지도자가 팀을 거쳤지만 번번이 가을야구 문턱을 밟는데 실패했다. KBO에서 나름 손꼽히던 명장들도 유독 한화에서는 쓴 맛을 보면서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오명도 남겼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모기업 수뇌부의 결정으로 영입한 인사였다는 사실이다. 야구에 대한 전문성이나 깊은 이해 없이 수뇌부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여론에 휘둘린 결정이 어떤 인사 참사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실제로 이들은 저마다 야구철학이나 리더십 스타일이 천차만별이었고 구단의 장기적인 비전을 연속성있게 공유한 인사도 아니었다. 그 결과 한화는 새로운 감독이 부임할때마다 리빌딩이나 세대교체가 원점으로 돌아가며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팀이 혼란을 겪어야했다.

한화가 그나마 젊은 선수 육성을 통한 리빌딩을 시도한 것은 한대화와 김응용 감독 시절 정도다. 하지만 한대화 감독 시절에는 김태균-이범호 등 당시 핵심전력의 유출을 막지못하며 제대로된 투자와 지원이 이뤄지지못했고, 김응용 감독은 우려한 대로 무려 9년이나 현장을 떠나있다가 복귀하면서 현대야구의 흐름이나 뒤처진 경기감각을 따라잡지못했다.

오히려 리빌딩이 조금씩 싹을 보이고 있던 2015년에는 당시 프런트의 반대를 무릅쓰고 혹사 논란과 성적지상주의로 악명높은 김성근 카드를 들고나오며 그간의 정책을 스스로 뒤집었다. 김성근 재임시기 한화는 팀 연봉 1위에 오를 만큼 인건비가 폭등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젊은 선수들의 외부 유출과 라인업의 고령화가 심각해졌고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거나 수술대에 올라야했다.

올시즌도 한화는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을 경질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단 유임시켰지만, 올시즌 박종훈 신임 단장을 중심으로 권한이 대폭 강화된 프런트와 시작부터 내내 불협화음을 빚으며 결국 두달만에 감독이 물러나는 파행을 거쳐야했다. 한화가 지난 몇 년간의 팀운영 방식을 실패로 규정했다면 애초에 감독교체를 포함한 확실한 새 판짜기에 나서야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혁신안으로 성적은 성적대로 놓치고 돈과 시간마저 덩달아 날려버리는 허무한 시즌을 또다시 자초하고 말았다. 이처럼 10년연속 PS탈락이라는 굴욕은 단순히 우연이나 불운이 아니라, '한화였기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화는 올시즌 이후 또다시 중요한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일단 후임 감독 인선 문제가 중요한 현안이다. 현 이상군 감독대행도 후보에 올라있지만 올시즌에 보여준 성과를 감안하면 좀더 참심하고 유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감독의 이름값이나 카리스마에 기대기보다는, 구단의 장기적인 전략과 방향성을 함께 공유해줄 수 있는 실무형 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음 시즌 전력 개편도 어려운 난제다. 고령화된 선수단의 연령대를 낮추고 세대교체가 시급하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정근우·이용규가 FA 자격을 재취득하는 가운데 적지않은 나이와 잦은 부상이 아쉽지만 현재 한화에 이들을 대체할만한 선수가 없어서 고심이 예상된다. 올겨울 FA 시장에서 황재균·민병헌·손아섭 등 수준급 선수들이 쏟아져나오는 것도 변수다. 외국인 선수는 2년간 최고의 활약을  펼친 로사리오의 재계약 여부와 함께 '이닝이터' 역할을 해줄수 있는 외국인 선발투수진의 보강이 시급하다.

한화는 만일 내년 시즌에도 가을야구에 탈락하게되면 LG의 기록을 뛰어넘어 11년연속 불명예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세대교체가 시급하기는 하지만 여론을 의식할 때 섣불리 성적보다 젊은 선수들을 키우는 리빌딩을  대놓고 논하기가 조심스러운 이유다. 지나간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걱정되는 한화의 현 주소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