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 김민식 PD, 죄갚는 심정으로... 김민식 MBC PD가 9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 이야기와 파업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범자들>은 <자백>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신작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다룬 기록영화다. 17일 개봉.

▲ '공범자들' 김민식 PD, 죄갚는 심정으로... 김민식 MBC PD가 9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 이야기와 파업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범자들>은 <자백>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신작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다룬 기록영화다. 17일 개봉. ⓒ 이정민


한때 '드라마 왕국'은 MBC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역대 드라마 시청률 TOP 10 중 무려 8편이 MBC 드라마일 정도다. 하지만 '드라마 왕국'의 지위는 이미 다른 채널에 뺏긴 지 오래. 드라마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tvN으로 넘어갔고, JTBC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 이유를 그저 '지상파 방송의 위기'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최근 국가정보기관이 지난 9년간 MBC를 '관리'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그 관리가 꽤 꼼꼼하고 세심해서,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이나 활동을 해온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이른바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기자·PD의 언론 활동을 방해했다고 한다. 그 '관리'의 범주에는 '정치'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예능·드라마까지 포함됐다.

그중에는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친 김민식 드라마 PD도 있었다. 김민식 PD는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의 집행부였다. 예능 PD 출신인 그는 MBC 노조원 300여 명이 참여한 'MBC 프리덤'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파업이 끝난 뒤, 그는 '징계 3종 세트(정직·대기 발령·교육 발령)'를 받고, TV 주조정실로 발령받았다. 그렇게 그는 드라마 연출 기회를 빼앗겼다.

박혜련 작가의 <너목들>, 워크숍까지 다녀왔지만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공식 포스터.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공식 포스터. ⓒ SBS



MBC는 김민식 PD에게 연출의 기회를 빼앗았고, 동시에 그가 연출할 뻔한 드라마들을 타 방송사에 뺏겼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방영 당시 29% 시청률을 기록했고, 주연 배우 이보영은 그해 SBS 연기대상, 코리아드라마어워즈 대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까지 휩쓸었다.

이 작품을 쓴 박혜련 작가는 MBC 가요프로그램인 <인기가요 베스트50>의 막내 작가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김민식 PD는 당시 이 프로그램의 신입 조연출이었다. 이 프로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후 <뉴논스톱> <논스톱3>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언젠가 함께 드라마를 만들 날을 꿈꿔왔다고 한다. 이후 박혜련 작가는 KBS 2TV <드림하이>를 통해 드라마 작가가 됐고, 김민식 PD는 드라마국으로 소속을 옮겨 <비포&애프터 성형외과> <내조의 여왕>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을 연출했다. 이들이 의기투합해 기획한 드라마가 당시에는 '대한민국 1% 변호사'라는 제목으로 불렸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였다.

2012년 파업이 끝난 가을. 당시 김민식 PD는 6개월 정직 중이었지만, 정직이 끝난 뒤에는 현업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해서 틈틈이 기획을 이어갔고, 박혜련 작가와 김민식 PD, 당시 기획팀 프로듀서와 박홍균 CP 등이 함께 1박 2일로 워크숍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이는 단지 '긍정 검토' 정도가 아니라, 실제 편성이 진지하게 논의 중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직이 끝난 김 PD는 다시 교육발령을 받았다. 굴욕적인 '브런치 만들기' 교육을 받으면서도 김민식 PD는 드라마 연출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기획은 좋지만, (노조 집행부였던) 김민식이 붙어있는 한 어렵다'고 했다.

김 PD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박혜련 작가는 나와의 의리 때문에 정직과 대기 발령을 모두 기다려줬다. 하지만 배우들 스케줄이 꼬였다. 배우 하나 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데, 몇 번이나 나 때문에 밀렸다. 나중엔 제작사에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만약 지금의 박혜련 작가라면, '김민식 PD와 하고 싶다'는 박 작가의 요청에 힘이 실렸겠지만, 당시 박혜련 작가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드라마 작가였다. 먼저 편성해주는 방송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김민식 PD가 스스로 손을 떼는 수밖에 없었다.

김 PD는 "무조건 되는 대본이라고 생각했고, 이 작품으로 박 작가가 '네임드' 반열에 올라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작가의 출세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김민식 PD "세상 바뀌지 않았다면..." 

 tvN <미생> 공식 포스터.

tvN <미생> 공식 포스터. ⓒ CJ E&M


'김민식 탄압'에 매몰돼 놓친 드라마에는 <미생>도 있다. 윤태호 작가와 개인적 친분이 있던 김 PD는 2013년 초, 윤 작가에게 <미생>의 드라마 제작을 제안했다. 윤 작가 역시 긍정적이었고, 김민식 PD는 사측에 <미생>의 판권을 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민식'이라는 이름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화제였던 <미생>의 작품성에도 눈을 가리게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생>은 tvN 드라마를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노조 집행부 출신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를 <뉴스데스크> 앞에 편성할 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일일 드라마 연출 기회를 빼앗기기도 했다. 김민식 PD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시 드라마 연출할 기대도 하지 못 했을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누군가는 '왜 그땐 잠자코 당하고 있다가 이제 와 이러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노조집행부로 일하던 동료들이 모두 해직된 상황에서, 어쨌든 MBC 안에 '살아 남은' 그가 자신의 상황을 쉽게 '부당하다' 외칠 수 있었을까?

물론 <너목들>이든 <미생>이든, 김민식 PD가 연출했을 때에도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작품 자체가 가진 힘이 대단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작품을 못 알아본 것도 '무능'이다.

여기에 문성근·김여진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좌파 배우'들의 출연 제재까지 꼼꼼하게 관리됐다는 문건까지 등장했다. 자율성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드라마국에서조차 '정치적 이유'의 블랙리스트가 맹위를 떨친 것이다. 이렇게 흔들린 드라마 왕국은 <뉴스데스크>의 몰락과 함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뉴스데스크> 시청률 견인에 동원된 일일드라마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뉴스데스크>의 공정성은 훼손됐고, 뉴스 경쟁력이 약화했다. 1%대로 주저앉은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을 견인하기 위해 동원된 것은 드라마였다. 뉴스 앞뒤로 일일 드라마를 샌드위치 편성한 것이다. 방송사에서 유례가 없는 편성이었다. 과거 일일 드라마가 시청률 '대박'을 치면, 연이어 방송되는 <뉴스데스크>의 시청률까지 함께 상승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겠지만, 자체 경쟁력도 없고 신뢰도까지 바닥인 <뉴스데스크>에 효과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뉴스 시청률을 견인하기는커녕, 망한 뉴스의 망한 시청률이 드라마로 옮겨갔다.

매일 방송되는 일일 드라마는 공력이 많이 들어 PD들이 굉장히 힘들어한다. 무엇보다 비슷한 흐름의 일일 드라마를 두 개나 운영하다 보니 배우 구하기도 어렵고, 작가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참신하고 새로운 드라마에 투자되어야 할 것들이 모두 일일 드라마로 넘어갔고, 눈앞 시청률만 좇느라 신인 드라마 작가·PD의 산실인 <베스트 극장>도 폐지했다. 자연히 창의적인 실험과 시도는 줄었고, 떨어지는 시청률을 잡기 위해 소재는 점점 막장으로 흘렀다. 이 악순환 속에 PD들의 불만과 피로도는 쌓여갔다.

"뉴스·시사가 무너진다는 건 그 방송국의 신뢰도가 무너진다는 거고, 내부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예전 MBC에는 '보도국 기자, 시사 PD들 돈 신경 쓰지 말고 공정 보도하고 회사 이미지 살려라. 돈은 예능·드라마가 벌어줄게'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단순하지만 이 구도 속에서 모두가 신나게 일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구조가 다 무너졌습니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무너지고 편파 보도하면서 스테이션 이미지가 붕괴됐고, 예능과 드라마에 대한 이미지도 나빠졌어요. 한마디로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거죠. 최근 5년간 드라마·예능 주력 인력의 절반 정도가 회사를 떠났습니다. 여기에는 미디어 시장의 변화라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PD들이 보람차게 일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에요. 경영진은 뉴스·시사에 소홀해도 예능·드라마가 있으면 스테이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결과적으로는 다 무너집니다."

지난 4월 <오마이뉴스>의 지상파 3사 노조위원장 방담에서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한 말이다.

김민식 PD 역시 "제일 화가 나는 건, 내가 미운 건 미운 거고, 드라마 편성이나 제작 결정은 작가나 기획 자체를 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채널 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소중한 자산이다. 공영방송 경영진에게 '무능'만큼 최악의 조건이 있을까? 지난 7년. MBC 경영진은 '무엇'을 위해 달려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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