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영화제가 문을 열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한국사회의 여성인권은 어디쯤 와 있을까요? 스크린에는 여성을 폭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연출한 영화가 범람합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채널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하나의 흥미로운 콘텐츠처럼 취급됩니다. 2017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생각보다 멀리 와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지금, 당신의 속도로'입니다. 여성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향해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분명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열하고 용기있는 도전을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만나보세요.

영화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ㅣ 감독 미카엘라 슈어

미국에 사는 1100만 명의 이민자들은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 그들은 서류미비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할 수 없다. 대다수는 강제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평생을 보낸다. 앤지 리베라도 그들 중 하나다. 그러나 그녀는 용감하게도 그녀의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공개한다.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 따르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발언할 권리는 우리의 생존과 존엄과 자유의 기본 조건이다." 즉, 발언할 공간, 경청될 공간, 권리를 지닐 공간, 참여할 공간, 존중받을 공간, 온전하고 자유로운 한 인간이 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점잖은 대화에서 권력이 표현되는 방식이다. 차별받는 사람들은 이러한 공간을 늘 박탈당한다. 침묵당하며, 살아있는 채로 그 존재가 자꾸만 지워진다. 그러나 여기, 그늘 속에 살아야 하는 불법 이민자의 신분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는 벽을 깨고 나온 앤지가 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에서 "이해받을 때까지 소리 지를 거예요"로의 변화를 만들어낸 그녀의 이야기가 있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여성인권영화제


"우린 두려움 속에 살며 투명인간이 되려고 애써요"

영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는 불법 이민자 앤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앤지의 엄마는 더 잘 살고 싶어서 앤지를 데리고 가난과 범죄의 땅 콜롬비아를 떠나 미국으로 왔다. 앤지의 가족은 "혼합 신분" 가족이다. 앤지의 엄마와 앤지는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불법' 이민자인 반면 앤지의 동생들은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살고 있지만, '불법'이라는 낙인은 그녀가 있어야 하는 곳에서 그녀를 내모는 것 같다.

'불법' 이민자는 이름 자체에 차별이 가득 들어차 있다. 불법이라는 것은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대로는 "undocumented" 서류미비자이지만, '불법'(ilegal)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한국에서는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민자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부른다. 한국에 체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현재 한국에 있는 것은 머무는 것뿐이지 거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법 이민자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일상적, 사회적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비빌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회보장번호를 받지 못하면 운전면허도 딸 수 없고 취업도 할 수 없으며 학교에서 아무리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앤지의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여성인권영화제


또한 불법 이민자들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없거나 자신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곳에서 계속 쫓겨나야 한다. 이민자들은 합법적인 경우 자신이 속한 사회에 동화되어야 하고, 불법인 경우 존재해서는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른 불법 이민자만 쫓아내겠다면서 모든 불법 이민자를 표적으로 삼고 경범죄라도 심하게 추궁하는 미국의 이야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에도 '불법 체류자'에 대한 차별적인 프레이밍은 계속 이루어져 왔다. '불법 체류자'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범죄자의 신분인 '불법 체류자'가 유독 두드러지게 보도되는 것도 그 예시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파견되어 온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앤지의 엄마가 앤지에게 아무에게도 불법 이민자임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불법 이민자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거나 아무에게도 말해서도, 말해져서도 안 되는 존재다.

이민자에게 가해지는 이중 억압

영화 속에서 앤지는 자신과 다른 불법 이민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앤지는 다른 불법 이민자들과 경험을 나누는 창을 만들었고, 많은 문제들을 듣고 처리하려고 한다. 이민자들이 처하는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일상적인 문제들부터 감정적 문제, 학대, 착취 등 그 범위가 넓다. 이민자이기 때문에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은, 이민자이면서 다른 소수자일 때 배가 된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성적 학대 경험을 이야기하는 앤지가 그렇듯이.

"학대와 폭력은 불법 이민자 사회에서 흔해요", 라고 앤지가 말했다. 불법 이민자 중 여성, 노숙자, 동성애자 등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불법 이민자들은 이민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원이 적은 데다가, 불법이라는 낙인 때문에 더 살기가 힘들다. 불법 이민자이면서 다른 사회적 층위에서 소수자일 때, 불법 이민이라는 신분과 사회적 소수자라는 정체성은 이중 억압이 된다. 이중 억압을 받는 이민자들은, 각종 폭력과 착취, 강간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 이미 목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받고 있는 몇 겹의 억압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렵다. 이렇게 불법 이민자 여성, 노숙자, 동성애자 등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이미 경계에 서 있는 삶이지만, 절벽 끝까지 몰리는 것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여성인권영화제


"소리칠 거예요, 그래야 들린다면"

더 이상 뒷걸음질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벼랑 끝에서, 앤지는 계속 싸웠다.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소리쳤다. "나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고 두렵지 않다"고,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생존자이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앤지는 다른 사람들과 경험과 고통을 나누면서 자신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들로 끌어안았고, 모두를 위해 싸웠다.

앤지의 목소리는 많은 불법 이민자들의 목소리들을 이끌어냈다. "투명인간"처럼 살면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앤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씨름하고 있고, 정책적인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앤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함칠 수 있게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에 조금 지쳤는가? 언제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시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가? 나 혼자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가? 이 세가지 질문 중 어느 하나라도 그렇다, 고 답했다면 앤지의 이야기를 꼭 감상할 것을 권한다. 고군분투하는 앤지와 함께 눈물 흘리며,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앤지의 말을 들으며, 앤지의 노력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위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작성 : 도경은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 본 기사는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 및 블로그에도 업로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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