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한 장면.  제목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동명 노래에서 따왔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한 장면. 제목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동명 노래에서 따왔다. ⓒ 소니픽쳐스


최근 국내에서 개봉했거나 개봉 예정인 두 편의 영화 제목이 필자의 눈길을 모은다. 

먼저 하나는 지난주 선보인 <뜨거운 녀석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 <베이비 드라이버>,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내달 극장에 걸릴 < 500일의 썸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마크 웹 감독의 <리빙보이 인 뉴욕>(원제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이다.

얼핏 보면 딱히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작품들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영화에도 사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둘 다 1970년작 < Bridge Over Troubled Water > 음반 수록곡이라는.

잘 알려진 대로 < Bridge Over Troubled Water >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면서 최고 히트작이다. 특히 동명 머릿곡을 비롯해서 'The Boxer', 페루 민요를 편곡한 'El Condor Pasa' 등은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사랑 받아왔다.

그런데 'Baby Driver',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은 앞서 언급한 인기곡들과는 달리 사이먼 앤 가펑클의 광팬이 아니라면 일반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작품들이다.

왜 하필 이 노래였을까?

['Baby Driver' 사이먼 앤 가펑클 공식 유튜브 오디오 클립]

천부적 이야기꾼, 폴 사이먼

 'Baby Driver',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이 수록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최고 걸작 음반 < Bridge Over Troubled Water >

'Baby Driver',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이 수록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최고 걸작 음반 < Bridge Over Troubled Water > ⓒ 소니뮤직코리아


그동안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선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Mr.Robinson', 'The Sound Of Silence', 'Scarborough Fair/ Canticle', 'April Come She Will' 등 주요 삽입곡들을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곡으로 채웠던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걸작 <졸업>을 비롯해서 <참을 수 없는 사랑> <가든 스테이트> <올모스트 페이머스> < 500일의 썸머> 등 그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많은 감독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 팀의 음악을 선택했을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좋은 노래들이라는 점이겠지만 그보다는 이 노래들이 담아낸 이야기들의 힘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그 중심에는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한 천재 싱어송라이터 폴 사이먼이 있다.  

지금까지도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는 폴은 포크 음악으로 출발해서 재즈, 록, 라틴, 아프리칸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으로 항상 대중들과 비평가들을 놀라게 만든 인물이었다. 훗날 발표한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1975년), 'Graceland'(1986년) 등은 그의 위대함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게다가 그는  빼어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작곡가일 뿐만 아니라 소설 이상의 내용을 3분여 짧은 시간 속에 담아내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사이먼 앤 가펑클 공식 유튜브 오디오 클립]


영화 친화적인 가사...극중 이야기에 영감 부여

 11월 국내 개봉 예정인 <리빙보이 인 뉴욕>.  역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마크 웹 감독의 신작이다

11월 국내 개봉 예정인 <리빙보이 인 뉴욕>. 역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마크 웹 감독의 신작이다 ⓒ ㈜더쿱


< Bridge Over Troubled Water > 수록곡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So Long, Frank Lloyd Wright' 등은 은유적으로 동료 아트 가펑클을 질타하는 내용을 담았다.(주: 정작 아트는 그 시절엔 가사의 의미를 몰랐었다고 할 만큼 나름 자신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담아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에게 영화의 영감을 줬다는 노래 가사 ("그들은 나를 '베이비 드라이버'라 불렀지. 바퀴가 땅에 닿기만 하면 나는 사라진다" They call me Baby Driver And once upon a pair of wheels Hit the road and I'm gone)는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파로 매일 북적이는 대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는 남녀들의 각양 각색 이야기를 담은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11월 한국 개봉 예정)도 가사의 힘에 일정 부분 의지한 모양새다.

< Bridge Over Troubled Water >를 녹음할 당시 아트 가펑클은 영화 촬영을 위해 자주 녹음 일정을 비우기 일쑤였고 홀로 스튜디오에 남은 폴 사이먼은 그때 느낀 감정을 이 곡의 가사로 녹여 냈다.

이야기 속 톰이 멕시코로 비행기 타고 떠난 내용은 1969년 무렵 아트의 멕시코 영화 촬영을 의미한 것이었고 톰(Tom)이라는 인물은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 이전 활동명인 톰 앤 제리(Tom and Jerry)의 톰=아트였다.

 영화 < 500일의 썸머> 중 한 장면.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 'Bookends'가 삽입되었다

영화 < 500일의 썸머> 중 한 장면.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 'Bookends'가 삽입되었다 ⓒ 팝엔터테인먼트


앞서 지난 2009년 마크 웹 감독은 자신의 출세작 < 500일의 썸머>를 위해 다양한 올드팝들을 적재적소에 사용,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인 사이지만 불안한 관계를 이어가는 톰(조셉 고든 레빗 분)-썸머(주이 디샤넬 분)가 극장문을 나설때 사용된 곡 역시 사이먼 앤 가펑클의 'Bookends'도 그 중 하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과연 훗날 우린 어떻게 될지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 이 곡의 가사는 상당 부분 톰-썸머의 훗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Old Friends/Bookends' 접속곡 공연 실황 - 사이먼 앤 가펑클 공식 유튜브 영상]

그런 점에서 폴 사이먼은 영화 감독 이상으로 다양한 사람, 집단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낸 능력자 중의 능력자가 아니었을까.  때론 명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 'The Sound Of Silence' 등의 존재감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수작들이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리빙보이 인 뉴욕> 등은 음악인 폴 사이먼을 다시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폴 사이먼의 히트곡 모음집 표지.  혹자는 그를 가리켜 '밥 딜런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인'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폴 사이먼의 히트곡 모음집 표지. 혹자는 그를 가리켜 '밥 딜런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인'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 소니뮤직코리아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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