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찬란하게 47년>을 발표한 방송인 홍석천이 2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찬란하게 47년>을 발표한 방송인 홍석천이 지난 6월 2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가끔 친구들은 나에게 묻는다. 동성애자인 나에게 홍석천은 어떤 의미냐고. 간단하게 답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가 커밍아웃을 한 2000년, 나는 남자들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동성애'라는 개념은 몰랐던 어린아이였다. 몇 년 후엔 나의 성적 지향을 깨닫고 내가 성 소수자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이 홍석천은 방송에서 쫓겨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가 드라마 <완전한 사랑>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을 때, 이를 계기로 그가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비추기를, 잘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후에 홍석천이 이태원에서 식당을 열었고, 사장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는 응원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당시 한 명의 친구를 제외하고 그는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대가 된 이후 그에 대한 내 생각도 점차 변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홍석천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그가 지금처럼 방송에도 자주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성 소수자 단체에 가입하고 많은 사람을 만난 이후로, 그는 내 인생에 유일한 게이는 아니게 되었다. 동성애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을 정도로 천차만별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할 때면 많은 경우 '아, 알아요. 홍석천 같은 거죠?'라는 말을 듣곤 했다. 어느 순간, 그는 대중에게 동성애자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성애자 남성들의 게이들에 대한 '과잉성애화'된 이미지를 거부하지 않고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그가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일상에서 만난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성애의 감정은커녕 두려움을 느낄 때가 훨씬 많다)

성 소수자인 나에게 홍석천의 존재가 주는 의미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찬란하게 47년>을 발표한 방송인 홍석천이 2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석천은 방송에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특정한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걸 단순히 홍석천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 이정민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그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책 <찬란하게 47년>의 출간과 함께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홍석천은 방송에서 요구하는 이미지가 있고, 자신은 그것에 맞춰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역시도 아쉬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자신은 연출자나 작가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고 그랬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방송은 거대한 사업이고, 그 속에서 개인이 만들 수 있는 변화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가 그런 시스템을 박차고 나가 다른 미디어 환경에서 대안을 찾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지만, 대중적인 채널에서 거의 유일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성 소수자 인사를 잃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누구도 그에게 투사의 역할을 강요할 수 없다.

어쨌든 홍석천에 대한 나의 감정은 또다시 변화를 겪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얼마 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여전히 용산구청장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홍석천을 지지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동시에 성 소수자가 선출직 공무원에 나서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 '악플'도 많았다. 심지어 '반동성애 운동'을 한다는 한 목사가 공개서한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하지만 홍석천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는 성 소수자 공직자가 되는 것보다, 지역 주민으로서 자신이 만들어 낸 비전을 실현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실제로 관련 내용의 대부분은 그가 이태원에서 사업을 하며 구상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성 소수자 연예인의 생존 방식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찬란하게 47년>을 발표한 방송인 홍석천이 2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게이'인 공직자와, '공직자'인 게이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정말로 홍석천이 용산구청장이 된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될까. ⓒ 이정민


말하자면 그는 '게이 공직자'이기보다는 '공직자인데 게이'인 사람으로 비치길 원한 것 같다.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실제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사망하다시피 한 한국 아닌가. 오랜 시간 그 공간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이 지역에 필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그리고 홍석천의 아이디어는 꽤나 괜찮았다. 사실 이는 홍석천이 오랜 시간 방송에서 생존해온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자 연예인'이지만 자신의 성 소수자 성을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표출했다. 그는 여성에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였고 이성애자 남성에겐 '적당한 긴장을 유발해 농담을 칠 수 있는 존재'였다. 성 소수자는 이성애 중심 체제와 끊임없는 불화를 일으키며 때문에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존재이기도 하지만 홍석천은 자신의 그러한 위치를 부각하지 않았다.

즉, 홍석천에게 그의 성적 지향은 하나의 개성으로 활용되었고 성 소수자들이 사회적이며 제도적인 문제를 겪는 정치적인 존재들임은 은근히 감춰졌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의 전략이 지닌 한계를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언급한 것처럼 홍석천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선다면 어떨까. 홍석천이 인터뷰처럼 선출직 공무원에 출마한다면 어떨까. 권김현영은 책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 수록된 글 '성적 차이는 대표될 수 있는가?'에서 여성 정치인 징표화의 문제를 다룬다. 글에 따르면 여성은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 여성 집단의 범주로 이해되기 때문에 대표로 출마하는 여성들은 특수하고도 예외적인 여성으로 취급되는 징표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언급된 것처럼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성차별이 사라진 상징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소수자가 대표자가 될 때 겪는 문제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공동행동 회원등 시민단체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옆 계단에서 성소수자 혐오 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공동행동 회원등 시민단체가 지난 5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옆 계단에서 성소수자 혐오 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딱 징표에만 머물러 기존의 규칙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을 때 발생한다. 이 경우 구조적인 차별은 그대로 남고 '최초의 여성'이 될 여성은 계속 최소한도로 좁혀진다. 그만큼 지위의 변화는 더욱 더뎌진다. 성 소수자와 여성이 점유한 사회적 위치나 처한 문제가 같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두 존재 모두 집단의 범주로 이해되는 점은 동일하다. (때문에 여성과 성 소수자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그들의 성별과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이 부각된다) 때문에 홍석천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그가 선거에 뛰어 든다면 사람들은 홍석천이 성 소수자임에 주목하고 그가 동성애자인 게 도마에 오를 것이다. 말하자면 홍석천은 정치의 장에서 '동성애자'의 대표나 성 소수자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징표가 여겨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그가 방송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아무런 불화를 만들지 않으며 관대한 존재로 남으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을 때, 게스트로 참석한 홍석천은 안 지사가 성 소수자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던 인터뷰를 언급하며 "나중에 표 계산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그걸 취소하셔도 돼요"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당혹스러웠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차별적인 시선을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자 민주사회를 사는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다. 계산해보고 불리하다 싶으면 취소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소수자 정치를 염원한다

'동성애 반대' 문재인 사과 촉구한 성소수자 기습시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4월 26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 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 남소연


또 홍석천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TV토론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한 후, 성 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이 직접 그를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도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가 대선 주자들도 자기 입장을 표명해야 할 만한 주요 이슈가 됐다는 정도에 만족한다고 이야기했다. 성 소수자가 아닌 정치인들이 이 정도의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도 단점이다. 하지만 홍석천의 경우엔 더 큰 문제가 된다. 물론 그가 정말 용산구청장 선거에 뛰어들고, 최초의 성 소수자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건 큰 진전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만으로 성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개개인이 처한 구조적 차별과 혐오는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용산구청장 홍석천'이 차별금지법이나 동성혼의 제도적 정착 등 성 소수자 인권 증진 정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람들은 노력해서 구청장까지 되는 동성애자도 있는 마당에 너희들은 왜 그렇게 불만이 많으냐며 성 소수자들의 요구를 묵살할 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삶은 여전히 위태로운 것으로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차별 극복의 징표인 홍석천을 놓고 이제는 성 소수자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운동의 목표는 결국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진전은 더욱 어려워진다. 솔직히 내가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같은 성 소수자 입에서 '나중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홍석천의 발언을 보자면 아주 기우도 아닌 것 같다.

물론 아직 그가 출마를 선언조차 하지 않은 시점에서 때 이른 걱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홍석천의 용산구청장의 향한 도전의 그의 말처럼 꿈 정도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진지하게 이 목표를 검토 중이라면 나는 말하고 싶다. 홍석천은 언급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 과업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이자 사업가, 말하자면 롤 모델로서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

하지만 정치에 뛰어들고 싶다면 부족하다. 공직은 동성애자인 당신이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다른 성 소수자들 역시도 보다 진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 목사는 홍석천의 용산구청장 출마 언급을 놓고 쓴 공개서한에서 '과거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가 지금껏 한 모든 발언 중 유일하게 동의한다. 홍석천이 선거에 뛰어드는 순간 그는 되돌아가기 쉽지 않은 '다른 자리', 정치의 자리로 이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구청장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다른 위치에서 홍석천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 자리는 그만큼 중요하다.

홍석천 성소수자 용산구청장 정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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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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