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가 지난 8일 사퇴하면서 '공영방송 정상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유 이사가 사퇴한 8일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아래 언론노조 MBC 본부)가 KBS 새노조와 같이 총파업에 돌입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유의선 이사는 "파업에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는 말과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같은 날 열린 'KBS·MBC 공동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유의선 이사의 사의 소식을 전하며 "양심 있는 적폐 인사라면 유의선 이사의 뒤를 따를 거라 생각한다. 이 물결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총파업 승리의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실제 유 이사가 사퇴하면서 MBC가 정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방문진법에 따르면 이사 선임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관할한다. 방통위는 3년 임기의 방문진 이사 9명을 임명하는데 그 중 여당에서 6명·야당에서 3명을 추천받는다.(방송문화진흥회법 제6조 제1항) 그런데 구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추천을 받았던 유 이사가 사퇴를 하면서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인사가 방통위를 거쳐 방문진 이사에 임명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공영방송 구성원들로부터 '언론 적폐'라 불리는 방문진 이사 5명(고영주·김광동·김원배·이인철·권혁철)과 현 여당 추천인 4명(이완기·최강욱·유기철)으로 이사회 구성 비율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방통위는 "이른 시간 내에 보궐 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직원 108명이 방송법 위반 등 혐의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직원 108명이 방송법 위반 등 혐의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 손지은


여기서 이사 5명 중 한 명이라도 유의선 이사처럼 사의할 경우 5:4 비율이 4:5로 역전한다. 문화방송의 대주주이면서 MBC 사장을 선임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관리·감독 기구인 방문진 구성 비율이 뒤바뀐다는 건 곧 김장겸 MBC 사장을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김장겸씨를 MBC 사장으로 내세운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을 포함해 구여권 추천 인사 5명의 마음이 바빠진 이유다.

이들은 유의선 이사가 사퇴하는 당일 "방문진 이사에 대한 부당한 사퇴 압력은 언론 공정성을 말살하려는 부당한 행위이자 민주 헌정 질서에 대한 유린"이라며 유 이사의 사퇴를 "부당한 압력"으로 규정했다.

'극우 발언' 서슴지 않는 구여권 이사들

박근혜 정권 하의 방통위가 선정한 방문진 구여권 이사 6명(유의선 이사 사퇴 후 5명)은, 선임과 동시에 논란이 됐다. 이들은 모두 극우적인 단체에 속해있거나 극우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김장겸 MBC 사장을 세우고 지역 MBC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낸 주범이다. 이들의 과거 행보와 발언들은 왜 이렇게 MBC가 망가졌는지, 그 단서가 돼준다.

언론노조, '언론부역자' 포승줄 퍼포먼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처리 하루전인 8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 모인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고대영 KBS사장, 이인호 KBS이사장, 안광한 MBC사장, 고영주 방문진이사장 등 '언론부역자'로 지목한 관계자들을 포승줄로 묶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언론노조, '언론부역자' 포승줄 퍼포먼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처리 하루전인 지난 2016년 12월 8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 모인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고대영 KBS사장, 이인호 KBS이사장, 안광한 MBC사장, 고영주 방문진이사장 등 '언론부역자'로 지목한 관계자들을 포승줄로 묶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대표적인 인물로는 2013년 1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은 적화된다"고 발언한 고영주 이사장이 있다. 그는 해당 발언으로 인해 지난 8월 31일 열린 명예훼손 혐의 1차 공판에서도 여전히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열린 한국PD연합회 긴급토론회에서 "MBC가 방송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도록 할 책무를 지녔음에도 먼저 그 책무와 배치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으로 불법행위가 인정되어 손해배상판결이 선고되고 형사적으로 기소되기도 한 점 등은 이사의 책무를 현저히 위반한 것"으로 규정했다.

고 이사장의 '망언'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MBC의 '학생 전원 구조' 오보를 옹호하고 지난 2014년 6월 방문진 이사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세월호 참사 책임에) 왜 정부를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지난 2016년 겨울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에 동원된 사람들이고 시민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촛불 집회 현장에서 MBC 기자들을 쫓아낸 시민들에 대해 "만약 JTBC가 애국단체 집회에 간다면 똑같이 쫓겨날 것"이라고 했다.

고 이사장은 또한 과거 '부림사건' 당시 담당 검사로서 '부림사건'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자 "좌경화 된 사법부의 판단"라고 주장했다. 고 이사장의 발언이 공영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의 발언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MBC 보도 건전하다" 자평하기도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고영주 이사장은 김광동·권혁철 방문진 이사와 함께 보수성향의 정치단체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소속 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지난 2009년 "친북반국가행위자들의 폐해와 실체를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리겠다"는 명목 하에 '친북 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했다. 이들이 1차로 발표한 '친북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 안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정래 소설가, 조국 민정수석(당시 서울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에 고 이사장과 함께 소속된 김광동 이사는 또다른 보수단체인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열리는 와중에도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 보도는 다른 방송에 비해 건전성을 유지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공정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 해오고 있다"고 자평했다.

광장 가득 MBC노동자들의 사원증 23일 오후 MBC대주주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이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 가운데,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앞 광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 조합원들이 규탄집회를 열었다. MBC사옥앞 광장에는 조합원들의 이름이 적힌 대형사원증이 놓여 있다. 이들은 김장겸 보도본부장에 대해 '2011년 이후 MBC 뉴스 파탄의 주역이자 총책임자'라며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 누락' '문재인 의원 변호사 겸직 대형오보' '세월호참사 유가족 향한 막말' 등을 지적했다.

▲ 광장 가득 MBC노동자들의 사원증 지난 2월 23일 오후 MBC대주주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이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 가운데,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앞 광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 조합원들이 규탄집회를 열었다. MBC사옥앞 광장에는 조합원들의 이름이 적힌 대형사원증이 놓여 있다. 이들은 김장겸 보도본부장에 대해 '2011년 이후 MBC 뉴스 파탄의 주역이자 총책임자'라며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 누락' '문재인 의원 변호사 겸직 대형오보' '세월호참사 유가족 향한 막말' 등을 지적했다. ⓒ 권우성


방문진 이인철 이사 또한 같은 날 이사회에서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점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냉정을 찾아야지 시청률 올리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이사는 또 <미디어펜>이라는 매체에 기고문을 보내 "정권이 바뀌었다고 종전 정권에 의해 임명된 방문진 임원을 인정하지 않는 건 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청률과 함께 대내외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진 MBC의 방문진 이사로서 책임 있는 말이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승만은 혁명가" 추켜세운 방문진 이사

김광동 이사는 과거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 당시 보수 성향의 한 매체에 "국정원은 자유와 민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공산 전체주의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공격하는 한 그 역할은 멈출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 이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혁명가"로 말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신생독립국 및 민주주의 도입 국가들의 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어 세운 위대한 혁명가"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이번 제10기 방문진 이사에 이어 제8기부터 방문진 이사를 지낸 바 있다.

복수의 방문진 이사들 극우 단체와 연결

전경련 산하의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인 권혁철 이사 대표적인 '극우 인사'다. 그는 과거 77곳의 극우보수단체들로 구성된 사드배치지지국민연대 집행위원을 지냈다. 당시 국민의당 양순필 부대변인은 "공정 보도 책임이 있는 공영방송 임원들이 합리적인 사드 비판 여론을 색깔론으로 매도하는데 동조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런 부적절한 인사들이 이사로 있는 공영 방송의 사드 보도가 공정하다고 믿을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논평을 낸 바 있다. '사드배치지지국민연대'에는 방문진 김광동 이사가 있는 '나라정책연구원'이 참여하기도 했다. 복수의 보수(극우) 단체들에 공영방송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방문진 이사들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방문진 홈페이지에 있는 제10기 방문진 이사들의 내력

방문진 홈페이지에 있는 제10기 방문진 이사들의 내력 ⓒ 방문진


횡령 혐의로 조사 중인 방문진 이사

한편, 과거 목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김원배 방문진 이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회장인 정수장학회 출신 모임인 '상청회'의 부회장 신분으로 대표적인 '언론 적폐'로 손꼽힌다. 김 이사 또한 박근혜 정권 당시인 제9기부터 현재 제10기까지 방문진 이사를 지내고 있다. 그는 목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때 교비 7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됐다. 김원배 방문진 이사의 횡령 혐의는 박근혜 정권 당시 무혐의 처분이 났지만 현재 재수사를 받고 있다. (관련 기사: 언론 적폐가 가짜뉴스 피해자? MBC 방문진 이사의 이상한 논리)

언론학자들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 해임해야" 주장

14일 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PD연합회 긴급토론회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에서 언론학자들은 입을 모아 "방통위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들이 MBC가 정치편향성 보도를 하는 등 방송의 공적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경영진에 의해 광범위한 부당노동행위가 이루어졌으며, 부적절한 경영으로 신뢰율(시청률)의 현저한 저하를 가져왔음에도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조하거나 조장한 점이 방통위를 통해 확인된다면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해임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방문진 전 이사이기도 한 한상혁 변호사는 14일 한국PD연합회 긴급토론회에서 "MBC 경영진도 문제지만 정권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건 방문진 이사들이 해왔다"며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주범들이고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 해임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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