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KBS 파업으로 <추적 60분>이 연 2주 결방했다. 그 빈자리는 2017 드라마 스페셜로 채워졌다. 애초 일요일 밤 10시 40분이 정규편성이었던 <드라마 스페셜>이 평일 수요일 밤 11시로 옮긴 것. 지난 주 <우리가 계절이라면>에 이어 13일엔 <만나게 해주오>가 방영됐다.

 2017 드라마 스페셜 <만나게 해주오>

2017 드라마 스페셜 <만나게 해주오> ⓒ kbs2


1930년대 경성의 혼인 정보 회사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 경성. 지금의 서울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서구문화가 조선에 유입됐다. 서구 문물의 상징인 백화점을 중심으로 이른바 '모던보이', '모던걸'들도 등장했다.

<만나게 해주오>는 이런 '모던보이'가 활보하는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경성의 모던보이들은 전통의 관습과 풍속 대신, 서양의 문화에 매료돼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이중 대표적인 게 '자유연애'다. 일찍이 이광수의 소설을 통해 그 시절 젊은이들의 고뇌로 등장한 자유연애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강제된 계약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대를 선택하고 사랑에 빠지는 '개인주의적' 삶으로의 도약(?)이었다. <만나게 해주오>는 이런 '자유연애' 지상주의 경성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결혼 정보 회사가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으로 드라마를 연다.

얼룩진 얼굴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수지(조보아 분), 아니 사실 숙희는 '모던보이'와 결혼을 목표로 하는 여성이다. 그 야심찬 목표에 따라 경성 혼인정보회사 주최의 쌍쌍파티에 난입한 그녀는 막춤을 추다 대표 차주오(손호준 분)의 눈에 띈다. 10전 상점 점원인 그녀를 10전 상점 여주인으로 오해한 차주오와 그녀를 아끼는 10전 상점 여주인의 배려로 '모던걸 수지'로 변신한 숙희는 차주오의 적극 응원에 힘입어 여러 모던보이와의 맞선 자리에 나선다.

1930년대 자유연애를 부르짖던 그 시대에도 결국 결혼은 '돈과 집안과 외모에 따라 결정된다'는 만고불변의 속물주의를 내세운 결혼정보회사와 그들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선 수지를 통해 드라마는 당시 '모던보이'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결국 맞선 자리의 해프닝으로 총독부까지 끌려가, 정보회사가 문을 닺게 될 위기에 빠지며 뚜쟁이와 속물 모던걸이었던 두 사람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저 모던걸의 결혼 작전이었던 드라마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춘의 고달픈 사연으로 옮겨간다.

수지로 이름조차 세련되게 바꾼 숙희는 사실 제천 출신의 가난한 아가씨. 아픈 어머니를 경성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해 일게된 그녀는 아버지가 강제로 권하는 결혼에 반발하며 스스로 결혼을 통해 성공하고자 경성으로 왔다. 그런가 하면, 경성 혼인정보회사 대표 차주오는 넉넉한 형편이었지만, 독립군 자금을 대주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빨간딱지투성이가 된 상태다.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에 반발해 '돈'을 쫓아 혼인정보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렇게 알고 보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은 혼인정보회사 대표와 고객이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며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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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주행

그렇게 가까워지던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은 뜻밖에도 총독부 공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중국 정복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 100명의 만주행을 결정한다. 총독부 관리에게 이자를 주러 온 주오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혹시나 끌려갈까 주오의 여동생을 강제 결혼시키려 하는데, 이게 동생의 가출 사건으로 이어진다. 동생의 가출 사건은 두 사람을 더욱 가까워지게 하지만, 주오는 그 만주행 명단에 숙희가 있음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일본인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그런 주오가 섭섭한 숙희는 그녀의 로망이었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 대신 만주행을 택한다.

달콤한 연애이야기였던 드라마는 여성 100인의 만주행 공지문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로 냉큼 발을 디딘다. 부푼 꿈을 안고 만주로 향하던 숙희는 실상을 알게 되지만 강제로 기차에 태워지고, 그녀를 찾아온 주오는 쌍쌍파티를 이용하여 숙희를 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나 애초에 전형적인 '로코'의 형식을 띠었던 드라마는 위기의 만주행 기차를 주오와 아버지의 화해를 도구로, 만주로 잡혀갈 뻔했던 100명의 조선 여인들의 탈출 작전으로 변모시킨다. 결국 총독부 관리들의 실패와 실수로 만주행은 없었던 일이 되고 주오와 숙희는 행복한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로 끝나게 되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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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고통 담아내는 진지한 접근 아쉽다

모던보이, 모던걸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 드라마는 전통적 결혼에 반발하는 여성과 독립 운동을 하는 아버지에 반발하는 청년이라는 설정으로 시대적 깊이를 더한다. 특히 뜻밖에 숙희에게 닥친 만주행은 시대적 고통을 절묘하게 극적 긴장의 소재로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문제다. 21세기에도 끝나지 않는 민족적 고통,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문제를 '로코'의 형식을 띤 드라마가 '절정'의 갈등으로 차용한 지점에 대한 고민이다. 드라마에서 강제로 기차에 태워진 숙희를 구하기 위해 주오는 애를 쓰고, 그런 주오를 발견한 총독부 관리는 총을 든다. 그런 그를 주오의 아버지가 가격하고, 주오가 구한 여성들은 총독부 군인들을 함께 물리친다.

여기서 드는 의문. 이게 과연 역사적 비극을 '판타지'적으로 해석한 것인지, 로코의 소모적 갈등 도구로 소비한 것인지 모호하다. 특히 주오가 자신의 혼인정보회사의 쌍쌍 파티를 활용하여 총독부 경무국장 요시다를 희롱하고,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만주로 갈 처녀들을 구하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억압적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조악'하다. 즉, '의도'는 알겠지만, 안이하고 편의적인 구성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강제 수용소를 '단체 게임'으로 속인 아버지의 거짓말은 아들을 구하지만,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는 현실성에 기대어 영화는 울림을 가진다. 반면 <만나게 해주오>에 등장한 강제 만주행은 역사적 무게감에 비해 너무 가볍게 처리된 게 아닌지? 물론 시대적 비극에 상상력이 짓눌릴 필요는 없다지만, 그래도 그 상상력의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더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두 주인공의 해피엔딩 결말조차 불편해 지지 않게끔 말이다.

2017 드라마 스페셜 만나게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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