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매혹당한 사람들> 메인 포스터

<매혹당한 사람들> 메인 포스터 ⓒ 포커스 피처스


01.

올해 열렸던 칸 영화제에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이 작품 <매혹당한 사람들>로 감독상을 수상한다. <대부>(1972), <지옥의 묵시록>(1979) 등을 연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로서 그 동안 숱한 구설수에 올랐던 그녀가 자신의 힘으로 얻어낸 성과라고 봐도 무방한 결과였다. – 그녀의 엄마는 최근 <파리로 가는 길>(2017)로 장편 감독 데뷔를 했던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이다. 가족 모두가 영화계에 종사하는 셈이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로 받은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과 <썸웨어>(2010)로 수상한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황금사자상에 이은 칸 영화제의 감독상. 이 모든 일은 영화 <처녀 자살 소동>(1999)으로 감독이 된 후 정확히 18년 동안 벌어졌다.

하지만 영화제에서의 성과와는 별개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으며, 북미 개봉 후 흥행의 측면에 있어서도 제작비를 겨우 넘는 수준의 수익밖에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그녀가 흥행성을 담보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종류의 감독은 아니지만,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악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성적이다.

*105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북미에서 1054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02.

영화는 1966년 발표된 토머스 컬리넌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문제는 이 작품이 1971년 돈 시겔 감독 연출,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으로 이미 한 번 영화화 된 적이 있었다는 것.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지난 작품을 리메이크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고 밝혔지만, 과거 누군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면서 그 발자국을 밟지 않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 보인다.

감독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 부분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리고 원작의 매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봉 이후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적어도 역사에 기반한 고증과 영상미 자체는 뛰어나다는 것. 문제는 역시 이야기다. 원작의 내용에서 많은 부분들을 삭제하다 보니 스토리텔링의 측면에 있어 힘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식사 장면에서 그들의 심리를 그나마 읽어볼 수 있다.

▲ <매혹당한 사람들> 식사 장면에서 그들의 심리를 그나마 읽어볼 수 있다. ⓒ 포커스 피처스


03.

이번 작품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은 여성만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 외부로부터 등장한 이방인인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것이다. 다리 부상으로 인해 죽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있던 존(콜린 파렐 역)이 여성들만 머무르고 있는 판스워스 신학교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과 갈등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평화로운 집단에 유입된 외부의 존재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기존의 안정이 흔들리는 구조의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작품이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이 원작의 내용에서 다루고 있는 수 많은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남북전쟁으로부터의 갈등, 흑인 노예제도에 대한 고찰, 외부에서 온 남성에 대해 갖는 성적 욕망의 근원과 같은 것들에 대한 내용이 모두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원작의 다양한 내용 가운데 하나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고찰해 보는 일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 가운데 하나에만 집중하면서도 그 깊이마저 사라져버린다면 어디에서부터 이 작품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차라리 원작의 모티브만 가져온 뒤 배경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은 어땠을까? 이대로라면 굳이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시대 상황을 이 영화에 담아낼 필요가 없었을 정도다.

04.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매혹당한 사람들>의 이러한 모든 문제는 바로 인물의 행동이 발생하는 지점의 원인과 욕망의 근원이 설명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선재물에서 동일하게 이 영화를 한 줄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 즉 로그라인이 '그가 오고 모두가 달라졌다'로 결정되었다고는 하나, 영화의 내용 또한 그렇게 간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존을 처음 만난 미스 마사(니콜 키드먼 역)가 갑자기 그에게 연정을 느끼고,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역)는 그와의 미래를 약속하는 것과 같은 장면들에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설명이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낯선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학생들과 선생이 옷을 차려 입고 식당에 등장하거나 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아닌 실소만 남길 뿐이다.

에드위나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는 갑자기 알리시아(엘르 패닝 역)의 방으로 향하는 존의 모습에도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돈 시겔 감독의 1971년작에서 캐롤(존 앤 해리스, 이 작품의 알리시아에 해당하는 역)과 교장 마사(제라르딘 페이지)가 존을 둘러싸고 느끼는 질투와 욕망의 표출이 직접적으로 설명되는 것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결국 이 영화의 끝에서는 껍데기만 남는다. 절망적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끝까지 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 <매혹당한 사람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끝까지 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 포커스 피처스


05.

그나마 이 작품에서 한 가지 건져낼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원작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남성 위주의 이야기가 여성 위주의 시선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 온전히 모두 전환되지는 못한 모습이다.-  남성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에 작은 파문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남성의 광기를 처단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시대적 배경과 결합하여 어떤 의미를 남긴다. 존이라는 인물을 죽음으로부터 살려낸 것도 여성들이었으며, 그의 마지막을 결정한 것도 여성들이었으니 말이다. 외부로 향하는 문이 굳게 닫혀있었던 것은 어떤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 스스로의 의지였음을 상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쉬움은 그래서 더욱 크게 남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작품의 남성 위주의 시각을 완전히 걷어내 버리고, 차라리 여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스릴러, 드라마 장르를 표방하기에 그 어떤 지점의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다.

덧붙이는 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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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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