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JTBC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  길거리 버스킹은 대표적인 어쿠스틱(언플러그드) 라이브 연주의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JTBC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 길거리 버스킹은 대표적인 어쿠스틱(언플러그드) 라이브 연주의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다 ⓒ JTBC


최근 JTBC의 음악 여행 예능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유희열-이소라-윤도현 등 각기 다른 성향의 음악인들이 아일랜드-영국-스위스를 거치며 단촐한 악기 구성만으로 들려준 음악들은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문득 <비긴어게인>을 보면서 199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 MTV 언플러그드 >(MTV Unpluuged)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넓은 의미에서 길거리 버스킹 역시 "언플러그드" 형식 공연의 일종 아니었던가.

지난 1989년 처음 미국에서 방영된 < MTV 언플러그드 >는 그 시절 인기 팝스타들이 전자/전기 악기 대신 어쿠스틱 악기만으로 자신의 대표곡을 연주하는 "스튜디오 어쿠스틱 공연"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1992~1993년 전후론 브루스 스프링스틴, 너바나, 듀란 듀란, 로드 스튜어트 등 당대 톱스타들이 너도나도 출연하면서 프로그램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올해 나란히 발매 25주년을 맞은 에릭 클랩튼의 < Unplugged >, 머라이어 캐리의 < MTV Unplugged >는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대중들이 어쿠스틱 공연=언플러그드 공연으로 인식하는 건 < MTV 언플러그드 >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를 들려주자

 에릭 클랩튼의 1992년 < Unplugged > 공연 영상 (화면 캡처). 이 음반의 대성공으로 그는 제2의 음악적 전성기를 구가했다

에릭 클랩튼의 1992년 < Unplugged > 공연 영상 (화면 캡처). 이 음반의 대성공으로 그는 제2의 음악적 전성기를 구가했다 ⓒ Warner Music


과거에도 "어쿠스틱 라이브"라는 형식의 공연은 흔히 있어 왔다. 강렬한 소리를 들려주는 록 그룹이 소규모 클럽 무대에서 어쿠스틱 기타 만으로 연주에 임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걸 TV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영하는 건 당시로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 SNL >같은 스튜디오 공개 방송 형식으로 유명 음악인들의 공연을 "어쿠스틱 악기"만으로 구성해보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 MTV 언플러그드 >는 시작되었다.

그래서 1989~90년 방영분의 경우, 작곡가 줄스 쉬어(신디 로퍼, 뱅글스 곡 담당)가 초반 10여회 분 정도 호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엔 진행자 없이 오롯이 초청 가수 본인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일반적인 공연 형식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2~3팀의 합동 무대 위주의 구성에서 단독 공연 형식으로 포맷 역시 달리 가져갔다.

첫 음반 발매는 폴 매카트니...머라이어 캐리, 에릭 클랩튼이 유행 주도


 올해로 발매 25주년을 맞이한 머라이어 캐리의 < MTV Unplugged EP >.  언플러그드 음악 유행을 주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올해로 발매 25주년을 맞이한 머라이어 캐리의 < MTV Unplugged EP >. 언플러그드 음악 유행을 주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 소니뮤직코리아


1989년 11월 26일(현지시간) 방영된 첫 회엔 영국의 뉴웨이브 그룹 스퀴즈, 기타리스트 엘리옷 이스턴(카즈), 싱어송라이터 시드 스트로우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후 스티비 레이본, 돈 헨리(이글스), 엘튼 존 등 쟁쟁한 스타들을 섭외하면서 프로그램의 인기 역시 회차를 거듭할 수록 높아졌다.

당연히 프로그램을 음반으로 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도 늘어갔는데 그 첫 주자는 1991년 제작된  폴 매카트니의 < Unplugged (The Official Bootleg)> 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정 제작 판매로 인해 널리 알려지진 못했고 방영분 중 두번째로 음반 제작된 머라이어 캐리의 < MTV Unplugged EP >부터 본격적인 인기 몰이가 이뤄졌다.

탁월한 가창력과 미모를 겸비한 차세대 디바로 데뷔와 동시에 전세계 음악팬들을 사로 잡았던 머라이어 캐리는 이 공연실황 EP를 통해 당시 "무대 가창력 불안"의 딱지를 떼고 한 단계 도약을 이뤄냈다.

'Vision Of Love', 'Emotion' 등 당시 인기곡들을 거침없는 목소리로 소화하면서 미처 몰랐던 그녀의 진가를 재발견하는 좋은 기회를 이 음반이 마련해준 셈이었다.  수록곡 중 잭슨5의 명곡 'I'll Be There'의 리메이크 버전은 곧바로 빌보드 핫 100 싱글 순위 1위를 차지했고 음반 역시 주요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 매김했다.

머라이어 캐리가 언플러그드 음반 유행의 선두 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면 에릭 클랩튼은 4번 타자의 초대형 홈런을 쳐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영화 <러쉬>의 삽입곡 'Tears In Heaven'의 발표 직후였던 1992년 1월 녹화된 공연은 같은해 8월말 < Unplugged >라는 제목으로 음반화되었는데 이게 초대박 인기를 얻으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블루스 고전과 함께  'Layla', 'Old Love' 등 자신의 대표곡들을 투박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싣고 들려준 정감어린 음악은 음악팬들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고 미국에서만 1000만장 이상(세계 2400만장)의 기록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한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 주요 부문을 휩쓸면서 에릭 클랩튼은 언플러그드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열 수 있었다.

로드 스튜어트, 너바나, 닐 영 등 스타 음악인 속속 합류

 커트 코베인 사후에 발매된 너바나의 < Unplugged In New York >.  자신의 비극을 미리 예감이라도 한듯한 그의 처절한 목소리가 어쿠스틱 연주에 실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커트 코베인 사후에 발매된 너바나의 < Unplugged In New York >. 자신의 비극을 미리 예감이라도 한듯한 그의 처절한 목소리가 어쿠스틱 연주에 실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듬해 들어 < MTV 언플러그드 >는 절정기를 구가한다.  노장 음악인 로드 스튜어트는 자신의 출연분을 < Unlpugged...and Seated >로 발매했는데  발라드 'Have I Told You Lately '의 인기에 힘입어 친구 에릭 클랩튼 못잖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커트 코베인의 사후 유작이 되고 만 너바나의 < Unplugged In New York>, 록큰롤 전설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 영 등의 언플러그드 음반이 녹음 된 것 역시 이 무렵이었다.  팝, 록에 국한되던 장르도 R&B, 재즈, 얼터너티브, 라틴 등 햇수를 거듭할 수록 확대되었다.

테슬라, 마이클 쉥커 처럼 MTV와 상관없이 자신의 공연을 어쿠스틱 라이브로 구성, 이를 음반으로 발매하는 그룹 및 가수들의 숫자도 급증할 만큼 < MTV 언플러그드 >는 1990년대 세계 대중 음악을 지배한 변종 장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0년대 국내 가요계에서도 심야 TV 음악 프로그램, 각종 무대 등에서 언플러그드를 표방한 어쿠스틱 공연이 한때 붐을 이룰 만큼 큰 영향을 받았다.  지금도 몇몇 음악인들은 공연의 전체 또는 일부를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할애하고 있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태양이 뜨면 일정 시간 후 지기 마련이다.  < MTV 언플러그드 >는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힙합, EDM 등에 밀린 언플러그드, 새롭게 부흥을 꿈꾸다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영국 인디 록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2012년작 < MTV Unplugged > 음반.  21세기 들어 언플러그드 프로그램은 퇴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영국 인디 록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2012년작 < MTV Unplugged > 음반. 21세기 들어 언플러그드 프로그램은 퇴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매년 10여 회 안팎의 방영분이 제작되던 < MTV 언플러그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횟수가 점차 줄더니만 2000년대 들어선 1년 2회 정도로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가장 큰 원인은 마땅한 출연진 확보의 어려움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힙합, 최근 들어선 EDM 성향의 음악들이 인기를 얻은데 반해 어쿠스틱 기타-피아노 등의 연주로 구성된 언플러그드 조합으론 이들 장르를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릴 웨인, 트레이 송즈 같은 몇몇 힙합인들이 출연하기도 했지만 부족함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중남미계 라틴 음악인 위주로 출연진이 구성되다 보니 식상함을 표하는 현지 시청자들도 늘어나면서 한때 < MTV 언플러그드 >는 아예 프로그램 폐지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MTV는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지난 8일 꽃미남 싱어송라이터 숀 멘데스를 시작으로 새 시즌 방영에 돌입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긴 쉽지 않겠지만 색다른 어쿠스틱 음악을 기대하는 대중들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 MTV언플러그드 >는 "무가공 음악"의 자존심을 계속 이어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00% 어쿠스틱 연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언플러그드" 형식의 어쿠스틱 라이브 연주는 대체 이런 악기 구성으로 진행된다. 어쿠스틱 기타(통기타, 나일론줄 클래식 기타 등), 어쿠스틱 베이스(콘트라 베이스), 드럼 및 퍼커션, 피아노 등 각종 건반 악기, 기타 관현악기 등.

이 과정에서 전기, 전자 장비를 전부 배제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장 소리를 담고 크게 키우기 위한 도구들인 마이크, 앰프, 스피커 등은 필수 장차들인 데다 전기를 사용하는 몇몇 고전 건반 악기 (하몬드 오르간, 몇몇 일렉트릭 피아노)의 사용은 어느 정도 용인되었다.

가령 길거리 버스킹을 할 경우, 대형 피아노를 대동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비긴어게인>의 유희열 처럼 전자 키보드로 피아노 소리를 대신하는 게 보통이다.

MTV와는 무관한 작품이지만 헤비메탈 밴드 테슽라(Tesla)의 1990년 대표작 < Five Man Acoustical Jam >, 도켄의 < One Live Night > 같은 어쿠스틱 공연 실황 음반에선 일부 곡에 한해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연주가 병행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입니다.
언플러그드 어쿠스틱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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