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2일 오후 5시40분]

영화 흥행에까지 권력기관의 간섭이 있었던 걸까. 최근 국정원이 '엔터팀'을 운영해 영화 제작·투자·배급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고 이명박 정권 당시에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영화계 인사들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특정 영화 흥행 지원에도 적극 나섰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특정영화의 개봉 전부터 흥행 시나리오가 있다고 말했던 보수단체 인사가 최근 국정원의 사이버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영화는 이른바 '국뽕 영화'로 불리는 영화들이고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작품은 <연평해전>이다. <연평해전>은 개봉 당시에도 보수단체 동원 의혹, 군 단체 관람, 1013개 스크린 과점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지난 2015년 개봉했던 <연평해전>

지난 2015년 개봉했던 <연평해전> ⓒ NEW


당시 영화계에서는 '보수단체 인사가 개봉 전부터 <연평해전> 흥행을 장담하며 보수단체들의 관객 동원 계획 등을 밝혔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최근 <오마이스타>는 이 보수단체 인사를 수소문해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발언에 대해 "나는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전제한 뒤, "지난해 어떤 모임을 통해 진보 쪽 영화인을 만나게 됐고 당시 언론 등에 나온 이야기를 전했던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아는 분야도 아니고,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며 "박근혜 정권에 실망해 진보적 시민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전경련이 대기업, 국정원이 군·경과 학교 맡을 것"

하지만 해당 보수단체 인사와 만났다는 영화계 관계자 A씨의 말은 달랐다. 영화계 인사 A씨는 이름난 흥행작을 만들고, 영화단체 임원을 맡는 등 영화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중견 영화인이다.

A씨는 "지난 2015년 초 모임에서 그(보수단체 인사)를 처음 만났다"며 "당시에는 개봉을 많이 남겨둔 상태였음에도 그는 <연평해전>의 흥행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쪽 분야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말한 내용이 그대로 진행돼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해당 보수단체 인사는 첫 만남부터 <연평해전> 관객 수를 장담했다. 그가 당시 예상했던 관객 수는 800만~1200만. A씨는 "처음에는 '영화 쪽에서 일하는 나보다 당신이 어찌 그리 잘 알겠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으나 정확할 뻔했다"고 회상했다.

A씨는 또 "두 번째 만났을 때던가 보수단체 인사에게 관객 수를 예상하는 근거에 대해 물었더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기업을 맡고, 국정원이 군·경하고 학교를 맡고, 우익단체 등을 동원해서 수 백 만의 물량공세가 펼쳐질 것'이라더라. '처음에 물량공세를 500만까지 할 생각'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A씨는 "당시 메르스 사태만 아니었으면 목표가 달성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본다"며 "<연평해전> 개봉 이후 그 보수단체 인사를 만났을 때는 '하늘이 안 도와준다. 메르스를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냐'고 한탄하더라"고 덧붙였다.

A씨는 "당시 그분이 우익단체에서 유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국정원과 청와대, 전경련 등과 네트워크가 있어 정보를 접하기 쉬웠던 것으로 봤고, 빈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며 "대화 중 이야기했던 다른 내용들도 대부분 그대로 이뤄지곤 했다"고 말했다. 해당 보수단체 인사가 <오마이스타>에 밝힌 내용과 비교하면, 모임을 통해 만났다는 것 외에는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CJ와 배급협약을 맺었던 <연평해전>은 이후 배급사가 NEWf로 바뀌었다.

CJ와 배급협약을 맺었던 <연평해전>은 이후 배급사가 NEWf로 바뀌었다. ⓒ CJ 엔터테인먼트


해당 보수단체 인사, 국정원 댓글 사건 연루 조사 중

<연평해전>은 당시 메르스로 인해 단체행사가 중지되는 등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604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박하게 나왔으나 손익분기점인 300만 관객을 가볍게 넘어서며 예상 외로 큰 성공을 거뒀다.

제작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처음에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았다가 발을 뺐고, 이후 'NEW'가 배급을 맡았다. NEW는 영화 <변호인> 투자 배급 이후 외압 소문이 돌던 가운데 이 영화를 맡게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0억을 지원 받았고,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았다. 2013년 9월 국책은행인 IBK 기업은행이 투자주관사를 맡았는데(계약은 2014년 7월), IBK 기업은행은 앞서 그해 5월경 <연평해전> 제작사의 대출 신청을 거절했다가 몇달 사이 입장을 바꾸었다.

이에 대해 <연평해전>을 연출한 김학순 감독은 12일 전화통화에서 영화 제작이나 이후 개봉 과정에서 국정원의 도움이나 지원, 연락을 받은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일축했다. 김 감독은 "<연평해전>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영화였다"며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모았던 점을 강조했다.

영화를 배급한 NEW 역시도 "요즘 <연평해전>과 관련된 언론의 문의가 오고 있으나 배급과정에서 국정원 쪽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며 "흥행에 조직적인 동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흥행과정에서 보수적인 성향의 관객들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연평해전> 흥행 계획을 이야기했던 그 보수단체 인사가 최근 검찰의 국정원 민간인 댓글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국정원의 사이버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과의 연결고리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에는 공기업에 임원으로 영입된 전력이 있을 만큼 보수 진영에서는 꽤 인지도 있는 인사다.

영화계 인사들은 "개연성 없는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며 적극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배장수 전 영화평론가협회장은 "지난 정권에서 모태펀드도 <연평해전> 등에 편중되게 지원했다는 것이 드러난 마당에, 코드가 맡는 영화를 역할 분담을 통해 흥행에까지 관여했다는 의혹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며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이 사안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평해전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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