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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진영 최고위원과 대화 나누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진영 최고위원과 대화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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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신교는 왜 그렇게 '동성애'를 싫어할까? 오랜 시간 지속되고 끝날 줄을 모르는 개신교계의 성소수자 혐오의 움직임을 보자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순한 입장도 아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가로막거나 후퇴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펼쳐왔고 때로는 물리적인 충돌도 불사했다.

이 정도의 열성이라면 명확한 동기가 보여야 할 텐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동성애 말고도 현대 사회에서 지켜지지 않는 계율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세가 야훼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온 십계명조차도 어겨지기 일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간통을 저지른 목사 퇴출 운동'이나 '부정 축재 기독교인 정화 운동' 같은 게 벌어진 걸 본 적이 있는가?

한채윤의 글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를 증오하는가?>는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보수 개신교계의 이권 싸움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글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개신교계가 정치권에 직접적인 입김을 불어 넣으려 한 첫 시도는 사립학교법 개정과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개정안의 목표는 사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었지만 교계는 이를 그들의 주요 존립 기반 중 하나인 미션 스쿨을 침탈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격렬한 반발로 사학법은 재개정 절차를 밟았지만, 입법 과정에 개입하려는 보수 개신교계의 시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적당한 재물을 물색하던 그들의 눈에 걸려든 것이 바로 2007년 법무부가 입법을 예고했던 차별금지법이다.

개신교가 '동성애'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

동성애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단체가 지난 7월 15일 시청광장 건너편에서 동성애 반대집회를 열었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단체가 지난 7월 15일 시청광장 건너편에서 동성애 반대집회를 열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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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엔 어떤 사태가 벌어졌던가. 보수 개신교계는 '성서에 반하는 동성애를 보호'하며 때문에 '동성애가 죄라고 가르치고 말할 종교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를 지속적으로 무산시켰다. 이 행보는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일례로 지난 2016년 12월 인천시의 청소년노동인권조례는 동성애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발로 통과가 무산되었다. 도대체 그게 '동성애'와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여기에 인천뿐만 아니라 경기도, 대구 등 다른 지역도 같은 이유로 조례 통과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에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놓고 '무상급식이 통과되면 동성애자가 확산된다'는 괴문자가 돌았던 사건도 있었다. 이외에도 '동성애'를 빌미로 개신교계가 정치에 개입하고자 한 사례는 얼마든지 더 찾을 수있다 .

말하자면 보수 개신교계가 말하는 '동성애에 대항하는 성전'이란 명분으로 개별 정치인들을 압박해 입법 과정을 자기 입맛대로 좌지우지하고, 결과적으로는 스스로의 이권을 지키고자 밥그릇 싸움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추악한 역사에 또 하나의 사건이 추가되었다.

바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부결 사태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김 후보자는 동성간 성행위만을 이유로 군인을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 위헌법률심판 당시, 해당 법률은 범죄구성요건이 명확하지 않기에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적이 있다. 합리적인 기준에 의거한 소신있는 판단이었지만 이를 빌미로 보수 기독교 단체는 그의 헌법재판소장 취임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왔다. 특히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다 할 국민의당 의원들은 문자 폭탄을 받기도 했다.

너무도 부적절한 국민의당의 대응

박지원 의원이 지난 3일 '동성애·동성 결혼 개헌반대 국민대회'에 참여해 연설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이 지난 3일 '동성애·동성 결혼 개헌반대 국민대회'에 참여해 연설하고 있다
ⓒ MBC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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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수 개신교 단체의 국회의원 압박이 이번 사건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의 대응이 매우 부적절했음은 명백하다. 수천 통의 문자를 받은 국민의당 의원들은 적어도 이를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의사를 표하기는 커녕 여권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지난 6일 이동섭·이용호 등 국민의당 소속 의원 여섯 명은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국민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고 있다며 민주당은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에 대한 의견을 밝히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보다 하루 전에는 아예 같은 내용이 당 공식 논평으로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3일 광주에서 열린 '동성애 합법화 개헌 반대' 집회에는 박지원 의원이 참석해 "뜻을 모아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드시 막아내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권은희, 최경환, 송기석 의원과 이은방 광주시의장 김성한 광주 동구청장과 함께 참석했습니다"고 자랑스럽게 SNS에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국민의당은 민주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공당임에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단호하게 대응하기는커녕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은 셈이다. 심지어 이는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평등 실현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존중과 공정한 법 집행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당의 강령과도 배치되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당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과 스스로의 맹세를 내팽개친 대가로 국민의당은 무엇을 얻었을까? 인준안 부결 직후 안철수 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지금 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번 사건으로 국민의당은 제3당의 지위임에도 희미해져 가던 존재감을 다시금 부각시켰을지도 모른다.

'혐오에 편승한 정치'가 잃어버린 것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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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쩐지 내 눈에 국민의당은 지금 당장 얻은 것보다 앞으로 잃을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인준안 부결 직후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은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의원들과 같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인준을 반대한 이유는 두 당과 같이 김 후보자가 부적절한 인물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부결 이후 김동철 원내대표는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 '올곧은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 견해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잘못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에 반대하기 위한 정략적 투표인가 싶은데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그나마 남은 게 기독교 단체의 '동성애 합법화 반대론'인데 보수 개신교계를 제외한 국민들이 이를 멀쩡한 후보자를 날릴 만한 이유라고 생각할까? 아니 하다 못해 두 보수 야당과 대척점에 선 것을 국민의당의 주요 정체성이라 생각한 당원과 지지자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한국에서 개신교계는 무시하지 못할 만한 힘을 가진 존재다. 성소수자 인권 정책 관련 토론회와 행사에 출몰하고 심심하면 문자와 민원 폭탄을 넣는 양태를 보라. 조직력도 행동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과는 별개로 이들이 여론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집단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단순한 셈법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정치권은 늘 보수 개신교계의 눈치를 보고 성소수자들을 제물 삼아 권력을 창출하고자 했다. 정의당 정도를 제외하곤 여야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개신교계의 최종 목표는 정치력 행사지 '반동성애'가 아니다. 이들은 언제까지고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을 펴는 이들의 반대편에 붙어 '동성애'를 이유를 상대방을 공격하길 반복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득이 되는 것은 없다. 정치가 종교에 놀아나는 셈이다. 심지어 때로는 민의가 교계의 이권 수호에 밀릴만큼.

나는 이번의 김이수 후보자 탈락 사태가 아주 무의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는 정당이 혐오에 굴복하는 것이 득(得)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失)이 될 수도 있는 사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몇몇 의원들은 지역 보수 개신교 인사들에게 환호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 보면 어떨까. 만약 국민의당이 애초에 혐오 세력과 선을 긋고 소신껏 투표를 했다면 명예라도 챙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명분과 실리는 커녕 당의 정체성 조차 잃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며 부디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 이것이 혐오에 질질 끌려다닐 때 당신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들 중 하나다.


태그:#국민의당, #김이수, #성소수자, #혐오,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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