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개봉과 동시에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원더우먼>, <카 3> 등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치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베이비 드라이버>가 14일 개봉했다. 감독은 2017년 인디와이어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감독'에 오른 에드가 라이트.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는 좀비 영화의 클래식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한국 제목이 <시체들의 숀>이 아니라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된 이유는 2004년에 잭 스나이더에 의해 리메이크된 <시체들의 새벽>의 국내 제목이 <새벽의 저주>였던 것에 기인한 것이다.

6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는 2004년 개봉하여 전 세계 3천만 달러의 극장수입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감독 에드가 라이트와 주연배우 사이먼 페그가 공동으로 각본을 썼으며, 2005년 새턴어워즈에서 최우수 호러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좀비들은 몽둥이만으로도 처치가 가능할 정도로 위협적이질 못하다.

영화 속 좀비들은 몽둥이만으로도 처치가 가능할 정도로 위협적이질 못하다. ⓒ 유니버설픽쳐스


어느 날 아침 좀비들로 가득 찬 세상

전자제품 판매원으로 하루하루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29세의 청년 숀(사이먼 페그). 둘도 없는 친구인 에드(닉 프로스트)와 3년 사귄 여자친구 리즈(케이트 애쉬필드) 그리고 아들을 아껴주는 엄마 바바라(페네로프 윌튼)가 있기에 그나마 반복되는 일상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하루 낭비하던 숀은 리즈를 크게 실망시키고, 실연당하고 만다. 실연의 아픔을 에드와 함께 술로 씻어낸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온통 좀비들로 가득하고 심지어 숀의 집 뒤뜰까지 침입한다. 숀은 에드와 함께 어렵사리 좀비를 퇴치했지만, 리즈와 엄마를 구하기 위해선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실 영화 속 좀비들은 몽둥이만으로도 처치가 가능할 정도이다. 호러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는 이 영화의 코미디는 나쁘지 않다. 큰 웃음까진 아니어도 깨알 같은 개그 코드를 영화 전반에 배치하여 즐길만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호러라는 부분은 제쳐놔도 될 정도로 공포감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 속 좀비는 고전적으로 멍청하고 느릿 느릿해 보고 있자면 공포감보단 답답함이 먼저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좀비의 설정은 호러라는 장르적 차원에서 분명 아쉬운 부분이며 영화 속 좀비확산에 대한 설득력을 주기도 어렵다.

하지만 영화의 이러한 설정은 의외로 중요한 메시지를 부각하고 있다. 영화 초반 주인공 숀이 아침에 집을 나와 길 건너편의 가게에 가서 음료를 사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잡은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다음 날 아침에도 롱테이크로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런데 숀은 집을 나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돌아올 때까지 거리를 점령한 좀비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가게 들어서 어질러진 모습이나 냉장고에 찍혀있는 핏빛 손자국도 무심히 지나치고 나온다.

숀을 비롯한 영화 속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친구를 제외하곤 사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과 상관없으면 세상 변화에 무감한 현대인들은 결국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멍청하고 굼뜬 좀비에 공격도 감지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만다. 영화는 이 롱테이크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타인과 사회에 대한 극도의 무관심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좀비는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위험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게 영화는 극도로 타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개인주의가 위험사회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영화 속 멍청하고 느려터진 좀비들은 그리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조금 더 사회와 타인에게 관심을 보였다면 도시가 좀비화되는 참극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 사이먼 페그

영화의 주인공 사이먼 페그 ⓒ 유니버설픽쳐스


또 한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영화의 도입부다. 영화의 오프닝은 아침인데도 피로에 지쳐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들과 마트에 출근해 멍하니 서 있는 계산원들의 모습을 마치 좀비처럼 그려 넣고 있다. 곧이어 주인공 숀이 아침에 일어나는데, 출근하기 싫은 숀의 발걸음은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

영화는 그렇게 꿈도 없이 직장이란 시스템에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좀비'와 다 를바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백수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며 보내는 에드의 모습이 더 생기있게 보인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기묘한 리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 술집에서 실연당한 숀을 위해 에드가 술을 주문하는 장면에선 5개의 컷을 4초에 몰아넣는 빠른 편집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독특한 리듬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피신차 들어간 술집에서 좀비로 변한 술집 주인을 때릴 때 주크박스에서 퀸의 대표곡 'Don't Stop Me Now'가 흘러나오는데 숀과 에드가 어쩌다 보니 노래의 리듬에 맞춰서 때리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옆에 있던 리즈와 다이안이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타며 고개를 흔드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패러디영화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오마주한 장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영화 시작 전 유니버설 스튜디오 로고와 함께 흐르는 음악은 <시체들의 새벽>의 삽입곡이며, 숀이 일하는 가게의 이름이 '포리 일렉트릭'인데, 이는<시체들의 새벽>의 주연배우 켄 포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또한 영화에는 "우주선이 귀환 중에 영국으로 추락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이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금성으로부터 귀환한 탐사선에서 발생한 방사능이 좀비들을 양산했다는 설정에서 빌려왔다. 그리고 숀의 어머니의 이름 바바라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속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영화는 국내 개봉되지 못하면서 DVD로 출시됐고, 몇 차례 영화 전문채널에서 방영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새벽의황당한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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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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