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안보위기와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이날 인터뷰는 슈뢰더 전 총리와 독일 전문가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와의 대담형식으로 진행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 유성호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던 독일 전 총리는 상영 내내 눈물을 멈추질 못했다. 그의 자서전 한국어 출간 기념을 위한 행사 중 하나였지만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를 찾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아래 슈뢰더 전 총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이미 오전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만난 뒤였다. 국외의 전‧현직 국가지도자로선 처음으로 해당 시설을 방문해 한 분 한 분 꼭 안아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보인 슈뢰더 총리가 이번엔 <택시운전사> 속 모델 고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의 손을 꽉 잡았다.

각계 인사들 틈에서 조용히 마음 전해

 영화 <택시운전사>를 같이 관람하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를 찾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운데)와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좌측에서 세 번째).

영화 <택시운전사>를 같이 관람하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를 찾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운데)와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좌측에서 세 번째). ⓒ 이선필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양기대 광명시장,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 등 각계 인사 60여명이 참석한 영화 관람행사였지만 슈뢰더 전 총리 옆엔 김승필씨가 자리했다. 독일어 자막이 없어 상영 내내 전문 통역가가 붙어 대사와 상황을 하나하나 전달해야 했음에도 슈뢰더 전 총리는 영화 내용 곳곳에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영화 속 김만섭(송강호)이 택시를 돌려 다시 광주로 향하는 장면 등에선 여지없이 눈물을 흘렸다. 상영 직후 슈뢰더 전 총리는 "너무 울어 눈이 빨갛다"며 주변 측근들이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여부를 다시 확인했을 정도. 상영관을 나오며 김승필씨는 <오마이뉴스>에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진 않으셨지만 상영 중간 중간 총리께서 제 손을 잡아주셨다"며 "저 역시 6번째 이 영화를 보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을 담은 지지와 위로였다.

공식 상영회 이후 슈뢰더 전 총리와 주요 인사, 김승필씨 등과 함께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주로 각계 인사들이 슈뢰더 전 총리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그가 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참석자들 특성 상 질문 내용이 분야별로 상이함을 미리 밝힌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자리에 동석했다. 아래는 주요 문답이다.

"위안부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김승필씨.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 극장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김승필씨가 함께 한 모습. ⓒ 이선필


- 책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인생에서 딱 한 권의 책만 꼽으라면 어떤 책을 꼽으시겠나. (조유식 알라딘 대표이사)
"그런 질문을 받으면 보통 인기를 생각해 성경을 꼽기 마련이다. 근데 난 성경을 완벽히 독파하진 못했다(웃음). 정말 책이 많은데 꼭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꼽고 싶다. 아, 또 하나 생각이 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큰 고기를 낚아 돌아오던 중 전부 뺏기잖나. 이걸 읽을 때마다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른다.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돌덩이를 산꼭대기에 올리는 벌을 받았다. 보통 돌덩이가 아래로 떨어지면 실망하기 마련인데 내 관점에서 시지프스는 매번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큰 감흥을 준다."

- 낮에 위안부 피해자 분들도 만났다. 독일이 끊임없이 과거사 청산을 위해 노력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법무법인 이제 유정훈 변호사)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유일무이한 잔악 행동을 한 나라다. 민족 말살을 시도했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독일이 그 죄를 고백하고, 사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청산이 가능했다고 본다. 세계 전쟁 후 연합군이 나치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1950년대에 태어난 부모 세대는 이 일을 기억하는 게 괴로운 일이었고, 자녀들에게 말하길 꺼려했다.

여기에 불만을 느낀 자녀 세대가 들고 일어난 게 68운동이지. 청년들이 부모 세대를 비판한 거다. 과거사를 숨기는 것에 분노했고, 전쟁 때 당신들은 무얼 했는지 묻기 시작했다. 독일어로 '다시 좋게 한다'는 게 이 운동의 주제였는데 사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하지. 제가 1998년 총리 재임 시절 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보상 중이다.

아, 오늘도 얘기했고, 예전에도 몇 차례 얘기했는데 한국에선 왜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지 모르겠다. 한국 언론도 그 단어를 쓰더라. 위안부라는 말엔 자발성이 포함된다. 분명 일본의 잔악한 대량 강압이었고 폭력이었는데 이 용어를 문제 삼지 않는 게 의아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가 양기대 광명시장과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 추모비에 묵념하는 모습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가 양기대 광명시장과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 추모비에 묵념하는 모습. ⓒ 박정훈


"한국 정치 드라마? 소재 무궁무진하다"

- 오늘 영화에 나온 대로 제 아버지가 그때 감옥에 들어가셨다. 국제적 구명운동 덕에 살아나신 셈인데 아버지의 집권 기간과 총리의 임기가 겹치는 만큼 아마 만나신 적이 있을 텐데,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시나. 또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견도 부탁드린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대중 대통령을 잘 안다. 아마 그를 만났다면 베를린에서였을 거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정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내 재임시절 만났다면 그에 대한 기억이 분명 있을 텐데 공식적으로 재임 때 만난 한국 정상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긴장과 대립은 독일에선 없었다. 물론 동독인이 국경을 넘어갈 때 발포한 일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독과 서독은 서로 협상이란 게 가능했지. 지금 북한은 공산주의 정권인가? 아니라고 본다. 종교적 성격을 띤 집단주의 국가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특한 체제다. 김일성이 거의 종교적 존재잖나. 정치 지도자를 신격화 하면 국민들이 합리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 이것 때문에 통일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북한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본다."

- 아젠다 2010으로 선거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강하다. 국가이익과 정치인으로서 이익에서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
"2002년 독일 실업자가 500만 명이었다. 분명 변화가 있어야 했다. 그전에도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세계화로 인해 노동시장이 변하는 중이었으니. 재원 충당이 가능한 복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했다. 개혁을 해야 하는데 만일 이걸로 인해 우릴 지금 뽑아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후대에선 평가를 받아 뽑아줄 거라 생각했다. 사민당이 지금 선거엔 져도 다음엔 될 거라 본 거지. 하지만 그 후에 사민당이 실수했다. 개혁을 정강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자기비판을 했다. 모순에 빠진 건데 오히려 야당이 이 개혁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 현재 정치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정치인으로서 타고나는 정치적 DNA가 존재한다고 보는가. 또 정치인이 조심해야 할 덕목이 있다면. (김태희 <성균관 스캔들> 작가)
"정치 드라마를 하신다고? 내게 물어보시라. 자료가 많다(웃음). 한국의 전임 대통령 관련한 것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정치인 유전자는 없다고 본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정치인이라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신념은 필요하다. 권력 의지가 있어야 하지. 다만 민주적이고 합법적으로. 그리고 소통 능력도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말을 이해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이 소통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정치인에게 위험한 덕목? 과한 용기를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신념은 중요한데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 오늘 <택시운전사>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김승필씨)
"제가 봤을 때 아름다운 이야기면서 비극적 이야기다. 아주 잘 만든 영화였다. 사실 제가 눈물이 많다. 특히 참혹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나올 때 더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택시운전사가 자신의 딸을 회상하는 모습이 시적이었다. 서정적이고 심금을 울렸다."

시간 관계상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순 없었지만 대화 말미에 슈뢰더 전 총리는 김승필씨에게 기꺼이 질문해 달라며 시간을 더 할애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 자체가 <택시운전사>에 대한 슈뢰더 전 총리의 관심에서 시작됐다는 후문. 행사를 준비한 메디치 출판사 김현종 대표는 "책 편집 중 슈뢰더 전 총리께 한국의 주요 뉴스 스무 개 정도를 보냈는데 <택시운전사>가 1위라는 기사도 있었다"며 "총리께서 한번 보고 싶다 하여 일정을 잡았다"고 전했다.

김승필씨와의 만남에 대해서 김현종 대표는 "그 와중에 김사복의 아들이라는 보도가 났고, 아들이 확실하다는 뉴스에 총리께 제안드린 것"이라며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고향이 슈뢰더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하노버 지역"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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