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마치고 강수연과 동반 사퇴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마치고 강수연과 동반 사퇴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지난 11일 열린 22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의 초점은 프로그램보다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부산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에게 모였다. 지난 8월 7일 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은 이들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다음 날 바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사퇴 발표 후 두 사람이 공개 기자회견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의 의중이 주된 관심 사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퇴임을 앞둔 소회를 밝히며 '책임'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영화제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라고 했고, 강 집행위원장은 "실질적으로 영화제 내부적인 운영과 집행위원장의 책임이 있다. 예전이든 현재 일이든 외부든 내부든 집행위원장인 제가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무국 직원들이나 영화계에서 사퇴 요구가 나온 '본질'에 대해서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을 강조했지만, 책임을 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서 발표된 규탄 성명서와 상당한 인식 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직원들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도 사퇴에 영향이 있었다"며 "2012년에 있었던 회계상의 착오"를 언급했다. 이어 "저나 강수연 위원장이 없었을 때 일어난 일이 현재에 불거진 것이지만 영화제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강수연 집행위원장, '영화제 마치고 물러납니다!'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마친 뒤 김동호 이사장과 동반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 강수연 집행위원장, 영화제 마치고 물러나기로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마친 뒤 김동호 이사장과 동반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정민


또한, 강수연 집행위원장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강수연 위원장을 "억지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모셔왔고, 지난 2월 말부터는 단독으로 영화제를 이끌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3~4월까지 아무 문제 없다가 왜 갑자기 6월에 들어와서 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강 위원장이 그만둬야 하는지 그 부분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고 유감을 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명예회복은?

지난 8월, 사무국 직원들이 부산영화제 정상화를 원하며 낸 성명서의 핵심은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이었다. 직원들은 성명서에서 분명하게 강조했다.

"<다이빙벨> 상영 직후부터 시작된 부산시와 감사원의 전방위적인 감사는 거의 1년 동안 융단폭격처럼 영화제사무국을 초토화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제출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과 사무국 직원들에게 협박과 회유, 먼지털이식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국, 영화진흥위원회는 지원금을 절반으로 삭감하였고,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하여 영화제로부터 내쫓았습니다. 현재까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힘겹게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장본인이자, '당신이 물러나면 영화제는 건들지 않겠다'는 비겁한 조건을 달아 전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기는커녕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보이콧사태 해결을 위해 영화인 및 지역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여론을 수렴하여 영화제의 정상화에 힘써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 8월 7일 발표된 부산영화제 사무국 성명서 중에서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관련 토론회에서 김 이사장과 강 집행위원장을 향해 사퇴 요구가 나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다이빙벨> 상영으로 이 전 위원장이 법정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김 이사장과 강 집행위원장은 이를 외면하다시피 한 채 부산영화제 사태의 주범격인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게 비판하는 이들의 관점이다. 애초에 불신을 자초한 셈이었다.

강수연-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마치고 동반 사퇴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에서 입장하고 있다.

▲ 강수연-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마치고 동반 사퇴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기자회견에서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김동호 이사장은 지난 5월 취임 이후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그는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말로 다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했다. 당시 재판이 '정치적 탄압'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했다는 게 영화계 일각의 해석이다. 지난 2월 부산에서 열린 공청회 때도 관련된 질의에 "할 만큼 다 했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다른 좋은 방안이 있으면 제시해 보라"고 했다. 영화인 중 다수는 김 이사장의 이런 발언이 사실상 이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지난해 6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과 함께 기소됐던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과 전 사무국장을 김동호-강수연 체제에서 직위 해제한 게 컸다.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고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우선했다. 이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과 관련해서는 법적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것과 배치되는 행위였다. 부산영화제가 겪는 위기가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개인 비리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 8월 영화인들의 한 모임에서 박찬욱 감독은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에 대해 "제가 영화에 대해 알게 된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참 아이러니하게 이런 모욕을 당하는데도 제가 도와 드릴 수 없는 힘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김영한 전 청와대 수석의 비망록과 블랙리스트 문건 등이 공개되면서 부산영화제에 가해졌던 정치적 탄압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도 문화융성위원장을 역임한 김동호 이사장의 인식은 달랐다. 영화계 내부에서의 비판과 사무국 직원들의 성명서까지 나오게 된 결정적 배경이었다.

서병수, '다이빙벨 상영됐으니 표현의 자유 보장' 궤변

 가덕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약속해왔던 서병수 부산시장이 시장직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27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 시장은 "사퇴하지 않겠다"면서 "(김해공항 확장이) 공약을 파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6년 6월 27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선 서병수 부산시장. ⓒ 정민규


부산영화제가 서병수 시장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덕분인지 서 시장은 영화계의 사과 요구를 무시한 채 영화제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서 시장은 지난 8월, 강 위원장과 김 이사장 두 사람이 이번 영화제가 끝난 후 사퇴하겠다는 견해를 밝힌 직후 별도의 입장문을 냈다. 서 시장은 여기에서 '시와 영화제 간 갈등은 오해'고 '블랙리스트 등과는 관련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관련 기사: "서병수, 영화제 조롱"... 영화인들 '부산시 입장문'에 반발)

서 시장은 또 지난 9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나는 그때 영화제 조직위원장이었고, 정치적 논란이 있던 <다이빙벨>이 영화제의 위상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해 상영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빙벨>은 상영이 됐고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이뤄진 것 아니냐. 더 이상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재판 과정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서병수 시장에게 <다이빙벨> 상영을 막으라고 지시한 증언도 나왔다. 그런데도 사과는커녕 궤변을 일삼고 있다는 데 영화인들이 분개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서병수 시장을 향해 "후안무치하다"라거나 "비열한 행동"이라는 등의 비판 나오고 있으나,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 김 이사장이 사퇴 이후 안정적인 수습을 위한 사전 조처를 하려 하지 않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현행 정관상 이사장이 사퇴할 경우 재적 이사 과반수가 참여하는 이사회를 소집해야 하고, 최연장자가 사회를 맡아 의장을 선출하게 돼 있다.

또 집행위원장의 경우도 관례상 사퇴할 경우 부집행위원장이 대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현재 부산영화제는 부집행위원장들이 모두 사임한 상황이다. 영화제 직후 강 위원장이 사퇴할 경우 영화제 결산 과정에서 혼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사회 소집 과정도 복잡해 영화계 인사들은 퇴임 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이사회와 총회서 현명하게 할 것"이라며 정관의 절차만을 언급하는 모습이다. 책임을 강조한 이면에 오히려 무책임한 태도가 숨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부산지역의 한 영화계 인사는 "김 이사장이 말로만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행동은 다르게 하는 것으로 평가한다"며 "지역 차원에서 영화인들과 부산시, 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수습책을 고민하고 있으나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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