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일 발생한 부산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소년범 특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흉포한 소년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소년법을 개정하고 온정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소년법 개정을 반대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형법 제9조는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정해놨다. 14세 미만은 형법상의 범죄를 저질러도 형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14세 미만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10세 이상 14세 미만은 보호처분을 받는다. 보호처분에는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소년보호시설 혹은 의료시설 위탁, 소년원 송치 등이 있다. 10세 미만인 경우에는 이런 보호처분도 없다.

한국 법학계 다수설은 소년법 상의 보호처분을 보안처분으로 이해한다. 보안처분은 형벌과 다르며, 교육이나 보호를 주된 수단으로 한다. 해당 범죄에 대한 응징보다는 미래의 범행을 막고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형법상의 범죄를 저지른 소년 중에서, 10세 미만은 아무런 처분도 받지 않고 10~13세는 보호처분을 받는 데 비해, 14세 이상은 형벌과 함께 특례 적용을 받는다. 특례 중 대표적인 것은 소년법 제59조의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 대하여 사형 또는 무기형으로 처할 경우에는 15년의 유기징역으로 한다"라는 규정이다. 범행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게는 사형이나 무기형 이외의 형벌만 부과하는 것이다. 

소년 범죄자에 대한 보호처분, 뿌리는 유럽

이처럼 소년 범죄자에 대해 보호처분이나 낮은 수준의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근대 유럽의 전통에서 나왔다. 그 뿌리 중 하나는 영국과 미국의 국친 사상이다. 국가가 소년범의 어버이 입장이 돼 형벌보다는 교육과 복지를 통해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배종대의 <형사정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비행소년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처벌보다는 처우를 통해 비행 원인이 되는 환경과 성행을 개선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과 복지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 바탕에는 국가가 비행소년의 부모로서의 역할을 대신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국친 사상이 놓여 있다."

또 다른 뿌리는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에서 나온 교육형주의다. 소년 범죄자는 성인 범죄자와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사회화 교육을 통해 소년의 사회복귀를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친사상이나 교육형주의나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국친사상에서는 국가의 후견자·보호자 역할을 특히 강조하고, 교육형주의에서는 교육이란 수단을 특히 강조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소년범 보호처분을 포함한 보안처분이 유럽에서 생긴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532년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롤리나 형법전에서 보안처분이란 이름의 구금 제도를 최초로 실시했다. 따라서 1532년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형벌밖에 없었다. 이런 시절에 동아시아에서는 소년범에 대한 특례가 법전에 명문으로 규정됐다. 동아시아에서는 소년범 특례의 역사가 아주 길다.

동아시아의 '소년범 특례' 역사

중국 베이징(북경)의 공자 사당인 공묘에서 찍은 <예기>.
 중국 베이징(북경)의 공자 사당인 공묘에서 찍은 <예기>.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기원전 1100년 이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주나라 예법서(법전)인 <주례>에는 "어린아이는 방면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어린아이는 죄를 지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몇 살 이하가 어린아이인지는 규정되지 않았다. 그 당시는 그렇게만 규정해놔도 어린이의 범위를 정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동범·소년범에 대한 특례는 중국 역대 형법의 이념적 기초가 된 <예기>에도 담겨 있다. 공자의 예법 사상을 담은 이 책의 곡례 편에 이런 규정이 있다.

"80세 이상과 7세 이하는 죄를 짓더라도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7세 미만 아동에 대한 특례를 인정한 이 규정은 경전 상의 지도원리로만 남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중국 형법에 오래도록 반영됐다. 이것은 한족 출신의 중국 왕조뿐 아니라, 유목민 출신의 중국 왕조에도 계승됐다.

중국대륙의 혼란을 이용해 서쪽을 압박해 나가던 고구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나라가 있다. 4세기 후반인 386년 건국돼 5세기 초반에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란 나라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란 나라 때문에 고구려 장수태왕(태왕이 정식 명칭)은 만주 국내성에서 한반도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중국 쪽 진출이 더 이상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의 형벌지에 이런 규정이 있다.

"나이가 14세 미만이면 형벌을 절반으로 깎아주고, 80세 이상이거나 9세 이하인 자는 살인죄가 아니면 처벌하지 않는다."

이런 특례는 이후의 역대 왕조에서도 있었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은 달랐지만, 어떤 형태로든 소년범에 대한 특례가 인정됐다.

고대 중국은 20세 미만을 어떻게 봤을까

주목할 것이 있다. 고대로 가면 갈수록 형벌이 잔혹했다. 현대인이 볼 때는 그렇게 중대한 것 같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도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 국가는 사형을 남발하지 않더라도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장치가 많지만, 고대 국가는 그런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사형 같은 무서운 형벌을 보여줘 백성을 겁주는 방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시절에도 동아시아 고대 국가들은 아동범이나 소년범에 대해서만큼은 관용을 베풀었다. 그렇게 한 이유 중 하나가 <예기> 곡례 편에서 드러난다.

곡례 편에서는 인간의 발달 과정을 7세는 도(悼, 슬프고 떨림), 10세는 유(幼), 20세는 약(弱), 30세는 장(壯, 굳셈), 40세는 강(强), 50세는 애(艾, 창백), 60세는 기(耆, 노老 이전의 늙음 단계), 70세는 노(老), 80세는 모(耄, 노老 이후의 늙음 단계)로 정리했다.

여기서는 7세나 10세는 물론이고 20세까지도 인간의 발달이 완전하지 않다는 고대인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20세를 약(弱)이란 한자로 규정한 것만 봐도, 20세 이하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20세 이전의 어느 시점까지는 특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완전한 인격체가 아닌 아동이나 소년에게 성인과 똑같은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 아동이나 소년이 지금 당장에는 범죄자가 됐더라도, 그 인격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어렸을 때의 문제아가 모범적인 성인이 되는 사례도 많으므로 일단 지켜보자는 고려도 작용했을 수 있다. 나이 어린 사람한테 범죄자 낙인을 찍어 일찌감치 사회의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가급적이면 기회를 주어 사회의 우군으로 만드는 게 더 낫다는 실리적 고려가 있었을 수도 있다.

살인·강도 아닌 한 불구속수사 했던 조선

조선시대 말기의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동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복도에서 찍은 사진.
 조선시대 말기의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동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복도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이런 법 감정은 중국뿐 아니라 한민족 왕조에서도 나타난다. 조선왕조의 경우에는, <경국대전>에서 유사한 규정을 뒀다. 중국처럼 소년범의 형벌을 면제한 규정은 없었다. 15세 이하 소년범에 대해서는, 살인범이나 강도범이 아닌 한 불구속 수사를 하도록 하는 규정이 <경국대전> 형전에 규정돼 있다. 형벌을 면제하지는 않았지만, 성인범과 다른 특례를 인정했던 것이다.

이 같은 소년범 특례를 반대하는 백성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특례가 훨씬 광범위했던 중국에서는 비판의 소리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소년 범죄자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특히 그랬을 것이다. 또 소년범 특례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아동이나 소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문제점이 있는데도 동아시아에서는 기원전부터 소년 특례가 인정됐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그 오랜 동안에도 특례가 살아남은 것은, 특례를 부정하는 것보다는 인정하는 게 소년 본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특례의 구체적 모습은 바뀌었지만, '아동이나 소년은 성인과 달리 취급돼야 한다'는 특례의 기본 취지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태그:#부산 여중생 사건, #소년범 특례, #예기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