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그것 메인포스터 그것 메인포스터

▲ 그것 메인포스터 그것 메인포스터 ⓒ 워너브라더스픽쳐스


01.

영화 <그것>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IT'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올랐으며, 2주 만에 밀리언 셀러에 등극하며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도 공인 받은 바 있는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 수치로 평가되는 기록적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50편에 가까운 그의 장편 작품 가운데 가장 칭송을 받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잔인하고 집요한 묘사들로 갑론을박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 많은 감정들이 혼재하는 작품이라 평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 1990년 토미 리 월레스 감독에 의해 TV 시리즈로 이미 한 번 제작된 바 있다. 그때 이후로 27년만에 페니와이즈(빌 스카스가드)가 돌아오게 된 것이다. – 페니와이즈라는 인물은 이 작품에서 신적인 위치를 가진 악역으로, 이 작품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 워너 브라더스가 이 작품을 다시 세상에 꺼내어 놓은 것은 영화 속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페니와이즈가 27년을 주기로 돌아온다는 설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작품의 안팎을 절묘하게 맞춘 영리한 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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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과 다양한 작품으로 활동한 정정훈 촬영 감독이 함께한다는 소식 때문에 화제가 된 바 있었다. 특히 <올드보이>(2003), <스토커>(2013), <아가씨>(2016)와 같은 작품들이 해외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 실제로 이 영화의 초반부에 조지가 지하실로 향하는 지점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이 직접 미팅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워너 브라더스가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기로 한 배경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원작에 생각보다 직접적인 묘사가 많은 데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다 보니 수위 조절에 대한 부분이 민감했기 때문이다. 일단 1990년에 제작된 TV 시리즈의 <그것>이 두 편으로 나뉘어 제작된 것처럼, 이번 작품 역시 원작을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것 Part.1>과 성인이 된 이후의 이야기 <그것 Part.2>로 나누었다. 이번 작품은 그 중 Part.1의 내용에 해당한다. 조지의 죽음 이후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성년자 살인사건의 배우 페니와이즈와 그에 맞서는 '루저 클럽'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것 스틸컷 2 페니와이즈가 처음 등장하던 장면

▲ 그것 스틸컷 2 페니와이즈가 처음 등장하던 장면 ⓒ 워너브라더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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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 페니와이즈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는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귀신이나 악령과 달리 주체적인 목적을 갖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악당으로 표현된다. 작품에서도 묘사되고 있듯이 모든 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신적인 존재이며, 상대방(아이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과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빨간색 풍선을 들고 다니는데, 이는 피에로와 닮아 있는 평소의 모습과 일치하는 코드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영혼을 빼앗긴 아이들을 상징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 빌 스카스가드가 분장한 페니와이즈를 두고 27년 전 같은 역할을 맡았던 팀 커리와 비교하여 과장되었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수구 밑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조지를 살해하는 그의 등장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며, 피에로라는 대상이 갖고 있는 속성, 이중성을 아주 잘 표현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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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본적으로 호러 장르의 목적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기존에 있던 같은 장르의 작품들과는 차별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들인 '루저 클럽'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장에 대한 부분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어쩌면 이 작품이 90년대 TV 시리즈에서도, 이번 리메이크 작에서도 원작 소설과 달리 지속적으로 시간의 순서에 따라 표현되고 있는 것은 이 지점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외부적인 교육이나 성인의 도움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얽매고 있던 현실을 스스로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보인다. 이 지점에서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페니와이즈라는 극 중 악역의 존재라는 것이 아이러니한 부분이지만, 한 번의 위기를 극복한 '루저 클럽'의 아이들은 페니와이즈의 집을 처음 방문한 뒤에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마이크(초슨 제이콥스 역)는 피하려고만 했던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한 모습을 보이고, 엄마의 과보호 아래에 있던 에디(잭 딜런 그레이저 역)는 자신의 뜻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베벌리(소피아 릴리스 역)는 자신을 추행해오던 아빠의 마수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감독 역시 이 지점의 표현을 위해 작품의 러닝타임을 기꺼이 할애한다. '루저 클럽'이라며 스스로를 칭하고 자존감이 낮았던 아이들이 마이크를 괴롭히던 헨리(니콜라스 헤밀턴 역)에 맞서 돌을 던지고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동일 선상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 스틸컷 1 루저 클럽의 아이들

▲ 그것 스틸컷 1 루저 클럽의 아이들 ⓒ 워너브라더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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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루저 클럽'의 아이들 반대편에 있는 헨리라는 인물의 위치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 역시 중심인물들이 성장하는 지점에서 페니와이즈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조하는 부분이 있는데, 페니와이즈가 개인의 성장을 이끌어냈다면, 그는 '루저 클럽' 아이들이 함께 뭉치게 되는 연대의 조건이 된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페니와이즈의 집을 함께 향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크를 괴롭히던 헨리에게 맞서 싸워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페니와이즈와 헨리가 악역이라는 역할을 받아든 건 동일한 입장일지 모르겠으나, 신적인 존재로 절대 악을 담당했던 페니와이즈와 달리 헨리는 단지 조금 더 버릇이 없고 경우가 없는 미숙한 악역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선한 의지와 공동의 목표의식으로 오히려 페니와이즈를 물리치고자 했던 '루저 클럽'의 아이들과 달리 더 거대한 악의 힘 앞에 속절없이 먹히고 마는 헨리의 모습을 통해서는 강한 자 앞에서 약해지는 악한 마음의 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게 된다.

06.

어린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분명하게 긋고 있는 모습 또한 이 작품에서 유심히 지켜볼 만하다. 페니와이즈가 악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오로지 아이라는 것과 그 주기가 27년이라는 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 번 그의 목표가 되었던 대상은 두 번 다시 그의 대상 범위 속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설정상, '루저 클럽'의 멤버들이 그를 마주하기 전까지 그의 마수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영상 속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후반부에서 빌을 볼모로 잡은 그가 우리를 두고 가면 남은 삶을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긴밀한 연결 고리를 형성한다. 또한, 아이들이 보는 페니와이즈의 모습과 이상 현상들을 어른들인 베벌리의 아빠, 도서관의 사서, 정육점 주인 등이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 스틸컷 3 페니와이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풍선

▲ 그것 스틸컷 3 페니와이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풍선 ⓒ 워너브라더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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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영화 <그것>은 장르를 떠나 잘 짜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영화의 주된 감정이 내부 인물들의 공포심과 관객의 두려움 유발에 몰입되고 있는 것은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이 장르 상 공포라는 것을 고려하면 영화적으로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원작이 스티븐 킹의 소설이라는 것, 그것도 인간이 느낄법한 수많은 감정을 망라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각 인물들이 페니와이즈와 조우하게 되는 계기가 정확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대부분 두려움뿐이다. 몇몇 인물들의 경우에는 그 상황이 대사로 처리되고 있고, 헨리의 경우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정도로 정황상 예측이 가능할 뿐이다. 이 작품이 단순한 공포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페니와이즈의 공포스러움보다는 이 부분을 극대화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이 살해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등의 폭력적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 장면이 등장하는데도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내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결정은 역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수위가 낮다고 판단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대상이 미성년자라는 것을 간과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참고로, 미국 현지에서의 등급은 R등급으로 17세 이하의 청소년이 관람할 경우 보호자의 동행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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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 <그것 Part 2>에서 남은 숙제는 단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원작의 내용을 두 개의 파트로 나누고, 시간순으로 재배열시켜 놓은 만큼 그 이야기와 감정의 결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27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이 작품에서 등장한 '루저 클럽'의 배역은 모두 성인 배우들이 넘겨받게 될 것이고, 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 또한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분장이 아닌 실제의 모습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빌 스카스가드는 이 시리즈를 발판 삼아 할리우드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게 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잠시 미루어두어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영화 무비 그것 페니와이즈 넘버링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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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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